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은 마음과 놓칠 수 없는 마음 사이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며 마주한 두려움과 설렘

by 자모카봉봉

일을 다시 시작했을 때,

기쁨과 함께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동시에 찾아왔다.

오랜만에 잡는 마이크,

오랜만에 나를 소개하는 순간,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내 시간을 건네는 자리.

한때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인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처럼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괜히 마음을 조여왔다.

그 조임은 내가 기대했던 설렘보다 더 선명하고 날카로웠다.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 밀려오면

사람은 누구나 예민해지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비대면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몇 번이고 말했다.

“엄마가 강의하는 시간에는 절대로! 방에 들어오면 안 돼.”

혹시라도 문이 열려 수강생들이 들을까 봐,

내가 당황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칠까 봐,

그 시간이 무너질까 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더 단단해졌다.

심지어

“들어오면 큰일 나.”

“여기 보이는 사람들이 다 같이 이놈! 할 거야.”

이런 말까지 꺼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무섭게 말했을까 싶다.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때의 나는 ‘육아로 인해 흔들리는 나’를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강의를 신청한 사람들이

“아이 있으니까 이해해야지”라고 생각해줄 보장은 없었고,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자리에서

어떤 변명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문이 잠긴 방 안에는

강사인 내가 있었고,

문 밖에는

엄마의 약속을 지키며 조용히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 두 세계 사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렸다.


강의 준비 역시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만 가능했다.

잠드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지고 예민해졌다.

“제발 빨리 좀 자…”

조급해지다가 그 조급함이

말투와 표정으로 묻어나

아이에게 화를 낼 때도 있었다.

그러고 나면

미안함이 다시 밀려오고,

잠든 아이들 옆에서

마음을 다독이며 노트북을 열었다.

밤 11시가 넘어서 자료를 만들면

눈꺼풀은 무거워도

마음은 이상하게 또렷했다.

자료 한 줄을 고치고,

이미지를 바꾸고,

구성표를 채워 넣다 보면

“아… 내가 이 일을 참 좋아했지.”

그 감정이 아주 조용히 살아났다.

작은 순간들이

내 마음의 체력을 다시 채워주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나에게 일종의 ‘재진입기’였다.

육아라는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사회로 나가는 입구에서

나는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 방식의

‘점진적 복귀’를 선택했다.

한 번에 모든 일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되지 않는 만큼, 작은 단위만큼

일과 일상을 다시 연결하는 방식.

하루 30분의 준비,

짧은 강의 하나,

가벼운 미팅 하나.

그 작은 성공 경험들이 쌓이며

자신감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가끔은 욕심이 차올라

전력 질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점진적 복귀라는 방식이

나에게 가장 맞는 속도였다.

크고 중요한 강의를 맡을 용기도 없었고,

육아와 일을 완벽하게 병행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게라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밤마다 조금씩 자료를 만들고,

하루 30분이라도 나만의 공부 시간을 확보하고,

강의 한 번을 마칠 때면

나는 잠시 웃음을 되찾았다.

수강생이 남긴

“오늘 수업 너무 좋았어요”라는 메시지 하나가

하루 종일 마음의 기둥이 되어주었다.

그 말 한 줄이

“그래, 너 할 수 있어”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것만 같았다.

그 문장을 캡처해 두고

두고두고 바라보던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다.


아이들도 어느새

내가 일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엄마 오늘 강의해?”

“엄마, 쉬고 싶으면 쉬어.”

문을 열면

조용히 블록을 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이들 때문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아이들 덕에 중심을 다시 찾기도 했다.


남편 역시

어느 날 조용히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준비해야 한다며? 우리 잠깐 나갔다 올게.”

그 말이 별것 아닌 말처럼 들리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숨을 고를 수 있는 아주 큰 여유였다.

그렇게

작은 도움들, 작은 시간들,

작은 성공 경험 하나하나가

내게 다시 일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불안하고 흔들렸던 건

일도, 아이도, 나도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에

흔들렸던 거라는 걸.

아이를 사랑해서 흔들렸고,

일을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흔들렸고,

나라는 존재를 잃고 싶지 않아서 흔들렸던 것이다.

흔들림은 실패가 아니라,

내가 소중한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날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날의 나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던 모든 날이

지금의 나에게

조용하지만 확실한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점진적으로,

아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온 그 시간은

내 삶의 중요한 도약이었다.

뛰지 않아도 괜찮았고,

잠시 멈춰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방향이었고,

그 방향을 향해

나는 분명히 걷고 있었다.


일하는 밤.jpg


<잠시, 작은멈춤>

1. 요즘 나를 가장 흔들리게 하는 일은 무엇이며, 그 속에 어떤 소중함이 숨어 있을까요?

2.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내딛은 나를 위한 ‘작은 한 걸음’이 있었나요?

3. 그때의 나를 지금 돌아본다면, 어떤 말을 조용히 건네주고 싶나요?


“일도 중요했고, 아이도 사랑스러웠고, 나 역시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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