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마다 찾아오는 워킹맘의 조용한 승리

바쁜 주를 건너온 뒤의 가장 따뜻한 시간

by 자모카봉봉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 금요일은 예전과 전혀 다른 의미의 날이 되었다. 한때 금요일은 그저 한 주가 끝나는 시점이었지만, 지금의 금요일은 “이번 주도 잘 버텼다”는 안도와 “오늘만큼은 모두 내려놓고 싶다”는 바람이 동시에 깃드는 아주 특별한 날이 되었다. 특히 나는 출장도 많고 남편 역시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며 바쁜 스케줄을 보내기 때문에, 월요일과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쯤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이번 주도 쉽지 않네…” 하고 눈빛으로 말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새벽에 출근하고, 서로 엇갈린 채 집을 비우고, 아이들의 잠든 얼굴만 보고 하루를 끝내는 날들이 늘어날수록, 금요일은 우리에게 작은 희망처럼 다가왔다. “이번 주도 고생했으니까, 내일은 진짜 맛있는 거 먹자.” 그 말 한마디가 지친 마음을 조금은 붙들어주는 힘이 되었다.


아이들도 어느 순간부터 금요일을 특별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먼저 ‘불금’을 알려준 건 아니었다. 어느 날 둘째가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말했다. “엄마, 오늘 불금하자!” 너무 자연스러운 말투에 순간 내가 웃음을 터뜨리니, 둘째는 자신 있게 설명을 이어갔다. “친구들은 금요일엔 맛있는 거 먹고, 어떤 친구는 늦게 자고, 어떤 친구는 공부도 안 한대!” 아이의 눈은 마치 작은 축제를 앞둔 사람처럼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말랑해졌다. 평일 내내 바쁘고 흩어졌던 마음들이 금요일만큼은 약간은 느슨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금요일은 우리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작은 축제가 되었다. 아이들은 주말보다 금요일을 더 좋아하게 됐다. “오늘 불금이야, 너무 좋다!” 이 말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의 합창처럼 들렸다.


우리가 금요일을 이렇게까지 기다리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평일의 우리 삶은 늘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나의 일은 규칙적이지 않고, 남편 역시 출장과 미팅으로 스케줄이 자주 바뀐다. 일이 몰릴 때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아이들이 잘 때 들어오는 날이 며칠씩 이어지기도 하고,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강의가 연달아 잡히면 여러 날 외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뒤 엄마 없이 저녁을 먹어야 했던 날이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단순한 약속 하나 지키는 일조차 흐트러질 때가 있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아침이 되면 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얘들아, 이번 주는 엄마랑 아빠 모두 바쁠 거야. 우리 이번 주 서로 잘 도와주고, 불금에 맛있는 거 먹자. 엄마가 치킨 쏜다!” 놀랍게도 그 말 하나로 아이들은 일주일을 버틸 힘을 얻는다. “엄마, 우리 금요일에 뭐 먹어?” “오늘은 드디어 불금이야?” 이런 말이 오갈 때마다 나 역시 하루를 견디는 힘이 생겼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주일을 살아낸 뒤 금요일에 다시 만나는 순간이 마치 한 팀으로 재결합되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금요일이 되면,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열고 치킨집 메뉴를 살펴본다. 평소의 나는 소비에 신중한 사람이다. 할인 쿠폰을 꼼꼼히 챙기고, 포인트 적립도 빠뜨리지 않고, 남편에게 “짠순이”라는 말까지 들을 만큼 알뜰하게 사는 편이다. 그런데 금요일만큼은 그런 내가 잠시 사라진다. 평소엔 아껴두는 사이드 메뉴들도 금요일에는 망설임 없이 바구니에 담긴다. 치즈볼, 감자튀김, 떡볶이까지. 마치 금요일만큼은 ‘괜찮아, 오늘만은’이라는 마음이 조용히 작동하는 것처럼.


집 문을 열면 아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다가온다. “엄마 왔다! 치킨 시켰어?” 그 환한 목소리는 그 어떤 환영보다 따뜻하다. 배달 오는 소리에 아이들은 환호하고, 식탁에 둘러앉으면 서로가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경쟁하듯 풀어놓는다. “엄마, 나 오늘 줄넘기 대박 많이 했어!” “오늘 학교에서 발표했는데 진짜 떨렸어.” “엄마도 오늘 잘했어?” 아이들의 질문과 이야기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집에 돌아온 느낌’을 제대로 느낀다. 평일 내내 제각기 흩어져 있던 시간들이 금요일 저녁에 한 방향으로 모이는 듯했다. 식탁 위에는 치킨 냄새가 퍼지고, 아이들은 서로 말이 끊기지 않게 이야기하고, 나도 그 틈에 하루의 감정을 살짝 흘려보낸다. “엄마 오늘 힘들었어도, 너희 보니까 다 괜찮아지네.”


사실 금요일의 특별함은 치킨 때문만은 아니다. 바쁜 일주일 속에서도 아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는 감정, 일하는 나와 엄마인 나, 두 가지를 오늘만큼은 동시에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 조용한 뿌듯함이 금요일의 공기를 더 따뜻하게 만든다. 어떤 금요일은 더 마음이 뜨거워진다. 아이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나를 보며 “엄마, 이렇게 같이 먹는 거 너무 좋아”라고 말하는 순간. 단순한 말인데도 온몸이 따뜻해지는 감정이 퍼진다.


물론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날도 있었다. 차가 밀려 늦게 도착해서 아이들끼리만 치킨을 먹게 한 날, 둘째가 식탁에서 조용히 “엄마, 불금은 다 같이 하는 건데…”라고 말하던 순간. 그 서운함을 숨기려 애쓰던 눈빛이 마음에 오래 남아, 그날 밤 나는 한참 동안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그렇기에 지금 지켜낸 금요일의 약속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일주일 중 하루에 지나지 않는 날이고, 겉으로 보기엔 대단한 순간도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작은 약속 하나가 놀랍도록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오늘 나는 아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지켜낸 약속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날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인정이나 박수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조용한 칭찬 같은 순간. 워킹맘에게 금요일은 그렇게 작은 승리의 날이 된다.


그래서 나는 금요일이 참 좋아졌다. 이 날만큼은 가족도, 일도, 나 자신도 모두 잘 살아냈다고 느껴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치킨불금.jpg


<잠시, 작은멈춤>

1. 일을 시작하고 나서, 예전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2.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엄마의 바쁜 한 주’를 함께 버텨주고 있을까요?

3. 우리 가족에게만 있는 소소한 ‘의식’ 같은 순간은 무엇일까요? (예: 금요일 치킨)


“바쁘게 살아낸 일주일 끝에서 맞는 금요일은, 예전보다 더 크게 기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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