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보다 솔직함이 가까움을 만든다
우리 가족은 시아버님이 결제해주신 듀오링고 가족요금제로 함께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시아버님은 원래부터 ‘배움’에 진심인 분이셨다. 나이가 드셔서도 계속 언어공부를 하시고, 새로운 기술이나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시도해보는 분이다. 그래서 듀오링고라는 어플을 발견했을 때도 많이 반가우셨을 것이다. 영어를 재미있게 배우는 도구일 뿐 아니라, 손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 결국 본인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하자”며 가족요금제로 결제하셨고,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작은 학습 공동체가 되었다.
나와 첫째 딸, 둘째 아들은 매일매일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조용히, 그리고 은근히 경쟁하듯 어플을 켠다. 듀오링고의 재미있는 점은 하루라도 빠지면 ‘불꽃’이 꺼지면서 이어 쌓아온 기록이 끊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내 핸드폰을 슬쩍 확인하는 일이 잦아졌다. “뭐 봐?”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엄마 불꽃 몇 일째인지 봤지~” 하며 키득거렸다. 그러곤 “엄마, 오늘은 아직 안 했네?”, “엄마 불꽃 꺼지겠다!”, “엄마, 듀오링고 화났어!” 라며 장난스러운 경고를 남기곤 했다.
아이들 눈에는 엄마라는 사람이 늘 부지런하고 정돈된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다. 뭐든 잊지 않고 챙기고, 일정도 놓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 그런데 듀오링고를 하면서 내가 가끔 놓치는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들은 조금 놀란 듯 말했다. “엄마도 맨날 열심히 하는 건 아니네! 우리랑 똑같네!”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나는 듀오링고를 시작하고 나름 열심히 했다. 주마다 리그가 갱신되는데, 처음에는 늘 상위권으로 새로운 리그에 진출하곤 했다. 공부가 재밌다기보다 꾸준히 무언가를 채워나가는 성취감이 좋았고, 혼자서 작은 대회를 치르는 듯한 느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의가 몰리는 성수기가 오자 상황은 달라졌다. 하루 종일 교육을 진행하고 이동하고, 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몸과 머리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듀오링고는 불꽃만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이 되었다. 리그 순위는 점점 떨어졌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 모습을 본 첫째가 말했다. “아, 엄마도 맨날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나를 위로하듯 건넨 그 말 속에서, 아이가 ‘사람이 늘 같은 속도로 달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더 재미있는 건 요즘 듀오링고에 체스 과목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체스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완전히 낯선 분야였다. 말의 이름도 생소하고, 규칙도 복잡해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엄마도 모르는 걸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경험. 이 말만으로도 뭔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 체스를 켰을 때, 우리는 모두 어리둥절했다. “이게 왜 말이 이렇게 생겼어?” “얘는 왜 ‘ㄱ’자로 가?” “퀸이 제일 센 거야? 비숍은 누구야?” 퀸, 비숍, 나이트 이름을 외우지 못해 벌어진 우당탕탕한 혼란은 그 자체로 작은 코미디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첫째가 규칙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단계가 된 것이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나와 둘째에게 “엄마, 동생아, 이건 이렇게 움직이는 거야. 봐봐.” 하며 설명까지 해주었다.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에게 가르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선생님이었다. 설명하는 첫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반짝였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뭉클해졌다. 아이가 무언가를 이해하고, 그걸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생기는 과정은 어른이 봐도 대견한 일이다.
듀오링고와 체스를 하면서 아이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었다. “엄마는 원래 영어 잘했어?” “엄마는 원래 사람들 앞에서 말 잘했어?” “엄마는 원래 요리 잘했어?”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아니. 엄마도 다 노력해서 된 거야. 엄마도 처음부터 잘한 건 없어.”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이미 잘하는 엄마의 모습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이 진짜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듀오링고에서 내가 느릿하게 진도를 나가거나, 체스에서 어설프게 말을 옮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 같다. 엄마도 매일 조금씩 배우는 사람이라는 걸. 가끔은 놓치는 날도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조용히 버티고 쌓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서툼’과 ‘성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럽게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변화는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준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엄마도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이들 앞에서 숨기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조금씩 편안해진다.
그리고 이번 겨울, 우리는 또 하나의 ‘처음’을 함께 해보려고 한다. 아이는 처음으로 스키 강습을 받고, 나는 대학 시절 잠깐 타본 뒤로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스키를 다시 배워볼 계획이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두렵기도 하다. 타본지도 너무 오래 되었고, 체력이 예전 같지도 않다. 어쩌면 첫날엔 계속 넘어지고, 근육통 때문에 며칠을 신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마저 괜찮을 것 같다. 아이들 옆에서 똑같이 서툴고, 똑같이 배우고, 같은 눈밭에서 함께 넘어지고 웃는 경험은 우리 가족에게 또 다른 ‘배움의 계절’이 될 것이다.
엄마도 여전히 배우는 사람. 그러니 서툴러도 괜찮다. 아이들은 서툰 엄마를 보며 용기를 얻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더 단단해진다. 올겨울 나는 그 사실을 스키장에서도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잠시, 작은멈춤>
1. 아이 앞에서 서툰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적이 있나요?
2. 아이와 함께 새롭게 배워본 것이 있나?
3. 아이에게 ‘엄마도 배우는 중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은 순간이 있었나?
"아이들은 완벽한 엄마보다 노력하는 엄마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