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이라 마음의 언어

아이가 전해준 가장 따뜻한 표현

by 자모카봉봉

첫째가 아주 어렸을 때, 한 번 큰 수술을 받았다. 처음 문제가 발견된 건 100일이 막 지나던 시기였다. 사실 이렇게 어린아이는 열이 나면 안 된다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에게서 열이 나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했지만 그날은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보통 아기들은 중이염으로 열이 나는 경우가 많아 귀를 들여다보고, 다른 가능성을 살펴봤지만 중이염도 아니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혹시 모르니 요로감염 검사를 해보자”는 말에 소변검사를 의뢰하고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을 때, 아이는 요로감염이 맞았다. 요로감염 자체는 아기들에게 흔하게 일어날 수 있지만, 의사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감염의 원인보다 중요한 건 구조적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단순 감염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구조적 문제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결국 수술을 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대학병원에 갔다. 소변검사를 하고, 감염 재발을 막기 위해 예방용 항생제를 매일 먹였다. 아무리 소량이라고는 해도 그 어린 아기 입에 항생제를 넣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미안했던지 모른다. 요즘은 웬만하면 항생제를 피하는 시대인데,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것을 먹여야 했다. 약을 넣을 때마다 ‘미안해, 조금만 더 힘내자’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소변검사는 더 어려웠다. 아기들은 조절 능력이 없어서 소변을 볼 때까지 병원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날은 아침에 병원에 도착해 저녁이 다 되어서야 검사를 끝낸 적도 있었다. 입원한 것도 아닌데 병원 복도를 수십 번 오가며 하루를 보냈다. 소변백을 붙여놓고 유모차를 끌며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그 사이 아이는 밥도 먹고 낮잠도 자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 시간들은 엄마에게는 끝없는 기다림과 조용한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15개월이 되었을 때, 수술 날짜가 잡혔다. 수술 전날 밤 나는 일주일치 짐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작은 옷 몇 벌, 기저귀, 물티슈, 좋아하던 인형까지. 낯선 병실에서 조금이라도 아이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하나라도 더 챙기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우리가 어디 놀러 가는 줄 알고 들떠서 따라다녔다. 그 모습을 보며 차마 병원 간다는 말, 수술한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걱정이라는 감정을 그 어린 얼굴에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수술은 전신마취에 개복수술, 세 시간 가까이 걸리는 큰 수술이었다. 수술 당일 아침, 원래는 수술실 안에서 마취를 해야 했지만, 우리 아이는 낯을 많이 가리던 때라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안기려 하지 않았다. 결국 복도에서 스티커 놀이를 하며 이동하다가 그 자리에서 마취를 했다. 마취제가 몸으로 들어가자 아이의 눈이 스르르 감기고 작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아이의 몸이 내 손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느낌. 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이렇게 작은 몸이 이 큰 수술을 견딜 수 있을까.’ 마음속에서 울음이 차오르는 걸 온몸으로 버텼다.

수술이 시작되고 대기실에 남겨진 나는 울기만 했다. 숨을 고르려 해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우리 정신 차리자. 이따 아이 깨어나면 우리가 안아줘야 해.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먹자.”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더 눈물이 났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 억지로 밥을 씹었다. 아이가 깨어났을 때 지켜주는 부모가 되어야 하니까.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처음 마주한 아이는 작은 몸에 여러 선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심장박동을 확인하는 기계음, 수치가 오르내릴 때마다 깜빡이는 불빛. 아이는 너무 작은 몸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견디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직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아이가 점점 의식을 찾기 시작하며 끙끙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아직 너무 어린데도 웬만하면 울지 않는 아이였다. 차라리 엉엉 울어줬으면 싶었다. 울어도 된다고, 엄마 앞에서는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아이의 가는 끙끙거림만 병실에 퍼질 뿐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이가 나를 알아보는 눈빛을 했다. 그리고 포동포동한 작은 손으로 나를 꽉 끌어안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 포옹 하나로 모든 게 전해졌다. “엄마, 나 힘들었어.” “나 이제 괜찮아.” “엄마 옆이라서 더 괜찮아.” 작은 손에서 투정부림과 안도와 안정감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그 포옹은 어떤 말보다도 깊은 메시지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아이가 나를 ‘힘껏’ 안아주는 순간이 참 좋다. 그 포옹이 주는 온기는 오래전 회복실에서 처음 느꼈던 그 감각과 닿아 있다. 그리고 그 온기 속에서 나는 오래전 회복실의 그 순간을 떠올린다. 아이가 처음으로 ‘필요해서’ 안겨온 순간, 그리고 내가 엄마로서 가장 깊이 연결되었던 순간을.


그 경험들 덕분에 나는 포옹이야말로 말보다 먼저 마음을 치유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이건 단순한 감정의 착각이 아니라 연구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라고 한다. 포옹을 하면 몸에서는 스트레스를 낮추는 호르몬이 나오고, 심박수가 잔잔해지며, ‘괜찮다’는 신호가 조용히 퍼져나간다. 단 20초의 포옹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하루의 불안이 조금씩 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명보다 먼저 닿는 위로, 말보다 더 깊게 스며드는 온기. 결국 포옹은 사랑을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하게 전하는 언어다. 나는 여전히 아이를 안으며 그 사실을 매번 확인한다. 몸이 기억하는 안정, 손끝에서 전해지는 신뢰. 그 안에서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하루를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잠시, 작은멈춤>

1. 말 대신 포옹이 더 필요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2. 누군가에게 마음의 온기를 건넬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일까요?

3. 나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편일까요, 행동으로 표현하는 편일까요?


"따뜻한 품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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