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나에게 남긴 또 다른 능력

공백이 아니라 능력이 되어 돌아온 시간

by 자모카봉봉

강의를 막 시작했을 때 나는 아직 20대였다. 강의를 하기에는 어린 나이이기에 당당함보다는 불안함이 더 많았다. 강사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준비를 갖췄지만, 현실의 강의장은 언제나 긴장과 두려움이 섞인 공간이었다. 강의장 문을 열기 직전, 손바닥이 차가워질 만큼 떨리던 그 느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첫 강의를 하던 날, 강의장 뒤편에서 호흡을 고르며 “괜찮아, 잘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순간의 공기까지도 또렷하다. 삶의 경험이 많은 참여자분들 앞에서는 “저 어린 강사가 뭘 알겠어.", “살아본 게 얼마나 됐다고…”라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나이라는 건 감출 수 없는 것이고, 경력은 단번에 쌓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나는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고, 경험이 한 번에 쌓였으면 좋겠다고 조급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경험이 나에게 가장 큰 자산으로 돌아왔다. 바로 육아였다. 육아는 그 어떤 배움보다 빠르고, 강렬하고, 현실적이었다. 감정, 갈등, 설득, 협상, 공감, 관찰… 삶의 모든 장면이 응축된 시간이었고, 아이와 마주한 수많은 순간이 어느새 내 강의 곳곳에 자연스러운 사례이자 살아 있는 언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기업 강의를 하기에 참여자 대부분은 회사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부모였다. 그래서 육아 이야기는 가장 빠르게 마음을 여는 공통 언어였다. 단지 ‘엄마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한 번쯤 겪어본 장면들이었기에 강의장은 금세 부드러워지고, 라포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쉬는 시간의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엔 “고생 많으세요”, “잘 듣고 있습니다” 정도의 짧은 인사만 오갔지만, 어느 순간 서로의 삶을 꺼내 보이는 작은 쉼표 같은 시간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도 나이가 비슷해서 그런지, 요즘 그 인형 사달라고 난리예요.” “요즘 애들 학교에 독감 돌지 않아요? 조심해야겠더라고요.” “우리 애들도 요즘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매일 이야기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회사 밖에서 마주친 이웃처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짧은 10분의 대화였지만 그 속에는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온기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강의장으로 돌아올 때면 처음보다 훨씬 편안하고 열린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특히 연세가 있으신 참여자들은 내 이야기를 더 깊고 따뜻하게 들어주곤 했다. 강의가 끝난 뒤 한 분이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우리 때에는 그냥 먹이고 재우고, 또 먹이고 재우는 게 다였는데… 요즘 부모들은 같이 일도 하고, 육아도 하고… 참 대단해요.”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신경 쓰고 초조해하던 ‘나이’라는 기준을 그분들은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그들은 나를 어린 강사로 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누군가의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 이해해주었다. 또 정년을 앞둔 한 참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딸도 아이 키우면서 직장 다니느라 참 고생했어요. 그때는 잘 몰라서 많이 도와주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남아요. 당신 이야기 들으니 딸 생각이 나네요.” 그 눈빛에는 ‘너는 아직 어려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부모의 마음은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공통의 마음이야.’라는 따뜻한 응원이 담겨 있었다.

가끔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림책 특강을 할 때면 내 마음은 또 다른 방식으로 깊어진다. 수많은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 그 중 몇몇은 우리 아이와 너무 닮아 보여서 저절로 마음이 갔다. 표정만 봐도 어느 아이가 긴장했는지, 어떤 아이가 호기심으로 마음을 열고 있는지, 누가 아직 경계를 가지고 있어 한 번 더 주변을 살피는지 금세 느껴졌다. 그러다 보면 조금 더 재미있게 해주고 싶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고, 이 시간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아마도 이런 감정은 엄마이기에 가능한 마음일 것이다.


육아는 내 커리어를 멈춘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강의를 더 깊고 넓게 확장시킨 시간이었다. 아이를 통해 배운 마음의 온도, 사람을 바라보는 눈, 작은 변화에도 반응하는 관찰력은 지금의 나를 완성한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래서 육아로 인해 커리어가 끊어질까 봐 불안해하는 많은 엄마들을 보면 나는 조용히 마음이 쓰인다. 나 역시 ‘경력단절’이라는 말을 들을까 두렵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멈추면 다시 시작할 힘을 잃어버릴 것 같았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세상이 너무 빨리 달려가는 것 같았으며, 어느 순간 뒤를 돌아봤을 때 나만 멀리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안다. 그 시간은 단절이 아니라 내 삶의 또 다른 층위를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이의 감정을 읽으며 익힌 공감력, 작은 패턴을 관찰하며 자란 상황 판단력, 혼란스러운 하루를 버티며 배우게 된 우선순위 설정, 아이의 말투 하나에도 섬세하게 반응하는 언어 감각까지. 이 모든 능력은 어떤 교육에서도 배울 수 없다. 직접 삶을 버텨내고 사랑을 쏟아야만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지금 육아 때문에 커리어가 멀어진 것 같아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 시간은 공백이 아니라, 당신을 천천히 깊어지게 만드는 시간이에요. 다시 일을 시작할 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힘으로 바뀌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작은 조언들도 건넨다. 하루 5분이라도 ‘엄마가 아닌 나’를 만나는 시간 갖기, 아이와의 대화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짧게 기록하기, 책 한 쪽 또는 뉴스레터 한 편이라도 꾸준히 읽는 느린 배움 이어가기, 아이의 감정 변화나 반응을 ‘관찰 노트’로 기록하기, 갈등을 해결할 때 사용한 말들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해두기 등.


이런 작은 습관들은 다시 일을 시작할 때 ‘진짜 경험의 언어’가 되어 돌아온다. 육아의 시간은 뒤처지는 시간이 아니었다. 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사람을 이해하는 감각을 길러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그 사실을 온전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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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경력에서 ‘뒤처진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그 불안 뒤에 어떤 마음이 있을까요?

2. 돌봄의 시간이 내 마음에 남긴 긍정적인 흔적은 무엇일까?

3. 만약 누군가가 “나는 경력단절이 될까 봐 불안해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떤 말을 건네줄 수 있을까?


“돌봄의 시간은 멈춤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힘이 조용히 자라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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