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자랑이었던 딸, 그리고 지금의 나

일하는 이유를 다시 떠올린 날

by 자모카봉봉

나는 가끔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바쁜 날이면 더 그렇고, 아이들이 “오늘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날이면 그 질문은 더 오래 마음에 머문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일을 붙잡고 살아갈까?’ 어느 날 문득, 그 이유가 지금의 나에게서가 아니라 훨씬 오래전의 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했다. 학예회 사회를 맡기 위해 거울 앞에서 며칠 동안 대사를 연습했고, 소풍 장기자랑 무대에서도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았다. 방송반에 들어가 처음 마이크를 잡았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울림이 있는 교내 스피커를 타고 내 목소리가 교실과 복도에 퍼져나가자 마음속에서 전류가 흐르듯 짜릿함이 밀려왔다. “지금 호명하는 학생은 교무실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학교 행사로 인해 단축수업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각 반에 배부된 시간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전한 문장 하나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꾸고, 안내를 확인하게 하고, 때로는 대화의 주제가 되는 것이 늘 신기했다. 작은 목소리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어린 나에게는 마법처럼 느껴졌다. 학교가 크지 않은 동네였기에 가끔은 엄마가 학교 근처를 지나가다 “너 오늘 방송했지? 목소리 들리더라”라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선명하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구나.’ 그 작은 발견이 어린 나를 더 용감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엔 대회가 정말 많았다. 미술대회, 글짓기대회, 과학상상화대회, 시낭송 경연, 방학숙제를 잘해와도 주어지는 상장, 학기말 성적에 따라 받던 성취상, 그리고 학급 임원에 뽑힐 때마다 받던 임명장까지. 그러다 보니 내 방 서랍에는 상장이 차곡차곡 쌓였고, 한 장 한 장이 ‘작은 성취의 기록’처럼 남았다. 그런데 그 상장들을 가장 소중하게 다룬 사람은 나보다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파일을 사다가 내가 가져오는 상장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했고, 파일이 두꺼워질 때마다 “우리 딸이 이렇게 열심히 살았네” 하며 손끝으로 파일을 쓰다듬었다. 엄마에게 상장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딸의 성장 기록’이자 ‘기쁨의 근거’였다.


엄마는 늘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집으로 오는 길에 꼭 붕어빵이나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우리 딸이야, 멋지지?” 하고 자랑했다. 항상 무언가를 사먹으며 돌아오는 이유는 단순했다. 나를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말투, 그 표정, 그 눈빛은 어린 나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너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 그 응원 속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누군가를 기쁘게 만들 수 있고, 누군가의 기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경험은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었을 때 내가 꿈꾼 일은 늘 ‘사람들에게 닿는 일’이었다.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방송반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사실은 엄마에게 나의 모습을 더 자주,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엄마가 학교 옆을 지나가다 내 방송을 들었던 그 날처럼, 내가 살아가는 장면들이 엄마에게 닿기를 바랐다. 그 바람이 내 진짜 욕심이었다.


비록 방송인이 되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강의를 시작하면서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 꿈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고, 나의 목소리로 무언가를 전달하고,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영향을 주는 일. 방송과는 다른 형태지만, 분명 어릴 때부터 좋아해온 방식이었다. 강의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말투는 어색했고 손동작은 굳어 있었으며, 목소리도 자꾸 떨렸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 영상들을 보며 늘 같은 말을 했다. “어머, 너무 예쁘다. 얼마나 잘하는데.” “너는 뭘 해도 참 멋있다.” 엄마의 칭찬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그 미숙한 순간마저 ‘성장 과정의 일부’로 인정해주는 사랑이었다. 엄마에게 나는 늘 “잘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말들이 나를 지금까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일이 힘든 날이면 나는 가장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강의가 잘 풀리지 않은 날,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울컥해지는 날. 전화를 걸기 전엔 잠시 망설이지만, 엄마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 얼마나 멋있는데.” 그 한마디는 언제 들어도 내 마음 한가운데 따뜻하게 내려앉는다.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왜 일하는지를. 아이들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먼 곳에서 늘 나를 응원해준 사람을 위해서도, 나는 누군가의 기대에 답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의 엄마이기 전에, 누군가의 딸이었던 나는 그 사랑과 응원을 품고 오늘도 나의 일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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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아이들의 엄마인 나도, 누군가의 기대를 받으며 자라온 딸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지는 않았나요?

2. 나는 부모님에게 어떤 기대와 기쁨을 주는 사람이었나요?

3. ‘누군가의 자랑’이었던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힘이 되어주고 있을까?


“나는 엄마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싶은 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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