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_정현종
이번 해를 맞이하며 새해에 난 이별을 했다. 새해 첫 날, 애인은 내게 '올해는 나한테 사랑 많이 받고 함께 성장하자' 라고 희망찬 메세지를 보내었으나 우린 며칠 뒤에 이별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인 그 올해에 더이상 어떤 약속도 남아있지 않다. 나의 마음은 한창이었으나 이별은 일방적이었고 단호했으며 그래서 많이 아팠다. 나는 당연히 붙잡았지만 내 구구절절에 대한 애인의 답은 오지 않았다. 만약 내 마지막 말에 미처 끝내지 못한 감정의 어설픈 대답이 돌아왔다면 난 미련까지 섞인 몇 배는 더 아픈 이별에 허덕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단호하게 우리를 끝내준 것이 어쩌면 내 애인이 이별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까. 그런 이별 후에 난 나이로 스무 다섯이나 되어 처음으로 애인과 헤어지고 울었다. 물론 그 전에도 당연히 이별 후에 눈물이야 보인 적이 있지만 주변에서 누가 함께 울상을 지어주고 휴지를 건네주면 술로 털어버리던 정도의 작위적 눈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로 어찌할 바 모르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소매춤으로 들키기 싫은 눈물을 감추어 본 것도 처음이었고 또 며칠은 식사를 거르면서 지내기도 했으며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애인과 나 이길 바라기도 했었다. 당시에 그 이별의 심각성을 자각할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는 바로 사람이었는데, 내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인 친구들을 이별이 처음으로 무의미 하게 만들었다. 헤어졌다는 나의 울음섞인 말을 전화너머로 듣고는 부르면 언제고 갈테니 늘 그랬듯 술이나 마시자던 친구들이 별로 보고싶지 않았다. 너와 마주 앉아 내 이별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고, 술에 취해 그렇게 괜찮아지기만을 버티며 내 감정을 보내주기가 너무도 싫었다. 싫었다는 것은 그 만큼 내가 이별에 대해 적극적인 그 어떤 의지도 없었음이 분명했다. 그 어떤 고난도 역경도 사람으로 이겨냈던 터라 내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력이 없어지던 순간은 스스로 참 충격적이었다. 그 경험은 애인의 부재를 나에게 더 와닿게 해주었고, 난 그 후로도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허둥댔다. 그 지독한 이별을 위로받으면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들은 주로 “괜찮아. 다 지나가. 한두번 해본 거 아니잖아. 다른 사람 만나면 또 그 사람은 잊혀져.” 였었다. 나도 알고있었다. 익히 알고있었고 물론이야 그런 이별도 몇번 해보았지만, 이런 감정은 또 처음이라 그리 쉬이 지나갈 것 같지가 않다고 같은 말들만 반복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내게 “난 젊었을 때 연애 많이 해봐야한다는 거 동의 못해. 암만 짧게 만나도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 한명 한명 다 상처로 남아있는데.” 라는 비주류의 위로를 해주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 무언가가 생긴 것을 느꼈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 표현하자면 무덤, 무덤이나 비석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누군가가 왔다가 간 흔적, 흔적이자 부재, 부재이면서 죽음, 죽음은 생명이 없는 것. 분명히 한 때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생명이 없고 죽어서 부재인 그래서 흔적만 남은 것, 그런 무덤 같은 것이었다. ‘아, 이별은 이렇게 마음에 무덤이 하나 생기는 것이구나.’ 나는 그제야 무덤의 형태로 내 이별을 관망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에도 난 자주 그 무덤엘 간다. 무덤 앞에 홀로 선 나는 덤덤하지 못한 표정으로 부재한 사람에게 말도 건네 보고 안부도 묻는다. 우리의 추억을 곱씹기도 하고 함께하지 못한 미래를 푸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부재한 사람은 말을 건네주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무덤 앞에 서서 내 마음 속에 이미 묻힌 다른 무덤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그 무덤들의 모습들을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 몇 개의 무덤이 내 마음속에 더 생길까 하는 생각도 하고 그 생각의 끝엔 더 이상 이런 아픔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까지 닿는다. '언젠간 이 무덤도 풍경이 될까?' 이제야 내 발길이 닿지 않아서 자연과 닮아 풍경이 된 다른 무덤들을 둘러보며 아마 앞으로도 끝없이 생겨날 무덤들을 관망하게 될 나의 바램으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