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뿐인 시간을 마음에 담아두기로 했다

기록이 시간을 천천히 가게 만든다.

by 자모카봉봉

마음이 과거로 향하는 날이 있고, 불안 때문에 미래를 자꾸 앞당겨 상상하는 날도 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두 사이를 오가며 현재를 충분히 바라보지 못한 채 시간을 놓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오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일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른 일을 선택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학교를 더 다녔더라면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렸을까. 그때의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이 자리에 묶어두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던 날도 있었다. 과거의 갈림길 앞에 다시 서 있는 것처럼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후회와 아쉬움 속을 걷는 날들이 있었다. 반대로 어떤 날은 미래가 너무 불확실해서 마음이 앞질러 달렸다. 아직 오지도 않은 걱정들, 혹은 생기지도 않은 문제들을 미리 떠올리며 긴장하고, 그 긴장 때문에 오늘 하루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서둘러 지나가버리는 날들. 이렇게 과거와 미래 사이를 흔들리며, 나는 ‘지금’을 제대로 본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어떤 말에서 들었는데 마음이 우울하면 과거에 살고, 마음이 불안하면 미래에 살며, 마음이 평온하면 현재에 산다고 했다. 그 문장이 나를 오래 붙잡아 두었다. 그동안 왜 마음이 무거웠는지, 왜 조급함이 쉽게 올라왔는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우울과 불안을 오가며 지금 이 순간을 잘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5년의 나는 유난히 바빴다. 일정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한 주가 시작되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 한 주가 지나갔다. 바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을 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강의, 미팅, 육아가 연결되면서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고, 그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어버렸다. “이번 주만 지나면 괜찮겠지”라고 스스로를 달래던 말은 어느새 몇 달을 넘어 계속 이어졌다. 어느 날은 아이들이 잠든 늦은 저녁, 현관 앞에 서서 신발을 벗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는 무얼 느끼며 살았을까? 오늘 하루는 어떤 마음으로 지나갔을까? 너무 빠르게 달려오느라, 나는 정작 나의 시간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바쁜 흐름 속에서 정말 중요한 장면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표정들, 언젠가 사라질 작은 습관들까지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쉬움이 너무 컸다. 아이들은 늘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변화를 가까이에서 오래 바라보지 못한 채 매번 지나쳐버리고 있었다.


요즘 우리 딸아이는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깔깔대는 시간이 많아졌다. 영어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며 밝은 얼굴로 문을 박차고 들어오기도 한다. 혼자 자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다가도 가끔은 무서운 생각이 든다며 조용히 손을 잡아오기도 한다. 이 모든 장면은 초등학생 시절이 지나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순간들이다.

둘째 아이의 모습도 그렇다. 아파트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며 세상의 주인처럼 씩씩하게 달리는 모습, 등보다 큰 가방을 메고 낑낑대며 준비물을 챙기는 귀여운 아침 풍경, 아직 서툰 맞춤법으로 나에게 보내는 진지한 문자까지. 이 모든 것이 지금이라는 시간에만 허락된 장면들이다. 이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순간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 순간들을 잃지 않기 위해 작게 메모하고, 짧은 문장으로 남기고, 그날의 표정이나 마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강의를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자동차 안에서, 아이들이 잠든 밤의 조용한 방에서. 그날의 장면들을 오래 붙잡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였다. 그리고 이렇게 쉬는 시기가 찾아오면 그 문장들을 하나씩 펼쳐본다. 정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순간들이 더 깊고 선명하게 마음에 남았다.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이 조금씩 나에게 되돌아오는 느낌도 들었다. 마치 기록을 통해 지나간 시간의 조각들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기록을 하면서 마음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하루를 스쳐 지나가는 느낌으로 살 때는 불안과 조급함이 쉽게 올라왔지만, 기록을 하며 하루의 온도를 다시 읽다 보면 그날의 기쁨, 그날의 울컥함, 그날의 사소한 감정들이 따뜻하게 되살아났다. 기록은 나를 돌아보게 해주었고, 동시에 지금의 시간을 더 깊게 끌어안게 해주었다.


과거에 머물지도, 미래에 너무 앞서가지도 않고 지금의 장면에 머무르기로 했다. 아이들의 웃음, 작은 성장, 가끔의 서툼, 그리고 나의 하루까지 모두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지금을 잘 바라보는 연습이 결국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점점 더 자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때, 나 역시 또 다른 역할과 또 다른 미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변화가 두렵기보다 기대가 되는 이유는 내가 지금의 시간을 한 조각씩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내가 소중히 붙잡은 이 순간들이 언젠가 미래의 나에게 든든한 위로와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앞으로 어떤 순간들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그 순간들도 지금처럼 차분히 바라보고, 내 마음의 언어로 기록하며,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담아둘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쌓인 하루들이 미래의 나에게 또 하나의 선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지금뿐인 장면들을 서둘러 흘려보내지 않고 마음 한가운데 조용히 담아두기로 했다. 오늘의 시간은 오늘만 빛나는 것이고, 나는 그 빛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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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오늘 아이에게서 본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은 무엇이었나요?

2. 당연하게 느끼던 아이의 습관 중, 사실은 지금만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3. 아이의 오늘을 더 잘 바라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


"기록은 흘러가는 시간을 나에게 되돌려주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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