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감정이 맑아지는 순간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 지내던 시절, 나는 기쁨과 보람의 거의 모든 부분을 아이들에게서 찾았다. 아이들의 웃음과 말 한마디가 하루의 성취가 되었고, 아이들의 기분이 곧 나의 기분을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더 잘 키워야 한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고, 그 마음은 어느새 ‘내 방식대로 키워야 한다’는 고집으로 변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이들이 공부를 조금만 대충해도 신경이 곤두섰다. 매일 해야 하는 공부가 있었다. 국어, 영어, 수학을 기본으로 3~4가지 정도 되는 짧은 학습이었다. 사실 아이들 나이에 비하면 아주 큰 양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걸 ‘기초’, ‘최소값’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기 싫어하는 날, 하나라도 빼먹는 날이면,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화를 내고 혼을 냈다. 하루 정도 안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이 정도도 못하겠어?”라는 마음이 분명 있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최소값’은 철저히 나의 기준이었을 뿐, 아이들에게는 결코 작은 양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고 바란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뱃속에 있었을 때, 내가 아이들에게 바란 건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라”, “행복하게만 자라라”였다. 아이가 열이라도 나면 “제발 아프지만 말자”, “공부 못해도 다 괜찮으니 건강하기만 하면 돼”라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도 더 빌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고 나의 세계가 ‘육아’라는 좁은 공간 안으로만 줄어들자,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가 하는 행동이 곧 나의 하루가 되었고, 아이의 성취가 곧 나의 성취처럼 느껴졌고, 아이의 부족함이 곧 나의 부족함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아이에게 기대치를 높여갔다.
원래 육아 루틴은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나는 본래 새로운 자극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며 밖으로 나서며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루 종일 집 안에서 반복되는 일상은 나를 점점 더 좁은 공간 안에 가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나만의 시간’이었는데, 어쩌면 그 시절에는 그 시간이 단 몇 분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집착하는 마음과 ‘나’로 살고 싶은 마음 사이에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충돌은 예민함으로 드러났고, 그 예민함은 가족들에게까지 번졌다.
남편은 어느 날 농담처럼 말했다. “엄마는 우리 집 기상청이야.”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맞는 말이었다. 내 마음이 흐리면 집안 공기도 흐려졌고, 내 기분이 나쁘면 온 집안이 조용해졌다. 가족은 늘 나의 표정을 살피며 움직였다. 가장 먼저 무너진 건 내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그러던 내가 일을 다시 시작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아이들과의 거리’였다. 적당한 거리를 두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루에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자, 아이들에게서만 기쁨을 찾으려 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아이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예전만큼 화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하루가 곧 나의 하루가 아니라는 감각이 생기면서 아이를 바라보는 눈이 부드러워진 것이다.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아이에게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는 이유는 내가 바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나’를 찾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따로 있고, 아이들도 그들만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시기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화내는 일도 줄어들었다. 아이들이 잘해야만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시대는 그렇게 서서히 지나갔다.
일을 다시 시작한 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다시 ‘살아가는 느낌’을 되찾았다. 강의 준비를 하며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 강의장으로 가는 길의 설렘, 나라는 사람이 엄마 이외의 이름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감각이 다시 돌아왔다. 그 변화는 집 밖에서 시작됐지만, 집 안에서 더 확실하게 드러났다.
신기하게도, 내가 다시 좋아지니 가족의 분위기도 과하게 밝아졌다. 아이들도 편안해졌고, 사소한 일로 울거나 떼쓰는 일도 줄었다. 남편도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집안 날씨가 늘 맑아.” 그 말은 농담 같았지만, 사실 그 어떤 칭찬보다 크게 마음에 남았다.
이제 알겠다. 내가 다시 빛나는 장면들은 무언가 거창한 성취에서 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기대치를 내려놓고, 내 삶의 중심을 아이들에게만 두던 시기를 지나 다시 ‘나라는 사람’에게 돌려주는 그 순간들에 있었다. 그 변화 하나가 우리 가족의 공기까지 조용히 바꾸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다시 살리는 일은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나답게 살아갈 때, 가족도 제자리를 찾는다. 아이들이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공부를 잠시 놓아도, 하루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이제 안다. 내 마음이 건강하게 숨 쉴 때, 우리 집안의 날씨도 함께 맑아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잘 살고 있나? 나는 나답게 숨 쉬고 있나?” 아이들이 아닌, 나에게 먼저 건네는 물음. 그 물음 하나가 우리 가족의 날씨를 맑게 만들고,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키우고 있었다.
<잠시, 작은멈춤>
1. 아이에게 불필요하게 강요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2. 감정을 가족에게 덜 전달하려면, 나는 어떤 여유가 필요할까요?
3. 엄마가 아닌 ‘나’로서 느낀 가장 최근의 기쁨은 무엇인가요?
"내 인생을 다시 살아가기 시작하니, 아이도 자신의 인생을 더 당당하게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