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시간 내 안의 온도를 바꿔놓았다

예전의 나는 몰랐던 마음의 깊이와 변화들

by 자모카봉봉

돌봄의 시간은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육아를 하기 전의 나는 감정이 예민했고 화도 잘 내고 짜증도 쉽게 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목표가 생기면 앞만 보고 달리는 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던 배경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자란 첫째들이 흔히 갖는 독특한 책임감, 일명 ‘첫째 컴플렉스’라고도 불리는 그 감정이 내 안에도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부모에게 기대기보다 부모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버텨야 한다고 믿는 마음. 나 역시 집안의 첫째였고,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을 내가 일으켜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 속에서 자랐다. 누가 대신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누구에게 기댈 수 있다고 믿어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 돈을 벌어 우리 집을 안정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끊임없이 앞으로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감정은 자주 놓쳤고, 때로는 차갑고 냉정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남편도 종종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아. MBTI로 치면 왕T야.” 그 말이 섭섭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정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성격이라기보다 버티기 위해 선택했던 ‘삶의 방식’이었다. 당시의 나는 무조건 일만 우선이었다. 재미있는 취미도 없었고,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 아까웠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은 시절인데, 앞만 보고 달렸던 그때를 떠올리면 조금은 아쉽다. 그때 조금만 더 돌아보고 쉬어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 내가 육아를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놀랍게도 나는 아이들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아이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큰소리를 내기보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을까?” 하고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내 일정을 미루는 것도 가능했다. 내 안의 따뜻함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꺼내질 줄은 나도 몰랐다.


육아는 매일 작은 판단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아이의 표정 하나에도 컨디션을 읽어야 했고, 상황에 따라 대응을 달리해야 했다. 실랑이가 벌어지면 화를 내는 대신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감정’이라는 세계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육아서나 육아 프로그램에서도 늘 말한다. “엄마가 감정을 잘 알아야 아이도 감정을 건강하게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어른들조차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지금 감정이 어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좋아요, 싫어요” 정도의 대답을 하고, 조금 더 설명해보라고 하면 감정을 말하는 대신 상황을 설명한다. SNS 시대에는 헐, 헉, 대박 같은 감탄사가 감정 단어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이 오히려 감정 언어의 중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감정 공부를 시작했다. 다양한 감정 단어를 찾아보고,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긍정적인 표현을 더욱 쓸 수 있도록 노력했다. 사실 나는 감정 근육이 거의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조급한 마음이 부정적인 감정을 더 자주 불러오곤 했다. 하지만 조금씩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려고 하자 내 안에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가 생겼다. 감정 근육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이 늘어나고,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힘도 생겼다.


육아는 내 이러한 변화를 가장 많이 드러내는 무대였다. 예전 같았으면 물을 쏟았을 때, 과자 부스러기를 흘렸을 때, 밖에서 잔뜩 묻혀온 모래가 집 안에 떨어졌을 때 ‘버럭’하고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최대한 대화하려 노력한다. “아, 물이 쏟아졌네. 같이 닦아볼까?” “과자가 흘렸구나. 우리 다음에는 어떻게 먹으면 좋을까?” 이렇게 말하면 아이도 훨씬 편안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돌봄의 시간은 내 성격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내 안에 있던 여유와 따뜻함을 끌어올렸다.


남편은 요즘 내가 쓰는 글을 읽으며 농담 반, 놀람 반으로 말하곤 한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었어? 당신은 논리로만 말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도 웃으며 답한다. “나도 몰랐어. 나, 이렇게 따뜻할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


돌봄의 시간은 내 커리어에 공백을 만든 기간이 아니라, 내 마음에 온도를 더한 시간이었다. 예민하고 불같던 나를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더 누군가를 바라보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육아가 나를 지치게도 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은 나를 더 단단하고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돌봄은 나를 소진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성숙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조용한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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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돌봄의 시간 동안 내가 새롭게 얻게 된 능력은 무엇인가요?

2. 예전의 나였다면 보지 못했을 ‘마음의 결’은 무엇인가요?

3. 지금의 나를 만든 돌봄의 순간이 있다면, 어떤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지치기도 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더 깊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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