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물에서 건너온 깨달음
둘째의 태권도 2품 심사는 완연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준비되었다. 높은 파란 하늘에 구름이 얇게 깔려 있었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다. 땀을 흘리며 놀이터에서 뛰어놀기 좋은 계절이었다. 여름 내내 에어컨 바람 속에만 있던 아이들이 가을을 만나자마자 한껏 들떠 있는 것처럼, 둘째 역시 이 계절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아직은 밖에서 놀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에게, 심사 준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둘째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노는 걸 가장 좋아하는 아이였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책가방을 멘 채로 뛰어가 만나는 단짝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 명이 모이면 스스로 ‘4총사’라 부르며 놀이터 한켠을 자신들만의 세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여름에는 더워 제대로 놀지 못했고, 장마철엔 비가 와서 흐지부지해진 날도 많았는데, 가을이 오자마자 다시 매일 신나게 모였다. 친구 셋과 함께 놀이터 위를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식당놀이를 하기도 하고, 자전거로 동네 곳곳을 탐험하기도 한다. 미끄럼틀 아래에는 자신들만의 비밀기지가 있고, 그곳에서 서로만 이해하는 언어로 요리 레시피를 정하고, 탐험 계획을 세우며 깔깔거린다. 그런 아이에게 “오늘 태권도 가야 하니까 놀이터는 30분만”이라는 말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작은 실망을 남기는 것 같았다.
태권도는 둘째가 유치원에 다니던 때부터 꾸준히 해온 운동이다.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었고, 둘째는 뭐든 한번 시작하면 쉽게 그만두지 않는 아이였다. 유치원 시절에는 띠를 바꿀 때마다 새로운 품새를 배워야 하고 운동량도 점점 많아졌지만, 쉬고 싶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마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시작한 덕에 친구들 사이에서 ‘태권도 잘하는 아이’로 불리게 된 것이 기분 좋았던 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어른들에게 칭찬을 들을 때마다 작은 어깨가 얼마나 으쓱해지는지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 기쁨이 아이를 다시 도장으로 향하게 했던 것 같다.
심사 한두 달 전부터 훈련은 조금 더 강해졌다. 평소에는 일주일에 세 번 나가던 태권도였지만, 심사 기간에는 다섯 번을 나간 날도 많았다. 어떤 날은 친구들과 너무 즐겁게 놀다 보니 도장 시간이 되어 허겁지겁 뛰어간 적도 있었고, 반대로 연습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하루에 두 타임을 뛰던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긴장감이 있었는지 상당히 성실하게 연습했다. 땀으로 젖은 목덜미를 닦으며 “오늘은 좀 힘들었어”라고 말하던 얼굴에는 그래도 뿌듯함이 묻어 있었고, 품새를 반복할수록 동작이 조금씩 매끄러워지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는 기색이 나타났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요리놀이를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아쉬운 표정으로 도장을 향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이런 말을 꺼냈다. “엄마, 오늘은 친구들이랑 놀면 안 돼?” 얼마나 여러 번 망설였을지 목소리만 들어도 느껴졌다. 그 말이 잦아질수록 아이의 마음 한편이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음을 나 역시 알아차렸다.
심사 일주일 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연습하던 품새를 중간중간 까먹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는 척척 해내던 동작인데 갑자기 헛갈리기 시작했고, 관장님께도 몇 번 혼이 났다. 그날 집에 와서도 나에게 한 번 더 혼이 났다. “왜 집중을 못 했느냐, 얼마 안 남았는데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말이 아이를 더 위축시켰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연습날에도 실수가 이어졌고, 관장님은 일부러 경각심을 주기 위해 조금 더 강한 톤으로 아이를 지도하셨다.
“휴, 너 지금 와서 이러면 어떻게 해?” 내 입에서도 그 말이 먼저 나왔다. 정말 의도했던 말은 아니었는데, 이미 튀어나와 버린 뒤였다. 평소엔 웬만하면 울지 않던 아이가 그날은 서럽게 울었다. 울면서도 다시 자세를 잡고, 관장님이 보여주는 동작을 따라 하며 품새를 맞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 한쪽이 함께 아려왔다. ‘지금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꾸짖음이 아니라 위로인데, 나는 또 내 조급함을 아이에게 건넸구나.’ 그런 생각이 스쳐갔지만 이미 상황은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그날 학교에서 농구 방과후 수업까지 하고 왔다는 걸. 온몸을 쓰는 활동이 이어진 날이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걸. 평소 실력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아이란 것도. 결국 내가 불안했던 건 아이의 실력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한두 번의 실수’에 대한 과도한 민감함이었다.
그날 밤, 둘째는 말했다. “오늘은 아빠랑 자고 싶어.” 그 짧은 문장 속에 아이의 모든 감정이 들어 있었다. 아빠 역시 그런 마음을 느꼈는지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둘이 나란히 누워 작은 목소리로 나누던 대화는 나중에 남편에게 전해 들었다. “나 포기 안 하는 사람인데… 오늘은 처음으로 그만하고 싶었어.” “나는 엄마아빠한테 잘하는 것만 보여주고 싶은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작은 어깨를 짓눌렀던 부담이 얼마나 오래 아이 마음속에 쌓여 있었는지, 그 무게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오는 듯했다.
그때 아이를 가장 위로한 건 아빠의 솔직함이었다. “아빠도 오늘 실수했어. 그리고 안 좋은 말도 들었어. 어른도 실수해. 가끔은 억울한 실수도 있어.” 그 말에 아이의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 풀렸다고 했다. 아이는 어른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래서 자신도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마음 깊이 이해한 것 같았다.
심사 당일, 둘째는 놀라울 만큼 침착했다. 평소보다 덜 웃었지만 덜 긴장한 것도 같았다. 품새를 시작하기 전, 앞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 듯했지만 곧 단단히 자리 잡았다. 그리고 품새와 겨루기를 한 번의 흔들림 없이 씩씩하게 해냈다. 발차기 동작이 정확히 올라갈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작은 환호를 외쳤다. 겨루기에서의 자세는 이전보다 훨씬 단단했고, 아이의 표정에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조용히 물었다. “엄마도 실수한 적 있어? 엄마도 잘못해서 혼난 적 있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엄청 많지. 근데 신기한 건, 실수하고 나면 다음엔 더 잘하더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어쩌면 내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걸. 아이는 과정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있었는데, 나는 완성된 모습만 보려고 했던 건 아닐까.
실수는 멈춤이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지나야만 단단해지고, 그 단단함이 결국 아이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킨다는 걸 나는 그날 다시 배웠다. 둘째는 심사를 통해 실력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마음의 성장이라는 더 큰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 덕분에 또 한 번 부모로서 자라고 있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실수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마음, 다시 해보겠다는 의지, 그리고 서로를 향한 믿음이었다. 그날의 둘째 덕분에, 나도 한 걸음 더 자란 날이었다.
<잠시, 작은멈춤>
1. 나는 아이의 실수를 볼 때 어떤 감정이 먼저 올라오는가?
2. 그 감정은 나의 어떤 기준에서 비롯된 걸까?
3. 실수를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 바꾼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서툴러도 괜찮다는 말이, 그날 아이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