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사진뿐이던 자리에 찾아온 작은 변화
오랫동안 나는 ‘수연이 엄마’, ‘유담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소개할 일이 생겨도 “수연이, 유담이 엄마요”라고 말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보다 아이들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고,
내 하루의 기준도, 내 시간의 흐름도 모두 아이들을 중심으로 흘렀다.
육아라는 시기는 그렇게 조용하고 은근하게 나를 뒤로 미루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장면 하나가 돌아왔다.
강의를 시작할 때 내가 가장 먼저 꺼내는 그 문장. “반갑습니다, 조경선입니다.”
그 한 줄의 자기소개가 마치 닫혀 있던 내 안의 문을 조용히 여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의 엄마로만 존재하던 시간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
나’라는 이름이 다시 빛을 받아 깨어나는 순간.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조금 넓어지고, 내 삶이 다시 색을 찾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는 늘 편안한 옷차림이 익숙하다.
등하원길에 입는 추리닝, 안경을 쓰고 급하게 묶은 머리, 햇빛을 가리기 위한 모자.
초반에는 주변 엄마들 앞에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에 조금은 신경 쓰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옷장에는 늘어난 추리닝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언젠가 다시 일을 할 거라 믿었고, 육아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래서 아이 낳기 전 입던 정장, 블라우스, 구두를 그대로 간직했다.
그 옷을 버리는 순간 ‘경력을 멈춘 사람’으로 스스로 단정짓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옷장이 터질 듯 꽉 차자 결국 결심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래, 몇 벌만 남기고 정리하자.’ 그리고 오랫동안 입지 않은 정장을 하나씩 걸쳐보았다.
놀랍게도 대부분이 맞지 않았다. 살이 크게 찐 것도 아닌데 몸의 형태가 달라지고,
취향과 분위기까지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 당연히 잘 어울리던 짧은 재킷, 날렵한 라인의 원피스들은 지금의 나와 어딘지 어울리지 않았다.
발도 마찬가지였다. 큰 변화가 없는 나이인데도 구두들은 모두 불편해져 있었다.
발볼이 넓어졌는지 조금만 신어도 찌릿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예전엔 이런 옷을 입고 어떻게 하루 종일 돌아다녔을까?’
스스로에게 웃음이 나면서도 서운함이 스쳤고, 동시에 ‘이 또한 자연스러운 변화구나’라는 마음도 들었다.
육아 시절에는 추리닝이 편했는데, 그건 아이들과 뛰어놀기 위해 필요했던 모습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내 삶에 충실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일을 다시 시작하자, 예전의 ‘나다움’을 조금씩 되찾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강의를 하는 날이면 나는 변신을 한다.
안경을 벗고, 오랜만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드라이 맡긴 정장을 꺼내 입는다.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직업이니 학습자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봉인해 두었던 나를 꺼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하는 메이크업은 정말 어색했다. 아이라이너는 자꾸 삐뚤어지고, 마스카라는 뭉쳤다.
몇개의 화장품은 너무 오래돼 사용할 수가 없어, 결국 새 파운데이션 하나,
새로운 립스틱 하나를 장만했는데, 그 작은 물건들이 이상하게 마음을 환하게 만들었다.
‘그래, 나 이런 모습도 있었지.’ 잊고 지냈던 나의 조각들이 하나둘씩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일을 쉬던 시절에는 웃프게도 결혼식이나 명절 같은 날이 반가웠다.
남들은 며칠 전부터 한숨을 쉬는 날이었지만
나는 오랜만에 꾸며도 괜찮은 날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설렜다.
그 사실만큼이나 내가 얼마나 오래 ‘나’를 뒤로 미뤄두고 살았는지 잘 보여주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다시 나의 일로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뿌듯한 일이었다.
강의를 준비하며 다시 정장을 입는 순간, 비로소 ‘다시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감정이 현실이 되었다.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난 뒤 달라진 건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핸드폰 사진첩을 넘기다 손가락이 멈추는 순간이 있었다.
한동안 아이들 사진으로만 가득하던 앨범에 강의 중 찍힌 내 모습,
수업 자료, 교육 결과물 사진들이 조용히 끼어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잠든 얼굴, 공부하는 사진과 영상들 사이에
오랜만에 발견된 ‘일하는 나’. 그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속에서 묘하게 뜨거운 감정이 올라왔다.
“아, 나 다시 내 삶을 살고 있구나.” 작게 웅크리고 있던 나의 일부분이 천천히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핸드폰 일정표를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작은 뿌듯함이 생긴다.
나는 내 일정은 보라색, 아이들의 일정은 노란색으로 표시한다.
한때는 노란색만 가득했지만 요즘은 보라색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 화면을 보고 있으면 아이의 삶도, 나의 삶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나란히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로만 살던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오는 중이다.
아이의 하루가 소중하듯 나의 하루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
큰 결심보다 그날그날 가능한 만큼 조금씩 나를 챙긴다.
그렇게 쌓인 작은 순간들이 내 삶을 다시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의 엄마이지만 이제는 그 이름 옆에 조용히 ‘나’라는 이름을 나란히 둘 수 있다.
두 이름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알아가는 중이다.
<잠시, 작은멈춤>
1. 아이들의 사진만 있던 자리에서 다시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
2. 엄마가 아닌 ‘나’의 이름으로 소개되는 순간, 나는 어떤 감정인가요?
3. 내가 아이들에게만 쓰던 에너지를 나 자신에게 돌려준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진첩 속 작은 변화가, 내가 다시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