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여유가 마음의 여유를 데려올 때

스스로 번 돈으로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는 일

by 자모카봉봉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난 뒤,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돈을 바라보는 마음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존하는 걸 편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이라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 나에게 쓰는 일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남편은 늘 말했다. “괜찮아. 네일아트도 하고, 옷도 사고,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것도 사먹어. 당신은 육아라는 가장 큰 일을 하고 있으니까.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아마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나만의 기준 때문일 것이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알바를 시작했고, 우리 집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대신 생활비와 학비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썼다. 필요한 건 내가 벌어서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그걸 정답이라 말해주지 않았는데, 나는 그 기준을 꽤 오랫동안 집요하게 붙잡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시작하면서도 그 기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쇼핑몰 장바구니에 마음에 드는 옷을 넣어두고도 ‘결제하기’ 버튼 하나를 누르기가 참 어려웠다. “이건 지금 꼭 필요한 건가? 조금 더 싼 걸 찾아볼까?” 이런 생각이 끝없이 따라붙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 마시는 일도 망설여졌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별 일 아닐지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나 자신에게 쓰는 돈이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이제 돌아보면 그 시기의 나는 소비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허락하는 마음의 범위가 좁았던 것 같다. 요즘은 일이 잘 안 풀릴 때 일부러 카페에 가서 리셋을 하기도 하고, 집에 커피머신이 있는데도 사먹는 커피가 맛있다고 일부러 나가서 사 마시는데, 그때는 커피 한 잔도 참 쉽지 않았다. 스스로를 돌보는 데도 많은 허락이 필요했다.


수입이 다시 생겼을 때, 나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해방감 같은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아까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위한 소비는 늘 미루고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사실 진짜 불편함을 느꼈던 건 큰돈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나가는 작은 지출들이었다. 핸드폰 요금, 보험료,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자동이체들…. 그 금액이 아주 큰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나를 위한 지출도 내가 벌어서 하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늘 자리했다. 남편이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당연히 내가 써야지”라고 말해도 마음 한구석은 늘 무거웠다. 내가 번 돈으로 나의 고정비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을 다시 시작해 첫 강의비가 입금되던 날, 나는 휴대폰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 이제 나에게 필요한 돈은 내가 벌어서 해결할 수 있구나.” 문자를 보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깨 위에 올라와 있던 작은 짐이 조용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 기쁨은 생각보다 더 다양한 순간으로 퍼져나갔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혼자 지내시는데, 예전부터 나는 가끔 용돈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육아와 가사로 인해 경제활동을 쉬고 있던 시절엔 마음만 있었지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일을 다시 하고 조금씩 내 명의의 수입이 생기자, 엄마에게 용돈을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뻤다. 금액이 크지 않아도 된다. “내가 번 돈으로 드려요”라는 마음 자체가 뿌듯했다. 그 마음이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작은 선물 같았다.


일을 하며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감정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비싸 보이는 옷을 사거나 아이들에게 값비싼 체험을 시켜주는 일이 괜히 조심스러웠다. 남편이 힘들게 벌어온 돈을 내가 너무 쉽게 쓰는 건 아닐까 걱정했고, ‘가치 있게 써야 한다’며 스스로 기준을 더 높게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번 돈으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줄 때, 그때 느껴졌던 감정은 완전히 달랐다. 첫째에게 예쁜 옷을 사주고, 둘째가 좋아하는 체험 수업을 신청하고, 여행 중에 아이가 사고 싶어 하던 장난감을 망설임 없이 계산대에 올리는 순간들. 그때 느꼈던 묘한 뿌듯함은 단순히 돈이 아까워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기쁨을 ‘내 선택으로’, ‘내 몫으로’ 만들어줬다는 감정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나를 기다려준 덕분에 일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기니 오히려 그 마음이 더 크게 자랐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엄마가 너희를 위해 더 잘해볼게.” 이런 마음이었다.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생활비로 여행을 가는 건 늘 사치처럼 느껴졌지만, 내가 번 돈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는 순간 여행은 선택이 되었다. 숙소를 고르고, 비행기표를 비교하고, 지도를 보며 여행지를 고르는 과정도 행복했다.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 “이건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는 감정이 생각보다 나를 더 당당하게 만들었다. 여행을 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설레하며 캐리어를 끌어가는 모습,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마음 속에 뜨거운 따뜻함이 올라왔다. 그 순간들이 일을 다시 시작한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주었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다. 일이라는 건 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달콤함은 부정할 수 없었다. 돈을 벌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나 자신을 위해 쓰는 돈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졌고,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억지스러움 없이 자연스러워졌다. 돈을 벌며 느끼는 힘은 단순히 통장에 숫자가 찍혀서가 아니라, 내 삶의 선택권이 조금 더 넓어졌다는 사실에서 왔다.


일하는 내가 다시 좋아졌던 순간들은 큰 사건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에게 커피 한 잔을 사줄 수 있는 여유, 엄마에게 용돈을 드릴 수 있는 기쁨, 아이들에게 마음껏 좋은 경험을 선물할 수 있는 뿌듯함.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작은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그 조용한 순간들이 일하는 나를 다시 좋아하게 만들었다. 나는 앞으로도 내 속도를 지키며 일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나의 삶을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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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나에게 쓰는 돈이 불편하지 않으려면, 어떤 마음이 먼저 필요할까?

2. 오롯이 나를 위해 선물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일까?

3. 그동안 참아왔던 ‘나를 위한 작은 소비’는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의 허락이 아니라, 나의 선택으로 살아가는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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