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앞에 드러난 엄마의 눈물
아이들이 아주 어렸던 시절, 나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날. 몇 년 전, 갑자기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소리, 그날의 나의 모습까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는다. 첫째는 일곱 살, 둘째는 겨우 네 살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그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태어나 처음 봤을 것이다. 평소에는 웃고 챙기며 바쁘게 움직이던 엄마였는데, 그날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울다가 멍해지고, 멍해지다가 다시 울었고, 몸과 마음이 분리된 사람처럼 그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장례는 3일 동안 치러졌다. 짧지만 가장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누가 왔다 갔는지, 어떤 말을 들었는지조차 흐릿했다. 장례는 겨우겨우 잘 치러졌지만, 나는 그냥 따라다니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진짜 어려움은 장례가 끝난 후부터였다.
아빠가 떠난 뒤에는 사망신고부터 각종 서류와 자산 정리, 은행·보험사의 명의 변경 같은 절차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빠의 일과 관련된 문제들까지 겹치면서 거의 1년을 그 일에 매달려 지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은행만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서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모든 것이 완전히 마무리되기까지는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삶의 허무함’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다. 부모라는 존재가 이렇게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 남겨진 이들은 이렇게 버거운 절차와 감정의 파도를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참 막막하게 느껴졌다. 슬픔, 무기력, 혼란이 뒤섞여 감정의 모양조차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처음 보았다. 평소라면 뛰어다니며 장난칠 나이였는데 그 시기만큼은 집 안이 늘 조용했다. 아이들은 공기를 읽듯 조용히 움직였고, 내 눈치를 살피듯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주변 어른들은 “애들이 어른스러워졌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오히려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아이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나를 배려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두려웠다. ‘내가 너무 많은 슬픔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건 아닐까’,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장면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설거지를 하다 갑자기 눈물이 떨어져 조용히 물을 잠그고 서 있던 날도 있었고, 밥을 하다가 멍하니 불 앞에 서 있던 날도 있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에는 베란다에서 소리 없이 울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침이 되면 아이들 가방을 싸고, 하원을 챙기고, 저녁을 만들며 하루를 억지로 이어붙였다.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고, 그 속에서 나는 나조차도 어떤 감정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그 순간 역시 삶의 일부였다. 부모라고 해서 기쁜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엄마도 흔들릴 수 있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의 삶에는 밝은 날만큼이나 어두운 날도 포함된다는 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었다. 그 시기는 ‘엄마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엄마도 어쩔 수 없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 시기를 지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솔직해졌다. “엄마 오늘은 기운이 없어.” “엄마 오늘은 조금 쉬고 싶어.” 그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응, 엄마 쉬어.”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대답인 것처럼. 엄마도 사람이었고, 엄마도 계속 자라고 있었고, 엄마도 여전히 삶을 배워가는 중이라는 걸 아이들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가끔은 흔들리는 내 마음이 잘못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흔들린다는 건 내가 여전히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삶에 진심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흔들림 덕분에 엄마인 나도, 한 사람인 나도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삶은 언제나 밝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두운 장면 역시 지금의 나를 이루는 중요한 일부였다. 흔들리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더 인간다워지고, 더 다정해지고,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조용히 바꾸어 놓았다.
<잠시, 작은멈춤>
1. 나는 마지막으로 언제 마음이 크게 흔들렸을까요?
2. 그 흔들림 속에서 어떤 감정을 가장 강하게 느꼈을까요?
3.그 순간이 나에게 남긴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나의 눈물이 아이에게는 삶을 배우는 장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