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기준을 내려놓았을 때 보인 것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특히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그랬다. 꼬리잡기나 술래잡기처럼 긴박한 단체놀이 시간, 다른 아이들은 달리기만 해도 숨이 차는데 우리 아이는 “하기 싫어요”라며 조용히 옆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뜨끔했다. 사회가 정해놓은 ‘아이답게 노는 방식’을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뛰고, 모두가 웃고, 모두가 어울려야 잘 크는 것처럼 여겨왔으니까.
비슷한 장면은 숲체험에서도 이어졌다. 학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이미 숲에 도착한 것처럼 들떠서 뛰어다녔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내 옆에서 조용히 주위를 살피기만 했다. 그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져 나는 무심코 다그쳤다. “왜 안 놀아? 숲체험 가는데 안 신나?” 하지만 아이의 대답은 늘 짧고 조용했다.
놀이터를 지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친구들을 봐도 반가움보다 무심함이 앞섰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가는 일이 많았다. 나는 괜히 혼자 걱정을 키웠다. ‘혹시 사회성이 부족한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봐요", "기분이 좀 가라앉아 보이던데요?" 이런 걱정섞인 주변의 말들은 내 마음을 더 흔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아이가 행동이 앞서는 나와는 다르게, 행동보다 먼저 마음을 준비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뛰어들기 전 한 번 더 바라보고, 새로운 친구에게 인사하기 전에 어떤 말을 건넬지 생각하며,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마음을 여는 아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퍼즐을 맞출 때면 수백 개의 조각을 꺼내 놓고도 물도 마시지 않고, 화장실도 참으며, 그 퍼즐이 완성될 때까지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른들은 “이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집중하지?”라며 신기해하곤 했다.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색칠 중에 마음이 흐트러질 만한 순간에도 아이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칠한 부분과 비어 있는 부분의 경계를 섬세하게 다듬으며,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묵묵히 이어갔다. 그 조용한 집중력은 단순한 성향이 아니라 아이 안에 있는 깊은 끈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 강점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조용한 순간들만 보고 오해했다. 아이의 차분함이 오히려 ‘문제’나 ‘부족함’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상담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 “단체 활동은 잘하나요?”, “표현은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요?”, “친구들 사이에서 위축되지는 않나요?” 내 질문을 들은 선생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되물으셨다. “어머님,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세요? 친구들과 너무 잘 어울리고요, 사실 정말 인기 많아요.”
나는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정말요? 조용해서 걱정했었는데…” 선생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침착하고 차분해서 친구들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대요. 배려심 있고 리더십 있는 아이라고 말도 많이 나와요. 심지어 고민 상담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싫어하는 친구가 없을 정도로 아이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정말 좋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동안 얼마나 좁은 틀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조용하다고 해서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주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을 때도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 애들이 나한테 고민 얘기 자주 해. 나한테 말하면 마음이 편해진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가 보지 못한 세계에서, 아이는 누군가의 기댈 곳이 되어주고 있었다. ‘조용함’은 결코 단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를 품어주는 따뜻한 능력이자 깊은 마음의 힘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을 이제야 배웠을까. 아이의 속도는 남들과 비교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이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라는 것을. 이제는 남들의 속도보다 우리 아이의 걸음을 더 믿어주고 싶다. 아이의 조용한 성장은, 알고 보니 가장 깊고 멀리 가는 성장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다.
<잠시, 작은멈춤>
1. 지금 내 앞의 아이는 어떤 순간에 머뭇거리는지, 그리고 그 이유를 나는 정말 알고 있나요?2. 내가 불안해서 아이를 재촉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3. 우리 아이만의 ‘속도’를 인정해준다면, 나는 어떤 태도로 바뀔 수 있을까요?
“조금 늦어 보이는 순간에도 아이는 자기 방식대로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