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두 세계를 향해 살아가는 법

두 세계가 충돌하지 않도록, 천천히 조율하며

by 자모카봉봉

요즘의 나를 보면 육아도 즐겁고 일도 즐겁다. 어느 하나를 놓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조금은 생겼고, 예전처럼 과하게 흔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지점까지 오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내가 찾으려 했던 건 ‘밸런스’였다. 일과 육아, 그리고 나라는 사람 사이의 균형. 그 균형이 무너지면 가족의 공기까지 달라진다는 걸 몇 번이고 경험하며 조금씩 조율해온 시간들이 있었다.


프리랜서 강사라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덜 해낼 수도 있는 구조다. 누군가에게 승인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상사가 정해주는 일정도 없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다. 듣기만 하면 참 자유롭고 좋아 보이며, 실제로 그런 부분도 있다. 정해진 일정만 변경할 수 없는 구조를 빼면 대부분의 일은 내 속도와 선택으로 조절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자유는 동시에 끝없이 달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을 항상 안고 있다. 욕심이 조금만 앞서면 일정은 금세 과해지고, 과해진 일정은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에게 허리를 꺾듯 부담을 안긴다.


나는 나름대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 분야가 아니어도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라는 말에 스케줄을 억지로 끼워 넣은 적도 있었다. 하루에 강의를 두 개 연달아 잡아서 점심도 못 먹고 이동한 날도 많았다. “그래도 할 수 있어”라며 나를 다독였지만, 정작 강의실 문을 나서면 온몸의 힘이 빠져 도로에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준비였다. 나는 강의안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매번 조금씩이라도 구조를 바꾸고, 예시를 새롭게 정리하고, 더 나아진 버전으로 전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일정이 너무 바쁘면 그 과정을 온전히 밟지 못했고, 그러면 강의 후에 늘 같은 감정이 남았다. “내가 욕심을 부렸구나.” 할 수 있다고 해서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그제야 깨닫곤 했다.


그렇게 지쳐 있을 때면 또 다른 불편이 나를 덮쳤다. 바로 ‘비교’였다. 다른 업계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강사 업계는 특히나 비교가 빠르게 작동하는 곳이다. 누군가는 매일 강의 사진을 SNS에 올리고, 강의 점수 캡처를 공유하고, 참여자 후기를 올린다. 물론 홍보용이라는 걸 알지만, 계속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쟁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얼마나 일정이 꽉 찼는지, 어떤 기업에서 강의했는지 등이 은근한 ‘기준’처럼 흐르고 있었고, 나 역시 그 기준에 조용히 긴장했다. 실제로 업계 모임에서는 “요즘 어디서 강의 많이 하세요?”, “요즘도 바쁘시죠?”라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 자리에 있으면 마음 한쪽이 괜히 움츠러들 때가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그 속도가 원하는 속도일까?” 사람인지라 SNS를 보면 자극이 되고, 잘하는 강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자극이 언제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은 괜히 내가 너무 느리게 사는 것 같고, 일정이 많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 감정이 들면 아이들에게 향하는 마음도 흔들렸다. 강의 준비가 잘 안 되고, SNS의 숫자에 일희일비하고, 비교로 예민해지던 날이면 집에 돌아와 아이들이 사소한 걸 삐끗해도 괜히 짜증이 더 크게 올라왔다. 내가 흔들리면 집안 공기도 흔들린다는 걸 뼈저리게 알면서도 말이다.


비교하는 마음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 시선은 나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일에서 “왜 나는 저 사람만큼 하지 못할까”라는 조급함이 쌓이면, 그 불안은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까지 옮겨갔다. 얼마 전 아이 친구 엄마들과 모임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공부 방식과 생활 루틴, 자기주도성 이야기가 오갔다. 그 대화들은 겉보기에는 평범했지만 내 마음에는 묘하게 오래 남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친구들은 스스로 숙제한다던데?”, “자기 전에 치카도 혼자 한다더라?”라는 말을 쏟아냈다. 그게 진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비교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얼마 뒤에는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아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날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내 마음속에서는 조용히 평가가 시작되었다. 행동 하나하나에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고, 결국 친구들이 돌아가자마자 나는 아이를 혼냈다. “아까 그렇게 행동하면 어떡해?”, “조금만 더 배려 있게 행동하면 안 돼?” 그때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는 왜 내 친구들이 놀러 오면 나는 꼭 혼나?” 그 말은 너무 정확해서, 너무 아파서, 머리가 띵했다. 부족한 건 아이가 아니라 흔들리고 있던 내 마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지켜야 하는 건 ‘남들이 말하는 기준’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맞는 밸런스라는 것. 나에게 맞는 일정, 아이에게 맞는 속도, 우리 집에 맞는 방식. 그 기준이 무너지면 나는 금방 예민해지고, 엄마가 흔들리면 아이들도 이유 없이 요동친다. 나의 감정이 집안 공기의 첫 번째 날씨가 되는 일이 아직도 흔한 만큼, 나는 더 조심스럽게 나를 다루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다른 집의 이야기에 너무 귀 기울이지 않기. 누군가의 방식이 정답이라는 생각 내려놓기. 비교 대신 관찰하기. 우리 가족에게 맞는 일상으로 돌아오기.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맞는 속도로 일하기.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다시 빛나는 순간들은 무언가 거창한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교에서 벗어나 나와 우리 가족의 속도를 지켜줄 때 찾아온다는 걸. 그 조용한 변화 하나가 우리 가족의 공기까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꾸고 있다.



우리의 속도.jpg


<잠시, 작은멈춤>

1. 요즘 나를 가장 흔들리게 한 비교는 무엇이었을까요?

2. 아이에게 무심코 던진 말 중, 비교가 섞여 있던 말은 없었을까요?

3. 아이에게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은 무엇일까요?


"비교의 소음에서 벗어나자, 삶은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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