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식구가 한 방에서 자던 시절

의존에서 자립으로 스며드는 작은 변화들

by 자모카봉봉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는 네 식구가 한 방에 모여 잤다.

부부 침대 옆 바닥에는 두툼한 이불을 깔아두고, 침대 위에는 남편과 첫째가,

바닥에서는 나와 둘째가 꼭 붙어 잠들었다.


남편은 종종 “침대 하나 더 사자”, “패밀리 침대로 바꾸면 넓게 잘 수 있을 텐데”라고 말했지만

나는 늘 “조금만 지나면 아이들이 각자 잘 텐데 뭐” 하고 대답했다.

그때는 네 명이 다 함께 자는 시간이 정말 잠깐일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잠깐’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길게 이어졌다.

몇 년 동안 우리는 같은 방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잠들었다.


잠자리는 늘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은 가만히 누워 자는 적이 거의 없었다.

침대 위를 한 바퀴 굴러다니다가 아빠 배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자기도 하고,

내 쪽으로 몸을 잔뜩 말아 파고들기도 했다.

나는 그 시간들이 좋았다.

아기 손처럼 보들보들한 손을 만지작거리며 살짝 토닥여주다가 나도 같이 잠에 들곤 했다.

잠들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어주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의 순간들.

물론 가끔은 “빨리 자!” 하고 다그치던 날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조차 전부 우리 가족이 함께했던 사랑스러운 한 장면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부쩍 자란 덕에 네 식구가 자던 자리가 점점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밤마다 아이들의 길어진 팔다리가 사정없이 뻗어 오고,

이불도 침대도 서로에게서 끌어다 써야 할 만큼 좁아졌다.

"이제 정말 침대를 바꿔야 하나?” 하는 이야기가 슬슬 나오던 그 무렵, 첫째가 말했다.

“엄마, 나 내 침대 갖고 싶어.”

그 말이 조금 낯설게 들렸다.

늘 나에게 기대 잠들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기특하면서도 서운했고, 놀라면서도 ‘아, 정말 자라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기특한 아이에게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

첫째가 바라던 이층 침대를 들여놓았고, 그 침대 위에 앉아 환하게 웃던 아이의 표정은 잊을 수 없다.

한동안은 다시 우리 방으로 오던 날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 침대에서 잠들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을.

학교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자기만의 영역을 갖고 싶어 한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방 한 칸은 어른의 눈에는 그저 물건처럼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내가 혼자 해볼 수 있는 세계의 첫 조각’ 같은 것일지 모른다.


둘째도 비슷한 시기에 자기 방을 갖고 싶어 했다.

처음엔 누나를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인 줄 알았지만,

결국 둘째 또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독립의 시기가 오기까지 나는 오랫동안 아이들과 떨어지지 못했다.

두 아이 모두 어릴 때 낯가림이 심했고, 나와는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기관에 들어가는 날이면 아이도 울고, 나도 걱정되어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 위험한데도 주변을 기어 다니며 나를 붙잡았고,

화장실 문을 닫기만 하면 울먹이며 문을 두드렸다.

정말 말 그대로 한순간도 따로 있기 어려운 '엄마 껌딱지’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러다 나중에 다 혼자 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어쩌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아이들은 나 없이 세상이 너무 낯설었던 것뿐이다.

엄마가 가장 편안하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였기에 늘 내 곁에 있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나를 떠나 자기만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자기 침대에서 잠들고, 자기만의 책상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와 충분히 가까웠던 아이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혼자 있을 힘을 가진다.

그 힘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작은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다.


요즘 우리 집의 저녁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저녁 식사를 마치면 식탁을 재빨리 치우고 아이들이 공부할 것을 가져와 함께 숙제를 했다.

연필 굴러가는 소리, 문제집 넘기는 소리, 몰랐던 문제를 물어보는 아이들의 목소리.

그 북적북적함이 우리 집만의 따뜻한 저녁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첫째가 방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식탁에 둘이나 셋만 앉아 있는 날이 늘었다.

조용해진 식탁을 바라보며 문득 깨닫는다. 아이들이 조금씩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그 변화가 아주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한 방에서 몸을 맞대고 자던 밤들이, 식탁에서 옹기종기 모여 숙제하던 순간들이

조금씩 다른 모양을 갖기 시작했다.

그 변화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 공간과 자기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어릴 때는 엄마의 손을 놓지 못했던 아이들이 지금은

자기 세계로 한 걸음씩 걸어가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대견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요즘 내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해주는 일이다.


침대.jpg

<잠시, 작은 멈춤>

1.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용히 달라지고 있는 풍경은 무엇일까요?

2.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자기 자리’는 어떤 모습인가요?

3. 함께하던 시간이 다른 모양이 될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 변화를 바라보고 싶은가요?


“함께 지내던 풍경이 조금씩 바뀌는 것, 그것이 자립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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