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은 울렸지만, 마음은 따라가지 못한 순간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알림장은 종이가 아닌 ‘학교 알리미 앱’으로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훨씬 편할 줄 알았다. 종이를 잃어버릴 걱정도 없으니 놓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시스템뿐이었다. 알림이 편리해진 만큼 놓치는 속도도 빨라졌다. 일하는 엄마에게 알림은 생각보다 훨씬 부지런하게 울리기 때문이다.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는 아침에는 시간이 없고, 저녁에는 정신이 없어 아이들 재우고 나면 나도 바로 잠들기 일쑤였다. 앱은 분명 울렸을 텐데, 내가 못 보고 지나가는 날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지나침은 곧 미안함으로 이어졌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건 방과 후 놀이체육 공개수업 날이다. 엄마와 함께하는 특별 활동이 있다고 선생님이 며칠 전부터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중요한 알림을 보지 못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일하러 간 날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친구 엄마에게서 “오늘 엄마 참여 수업이 있었어요”라는 문자를 받는 순간, 심장이 툭 떨어지는 것처럼 아릿해졌다. 교실 한가운데서 친구들은 엄마와 함께 활동했을 텐데, 우리 아이는 어떤 표정으로 서 있었을까. 선생님이 짝이 되어 함께해주셨다고 했지만, 그 말이 오히려 더 미안하게 다가왔다. 아이에게도 미안했지만, 수업을 준비하느라 쏟았을 선생님의 노력까지 내가 가볍게 만든 것 같아 죄송스러움이 오래 남았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어느 날 강의 중에 학원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떠 있었다. 강의 중에는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끝나고 나와 확인했는데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는 사실에 온몸이 순간 긴장으로 굳었다. 혹시 다친 건 아닐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돌아온 말은 예상보다 더 엉뚱했다. “아이가 벌써 학원에 와 있어요. 혹시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지 않고 나온 건 아니겠죠?” 알고 보니 학교 시간표가 변경된다는 공지를 주간학습안내에 올렸는데, 내가 그걸 보지 못한 것이었다. 아이는 수업이 없는 줄 알고 바로 학원으로 갔고, 학원에서는 평소보다 빨리 온 아이의 모습에 놀라 전화를 했던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쿵쾅거렸다. 아이의 하루는 촘촘하게 흘러가는데, 그 리듬을 따라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우유 신청을 놓친 날도 있었다. 학기 초에 신청해야 1년 내내 제공되는 우유를 나는 끝내 신청하지 못했다. 며칠 뒤 아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나도 우유 먹고 싶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한 말투였지만, 그 한 문장이 가슴 한쪽을 찌릿하게 했다. 다음날 아이는 “친구들은 아침에 우유 먹는 걸 보니 나도 먹고 싶어”라고 덧붙였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말했다. “엄마가 매일 아침 학교처럼 우유 줄게. 초코우유, 딸기우유도 줄게.” 아이는 또다시 태연한 척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날 또 한 번 알림 하나의 무게를 깊이 느꼈다.
알림을 놓치게 되는 건 단순한 부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알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고, 학기 초에는 더하다. 육아 정보, 전체 학년 공지, 학급과 무관한 강좌 안내, 홍보성 이벤트, 형식적인 보고까지. 정작 중요한 공지는 그 사이에 묻혀버린다. 그렇게 쏟아지는 알림을 모두 확인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떤 엄마들은 이 모든 알림을 하나하나 읽고, 필요한 건 저장하고, 신청 기간을 놓치지 않으며,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챙겨준다. 나는 친구 엄마들로부터 “어제 신청한 체험 너무 좋았어”, “이번에 신청한 프로그램에서 많이 배웠대”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제야 그런 신청 안내가 있었다는 걸 알곤 한다. 그럴 때면 나도 아이에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엄마들을 볼 때마다 잠시 작아지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런 일들 속에서도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담담하다. “괜찮아, 엄마.” “다음에 하면 되지 뭐.” “우유 없어도 돼. 물 마시면 되지.” 아이들의 이 가벼움이 나를 매번 다시 일으킨다. 아이에게는 내가 놓친 하루보다, 다시 맞춰가는 내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육아는 완벽한 정보 파악으로 유지되는 일이 아니다. 놓친 순간에도 서로를 이해하며, 미안함을 지나 다시 하루를 이어붙이는 일이다. 앱은 오늘도 울린다. 나는 또 놓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엄마의 실패는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아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잠시, 작은멈춤>
1. 최근에 놓쳐버린 일이 있나요?
2.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진 않았나요?3. 오늘 하루만큼은 ‘완벽함’보다 ‘괜찮아, 다시 보면 되지’라는 여유를 허락해줄 수 있을까요?
“육아의 빈틈은 실수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낸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