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
일과 육아 사이에서 내가 가장 크게 흔들리는 순간은 아이들이 “엄마, 오늘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날이다. 그 한마디는 짧지만 마음 한쪽을 크게 흔들어 놓는다. 아이가 아픈 날이면 그 무게는 더 깊어진다. 다행히 시부모님이 가까이 계셔 부탁드릴 수는 있지만, 그래도 아이가 힘들어하는 날만큼은 누군가에게 맡기기보다 내가 옆에 있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강사라는 직업은 겉보기엔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일정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하루 전 취소는 거의 불가능하고,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도 어렵다. 대체 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의 나는 오늘 한 번뿐이다. 참여자들은 그날을 위해 시간을 비워 두고, 기관은 홍보와 준비를 마친 상태이며, 교육 담당자는 수많은 내부 절차를 거쳐 일정을 확정한다. 그런 구조 속에서 강사가 빠지는 순간 전체 흐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가 아파도, 아이가 아파도 강의장에 서야 했던 날이 적지 않았다. 코로나가 심각하던 시절 한 동료 강사가 고열로 교육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교육 담당자는 “강사님이라면 건강관리를 좀 더 잘하셨어야죠”라고 말했다고 했다. 감염병이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강사의 자리는 비워져서는 안 된다는 무게가 그대로 담긴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감기로 목이 쉬어 한 문장 말할 때마다 칼로 긁히는 듯 아팠던 날들, 한문장, 한문장을 내뱉을 때마다 나오는 기침에 죄송했던 순간들, 쉬는 시간마다 뜨거운 물을 들이켜며 버텼던 순간들, 강의가 끝나고 차에 올라 조용히 ‘오늘 정말 힘들었다…’라고 중얼거리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빈자리를 만들지 않는 직업으로서 내가 견뎌온 시간들이었다.
육아와 일이 충돌하는 순간은 특히 아이 학사 일정에서 크게 온다. 나는 학기 초가 되면 체육대회나 공개수업 같은 중요한 날에는 절대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학교 공사 문제로 체육대회 일정이 뒤늦게 잡혔고, 다시 변경되었다. 처음 잡힌 일정에는 일이 없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일주일 뒤로 밀린 일정은 하필 이미 강의가 확정된 날이었다. 순간 마음이 툭 내려앉았다. “둘째아이에게는 이번이 학교에서의 첫 운동회인데, 내가 못 가는 건가…?”
다행히 오후 강의라 아침부터 중간까지는 참여할 수 있었다. 운동장은 아침 햇살과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해 작은 축제 같았다. 나는 시작부터 함께하고 싶어 일찍 운동장에 도착해 아이의 친구들과 인사도 나누고 사진 찍어주며 그 공기를 온전히 느꼈다. 달리기 순서가 다가오자 아이에게 달려가 말했다.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뛰어도 돼. 엄마는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다 좋아.” 출발선 위 작은 어깨는 늘 보던 모습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더 가늘고 소중해 보였다. 출발 신호와 함께 아이가 달려 나가는 순간 나는 다른 엄마들처럼 큰 소리로 응원했지만, 가슴 한쪽에서는 이미 시계를 보고 있었다.
아이의 달리기를 끝까지 지켜보고, 환하게 웃는 얼굴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즐거움을 함께했지만, 곧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운동장에 있으면서도 마음의 절반은 이미 강의장으로 향해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결국 주변 엄마들에게 다가가 몇 번이나 인사를 건넸다. “오늘 아이 좀만 잘 부탁드려요. 제가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가야 해서요.” 그리고 아이에게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이제는 가야 해. 남은 일정도 잘할 수 있지? 혹시 어렵거나 힘든 상황 생기면 엄마가 친구들 엄마한테 다 이야기해뒀으니까 누구에게라도 말하면 돼. 엄마는 이따 집에서 맛있는 거 사줄게.” 아이는 서운함과 이해가 동시에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응… 알겠어”라고 말했다. 그 작은 대답이 내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운동장을 빠져나오며 뒤돌아본 아이는 친구들과 웃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막상 일이 없어서 집에 있는 날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침은 따뜻하게 밥을 차려줘야지.’ ‘등하교도 함께해야지.’ ‘하교 후엔 간식 먹으며 대화도 나눠야지.’ 마음속으로 단단히 준비했지만 아이들은 시리얼만 말아 먹고 혼자 등교하고, 하교 후엔 집에 들어오지 않고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나는 하교 시간을 기다리며 집에 있었는데 정작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아이가 아니라 허무함이었다. 결국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엄마가 집에 있어도 너희는 너희 하루를 사는데… 그래도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좋아?” 아이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응. 그냥 좋아.”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엄마는 무언가를 해주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의 하루 어딘가에 ‘있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존재라는 걸. 잠깐 집에 들렀을 때 들리는 현관의 인기척, 식탁 한쪽을 채우는 따뜻함, 방을 지나갈 때 들리는 조용한 발소리. 그 모든 작은 흔적이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있는 집’이라는 안정감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일도, 아이도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시기였지만, 엄마라는 자리는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완벽한 하루를 만들지 않아도, 그저 ‘존재해주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한 힘이 된다는 걸 나는 그날 조용히 배웠다.
<잠시, 작은멈춤>
1. ‘함께 있어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2. 아이가 함께 있어주기를 원했던 날, 그러지 못해 속상했던 날이 있나요?
3. 아이가 아팠던 날들을 떠올리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아이의 하루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