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에 대한 마음의 시간표

첫째에게는 엄격했고 둘째에는 너그러웠던 이유

by 자모카봉봉

아이를 둘 키우다 보니, 내가 두 아이에게 걸어왔던 ‘기대의 시간표’가 서로 달랐다는 걸 요즘 들어 더 또렷하게 느낀다. 첫째가 어릴 때의 나는 뭐든 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학습지, 교구, 발달 자극 프로그램 등 어디서 좋다고 하면 일단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다른 엄마들의 말, 전문가 인터뷰, 온라인 정보까지 그 모든 것이 곧 ‘정답’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준비되지 않은 엄마였다. 갑자기 아이를 품에 안게 되었고, ‘엄마 1년 차’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무 연습 없이 바로 실전에 들어갔다. 그러니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발달표 하나에도 불안해지고, 주변 아이와 비교하며 조급해졌다. 나는 첫 아이에게 늘 ‘앞서 가는 아이’가 되길 기대하며 한 살 많은 아이에게 기대하는 기준을 그대로 덧씌워놓고 있었던 거다.


특히 발달검사 결과에서 “또래보다 약간 작은 편이에요”라는 말이라도 들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불안했다. ‘내가 음식을 잘못했나? 밥을 제대로 안 챙겼나?’ 죄책감이 밀려왔다. 밥을 안 먹으면 “이러니까 키가 안 크지!”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내 서툼이 만든 조급함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상처로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어린 동생조차 “언니는 왜 키가 작아?”라고 말한 날, 나는 웃어 넘겼지만 속이 얼마나 쓰렸는지 모른다. 그런 순간들은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고, 내 아이에게 더 많은 기준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같은 상황도 둘째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둘째의 발달검사를 봤을 때 또래보다 작은 편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은 원래 작아. 클 때 되면 크지.” 이 말이 먼저 나왔다 첫째를 키우며 이미 경험해 본 시간들이 있었고, 정보에 흔들리기보다 ‘아이마다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내 마음이 배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둘째가 받아쓰기를 틀려 써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받아쓰기 공책에 ‘결혼식’이 ‘결훤식’, ‘마라톤’이 ‘말아통’으로 적혀 있어도 예전의 나였다면 바로 고쳐쓰게 했을 텐데 그날의 나는 남편에게 먼저 보여주며 “이거 너무 귀엽지 않아?” 하고 웃고 있었다. 첫째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조금만 흔들려도 금방 무너지는 나였지만, 둘째 때는 첫째가 나에게 준 시간만큼 내 마음도 조금은 단단해진 것이다. 정보를 그대로 믿기보다 우리 집에 맞는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아이를 바라보는 눈도 한 발 물러서서 볼 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둘째에게 미안함이 없는 건 아니다. 첫째에게는 너무 일찍 어른 역할을 기대했다면, 둘째에게는 너무 오래 ‘아기’로 붙잡아두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된다. 첫째에게는 지나친 조급함이 미안하고, 둘째에게는 지나친 느긋함이 미안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나는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속도로 자라는 존재들인데, 엄마 마음은 자꾸 그 속도보다 앞서가거나 뒤처진다는 사실을. 그래서 요즘은 두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들의 속도를 맞추고자 노력한다. 조금 빠르든, 조금 느리든 아이만의 속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아이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자리로 도착할 것이다.


사실 요즘 들어 더 깊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만의 속도를 존중하는 일이야말로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앞으로 더 힘들어질 문제라는 것.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보편적 시간표’에 너무 익숙하다. 10대 입시, 20대 취업, 30대 결혼 적령기… 마치 인생의 흐름에는 정해진 속도가 있고 그 속도에 맞춰야만 ‘정상’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벌써 그 나이인데?”, “남들은 다 하는데 너는 왜 아직이야?” 이런 말들이 격려라는 얼굴을 하고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시선 속에서 크다 보면 자기 안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사회가 밀어붙이는 속도에 떠밀려 나가기 쉽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도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기보다 정해진 시간표를 따라 사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지금 이 순간의 속도를 바로 잡고 싶다. 아이에게 맞는 속도, 아이만의 리듬을 존중하는 시선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이 조금 빠르든, 조금 느리든 그 속도는 결코 틀린 게 아니다. 오히려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는 법을 배워야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맞는 인생의 박자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우리 아이의 시간표’를 누구보다 먼저 믿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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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첫째와 둘째에게 다른 기준을 적용했던 순간이 있나요?

2. 아이의 실제 속도보다, 내가 가진 기준이나 불안이 앞섰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3. 아이의 시간표를 존중해주려면, 나는 어떤 태도를 선택하면 좋을까요?


“아이의 속도가 다른 만큼,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표도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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