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가가는 능력보다, 함께 머무는 힘에 대하여
한동안 ‘사회성’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남아 있었다.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걸고, 어디서든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아이.
우리는 보통 그런 모습을 떠올리며 사회성이 좋다고 말한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을 은근히 기대해왔던 것 같다.
조용한 아이보다는 말이 많은 아이가, 망설이기보다 먼저 다가가는 아이가 더 잘 살아갈 거라 믿었던 것처럼.
그러다 어느 날, 그 믿음이 조금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다.
하루는 친구의 아이가 내게 다가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우리 아빠가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우리 엄마는 요즘 그 드라마를 제일 좋아해요.”
“아까 이야기하신 거 저도 엄마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이것저것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귀엽고 대견했다. 낯선 어른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모습이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대화가 길어질수록 마음 한쪽이 불편해졌다. 아이답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나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신호를 몇 번이나 보냈지만
아이는 그걸 알아채지 못한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과연 사회성이 좋은 걸까.
혹시 내가 사회성이라고 믿어왔던 모습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사회성이라는 단어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사회성이 말을 잘하는 능력이고,
먼저 다가가는 용기가 맞을까.
어쩌면 그보다 더 조용한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 일, 지금 이 대화가 괜찮은지를 가늠해보는 일,
계속 말하는 대신 멈출 줄 아는 감각이 아닐까.
요즘 전문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아이들의 사회성이 예전보다 눈에 띄게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또래 관계에서 조율하는 힘이 약해졌고, 상대의 반응을 읽거나 기다리는 데 서툴러졌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실제로 그런 장면들을 종종 마주하게 되니까.
아이들의 사회성은 왜 떨어진 걸까.
혹시 사회성이 자라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것은 아닐까.
예전 아이들은 밖에서 마구 뛰어놀며 관계를 배웠다.
싸우고, 삐지고, 편이 갈리고, 다시 섞였다.
그 과정에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됐다.
'이 말은 상처가 되는구나.'
'이쯤에서 물러나야 하는구나.'
'조금 참으면 다시 함께할 수 있겠구나.'
요즘 아이들은 너무 이르게 정리된 세계로 들어간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향하고, 학원 수업이 끝나면 다시 다음 일정으로 이동한다.
놀 시간이 남아 있는 날은 드물고, 아이들끼리 무엇을 할지 스스로 정해볼 틈도 많지 않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다투기 시작하면, 어른들은 싸움이 커지기 전에 서둘러 개입한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정리하고, 사과할 말을 대신 만들어주고, 상황을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아이들은 불편함을 견디거나, 서로의 마음을 맞춰볼 시간을 갖기 전에 이미 다음 장면으로 옮겨진다.
그러다 보니 자유롭게 부딪히고, 어색해지고, 다시 맞춰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놀 시간이 줄어든 만큼, 관계를 연습할 기회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오히려 ‘내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아주 잘 배우고 자라는 것 같다.
"지금 기분이 어때?"
"너는 무얼 하고 싶었어?"
"너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해!"
라고 아이에게 늘 말한다.
그건 분명 필요한 일이다.
다만 ‘상대의 마음도 함께 중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말로 배워지지 않는데 몸으로 배울 기회가 없어서 아쉬울 뿐이다.
그건 분명 관계 안에서 부딪히고, 머뭇거리고, 다시 이어가며 조금씩 생겨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사회성을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사회성은 활발함도, 말솜씨도 아니다.
관계 안에서 나를 조금 낮추고, 나를 조절할 줄 아는 힘이다.
내가 편한 것보다, 지금 이 관계가 괜찮은지를 먼저 살펴보는 감각이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줘야 할 일은 사회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이 자랄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허락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어른이 서둘러 개입하지 않는 틈,
아이들끼리 부딪혀보고 다시 이어갈 수 있는 여백.
사회성은 성격이 아니라 경험이고, 능력이 아니라 천천히 자라나는 감각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