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함께하는 슬기로운 격리생활] 말의 형태 (오나리 유코 글그림)
병원에서 전화를 받자마자 내가 한 일은 나로 인해 확진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것도 아니고 함께 있는 동안 마스크도 쓰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서 지금의 상황을 솔직하게 전달했다. 마침 주말이기도 하니 미리 잡혀있는 주중의 스케줄에 차질이 없도록 미리 검사를 받아서 음성결과를 확인하고 월요일을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빠르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를 원망할 수 있었다. 나를 비난할 수도 있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비난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한명, 한명과 전화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여기 저기 돌리면서 그동안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도 전화를 하기 시작하니 연락의 연락이 끝도 없었다. 오바스럽긴 하지만 우리 아이들과 접촉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하니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미안하다고 사과전화까지 모두 돌렸다.
반응은 참 다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미 코로나가 3년째 함께 하고 있는 만큼 ‘조심해도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자리잡고 있어서인지 오히려 위로를 많이 해주었다. 갈라지고 기침이 섞인 내 목소리를 듣고 나와 우리 딸의 건강을 먼저 걱정해 주기도 하면서, 앞으로의 격리기간에 대해 함께 답답해 해주고, 지금과 같이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에 대한 불편함에 대한 마음을 먼저 읽어주기도 했다.
“금방 지나갈거야, 젊은 사람들은 그냥 감기처럼 지나간대.”
“아무걱정하지말고 쉬어, 잘 쉬어야지 금방 낫는대.”
“과일도 잘 챙겨먹어, 자기면역으로 이겨내야 하는 병이라서 비타민도 잘 섭취해야 한대.”
“아이들이 많이 답답해서 어떡해.”
“니 잘못 아니야, 너무 미안하고 속상해 하지마.”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거야. 누가 먼저의 차이야.
잘 이겨내셔서 내가 경험하게 될 때 도와줘.”
격려나 응원과 위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긴 건 아니지만, 지금의 현실에 딱 맞는 얘기여서인지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되었다.
물론 원망 섞인 이야기도 들리긴 했다. 우리 때문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 이제 쓸 수 있는 휴가도 없는데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는 이야기, 코로나도 심한데 여기저기 다녔냐는 이야기. 각자 상황이 다를 것이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곤란한 상황에 빠뜨린 것일 수는 있지만, 전화를 하기 전에 굳게 비난받을 각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림책 <말의 형태>은 ‘만약 말이 눈이 보인다면 어떤 색,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말은 어떤 형태인지 상상해 보기도 하고, 단호한 목소리, 조용한 목소리, 상냥한 목소리와 같이 목소리에 따라 색이 다를 것이라고 상상해보기도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말의 형태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림책 수업을 할 때 많이 활용하는 그림책이다. 말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지 않고, 부정적인 표현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 많아 더욱 많이 활용하려고 하는 그림책이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꼭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은 못과 같아서 말할 때마다 입에서 나가 상대방에게 꽂힐지도 몰라.’라는 글과 함께 못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장면이다.
엄마한테 오늘 짜증내고 나왔는데, 말의 형태가 있었다면 엄마에게 큰 상처를 준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평소에 욕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런 욕도 형태가 있다면 못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엊그제 친구랑 싸웠는데 친구가 저에게 심한 말을 했어요.
말이기는 했지만 뭔가 친구한테 크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저는 이미 말에 보이지 않은 형태가 있는 것 같아요.
말에는 이미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형태가 갖춰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말 한마디로 인해서 얼굴이 활짝 펴지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인해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나의 상황을 알리며 누군가는 반창고와 같은 말을 나에게 전달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은은한 안개꽃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에게 가랑비를 쏟아내는 것 같은 말을 전달하기도 했다. 소나기만큼 파워가 있지는 않지만 우산없이 운동장 한 가운데서 가랑비를 맞고 있는 것 같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나는 가랑비로 인해 옷이 다 젖어 마음까지 차가워지고 쓸쓸해지는 느낌이었다. 말 한마디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