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나를 다시 세워주는 말
아이들이 하는 말은 이상하게 더 깊게 스며든다. 어른들의 말보다 더 진솔하고, 더 직접적이고, 더 맑아서 그런지, 가끔은 짧은 한마디가 하루의 균형을 다시 잡아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말은 계산되지 않고, 꾸밈이 없고, 순간의 마음을 그대로 꺼내 어른에게 건네는 힘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 투명한 마음 앞에서는 어른도 괜히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남편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기념일마다 정성껏 눌러쓴 그의 편지보다 아이들이 삐뚤빼뚤 적어주는 “엄마 사랑해”, “엄마 최고” 같은 말이 더 진하게 마음에 들어오는 날이 있다. 남편의 편지는 성인이 쓴 문장이라 때로는 너무 완성도가 높고, 어딘가 다듬어진 느낌이 있다면, 아이의 문장은 문장과 문장 사이가 비어 있어도, 맞춤법이 틀려 있어도, 이유 없이 마음을 흔든다.
사실 남편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쓴 장문의 편지보다, 아이들이 대충 색종이에 끄적여온 “아빠 사랑해요”라는 네 글자에 더 감동해서 눈물을 훔치는 걸 보면 말이다. 아이의 글씨는 고르지 못하고, 글자 간격은 제멋대로이지만, 그 서툼이 더 큰 진심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첫째아이는 여자아이라 그런지 편지를 참 많이 써줬다. A4용지, 색종이, 메모지, 스케치북 등 어디든 마음만 생기면 쓱쓱 적어오는 아이였다. 내용은 늘 비슷했다.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우리가족 최고!” 그런데 그 단순한 말들이 이상하게 매번 새로웠다. 마치 매일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노래처럼, 들을 때마다 마음결이 달라지는 문장이었다.
더 귀여웠던 건 아이가 ‘잘못했을 때 쓰던 편지’였다. 동생과 싸웠거나, 숙제를 안 하고 딴짓을 했거나, 괜히 투정을 부렸을 때, 아이는 종이를 꺼내 편지를 썼다. “엄마 이제 공부 열심히 할게요.” “엄마, 동생이랑 사이좋게 지낼게요.” “앞으로 제가 할 일을 스스로 잘 할게요.” 그 말들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읽으면서 웃음이 나고 울음이 나는 순간이 많았다. 아직 철이 덜 든 아이가 작은 마음으로 쓴 다짐인데도, 어른의 사과나 약속보다 훨씬 순수하고 진심이었다.
그리고 편지에는 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인형 스티커, 반짝이 스티커, 작은 캐릭터 스티커… 아이는 문구점만 가면 스티커를 사달라고 했다. “집에 스티커 많잖아. 뭐하러 또 사?” 하고 내가 물으면, 아이는 망설이다 고백하듯 말했다. “엄마… 편지에 붙여주려고… 엄마편지에 예쁘게 하고 싶어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괜히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스티커가 아이에게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엄마에게 가장 예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늘 “또 사?”라고 말했던 거다. 아이가 내게 마음을 더 예쁘게 주고 싶어서 고른 작은 스티커들이었다는 걸, 그제야 온전히 이해했다.
그 편지들을 나는 작은 상자에 넣어두고 가끔 혼자 열어본다. 상자를 열면 종이 냄새와 아이의 어린 손글씨가 한꺼번에 다가온다. 그때마다 ‘맞다, 이 시절이 있었지’ ‘이 작은 아이에게 나는 세상의 전부였지’ 그런 생각이 조용하게 떠오른다. 못난 글씨체, 맞춤법이 틀린 문장, 띄어쓰기 하나 없는 문장들이 다시 나를 엄마로 만든다.
둘째는 아들이라 그런지 표현이 많지는 않다. 편지를 써서 건네기보다는 자기만의 상상력을 담아 뚝딱뚝딱 만들기를 하는 편이다. 종이컵, 색종이, 테이프, 클레이… 무엇을 쥐어줘도 기발한 것을 만든다. 그런데 어린이집 만들기 작품이나 학교 미술 작품에서 작게 적힌 “엄마아빠 사랑해요” 같은 문장을 마주하면 그 짧은 문구가 어쩐지 더 크게 느껴진다. 말로는 잘 안 하던 아이가 이런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가슴이 따뜻해진다.
사실 나는 그렇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니었다. 늘 조금은 부족하다고 느꼈고, 겉모습에도 자신이 없어 빈틈을 채우려고 더 노력하며 살아온 것 같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실수하면 금방 들킬 것 같아 더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서 주변에서 종종 말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살아?”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나는 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아이가 생긴 뒤, 아이들은 아주 쉽게 내 빈틈을 채워준다.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뻐. 안경 써도 예쁘고, 안 써도 예뻐.” “우리 엄마 뭐든 잘해. 요리도 잘하고, 만들기도 잘해.” 이런 말들이 과장된 칭찬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들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한다. 아이가 보기에 ‘최고’라는 사실 하나로,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일을 하며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는 더 그렇다. 준비한 만큼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 날, 강의가 생각만큼 풀리지 않는 날, 괜히 내 실수만 크게 보이는 날, 집에 오는 길이 평소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날들. 어른의 일상은 이런 흔들림이 참 잦다.
그런 날 현관문을 열면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넨다. “엄마, 오늘도 수고했어.” “엄마, 보고 싶었어.” 바깥에서는 흔들릴 수 있는 나라도 아이들의 세계 안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최고’이고,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존재이다. 아무 조건 없이 붙이는 이 말들은 한 번에 마음을 다시 중심으로 돌려놓는다.
아이의 한마디는 일하는 나를 붙잡아주는 가장 조용하고도 확실한 위로다. 흔들려도 괜찮다고, 엄마는 엄마라서 사랑받는 거라고, 아이들은 매일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어른의 세계에서 흔들리는 만큼, 아이들의 말로 다시 균형을 찾으며 살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잠시, 작은멈춤>
1.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아이의 말은 무엇이었나요?
2. 나는 아이에게 어떤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나요?
3. 아이의 말 속에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있었나요?
"흔들리는 날에도, 아이의 세계 안에서의 나는 언제나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