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 있다는 사실이 건네는 안정

함께 자라며 닮아가는 우리

by 자모카봉봉

첫째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아이의 교재를 보다가 오래 멈춰 보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하농, 체르니, 소나티네, 소곡집. 내가 어릴 때 그대로 거쳐 왔던 책들이었다. 건반 위에 올린 아이의 손이 내가 어릴 때 연습하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괜히 익숙해서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아이의 피아노 책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내 어린 시절이 겹쳐진다. 첫째아이는 평일에는 피아노책을 학원에 두고 다니지만 금요일에는 책을 모두 가지고 온다. 그러면 주말 동안 아이도 연습을 하고, 나 역시 아이가 연습을 안할 때, 아이의 책을 펼쳐 놓고 내가 오래전에 쳤던 곡들을 다시 찾아 연주하곤 한다. ‘엘리제를 위하여’, ‘소녀의 기도’, 쇼팽의 ‘녹턴’… 어린 시절 콩쿨 무대에 서기도 하고, 연주회에 참가하기 위해 수없이 연습하던 기억들이 오랜만에 건반 위에서 되살아난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곡들이 있어도 아이의 책 속 악보를 보고 다시 손을 올리면 신기하게도 손이 먼저 기억을 떠올린다. ‘아, 내가 이런 곡을 외워서 쳤었지.’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 순간이 이상하게 벅차고 기분이 묘하다.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면서 내 어린 시절의 조각들이 다시 새겨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문득 우리 엄마가 종종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얘는 네 어릴 때랑 너무 똑같아.”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모습 뿐 아니라, 신중하고 속상해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까지도 똑같다고 했다. 나는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지만, 어릴 때는 말도 적고 표현도 서툴러서 엄마가 많이 답답했다고 한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쯤부터 학급 임원을 맡고 행사 사회를 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고 했다.


요즘 첫째아이를 보면 엄마의 말이 와닿는다. 집에서는 참 조용하고, 어떤 감정이든 속으로 오래 담아두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이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너는 나처럼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말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마음이 앞설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참관수업에서 조별 활동을 지켜보게 되었다. 친구들의 의견을 정리하고, 다음 순서를 알려주고, 분위기를 잡아가는 모습이었다. 차분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이 집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걸 보고 ‘이 아이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말이 적다고, 표현을 아낀다고 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만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아이 스스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어린 시절의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속상한 일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는 것도 닮고, 좋아하는 취향이 겹칠 때도 있고, 말투가 비슷할 때도 있다. 나와는 다른 인격체인데도 살아가는 결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닮았다는 사실은 때때로 걱정을 만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안정감을 준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주 특별한 종류의 위로가 닮음 속에서 온다.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앞으로 아이가 자라면 나와 어떤 부분이 더 잘 맞을까? 어떤 취향을 함께 좋아하게 될까? 피아노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무언가가 또 생길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오히려 우리가 의외로 잘 맞는 지점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특히 점점 커가면서 아이와 통하는 게 많아지는데, 그중 하나가 책이다. 사실 내가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첫째가 책을 좋아해 주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첫째만큼 책에 관심이 없어서 둘째가 어릴 때는 그림책을 그렇게 다양하게 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첫째는 새로운 책을 보면 눈이 반짝이고, 이야기를 읽고 나면 자기가 느낀 걸 말해주고 싶어 한다.


이제는 글밥이 많은 책으로 넘어가면서 청소년 문학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나 역시 가끔 가벼운 소설책을 읽고 싶을 때는 청소년 문학을 선택하곤 해서인지, 우리는 서점에 가서 서로 읽어본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새로 나온 청소년 문학을 함께 고르기도 한다. “너 다 읽으면 엄마도 읽을래.” 라고 내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엄마도 이 책 읽어볼래?" 하며 아이가 내게 책을 권하는 말이 요즘 따라 더 자주 들린다. 이렇게 책이 우리 둘 사이의 새로운 대화가 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책을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어떤 취미 활동을 함께 하게 될지, 그런 상상을 하면 앞으로의 시간이 조금 더 기대된다. 닮았다는 사실은 단순히 비슷해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삶과 마음이 어딘가에서 은근히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그 닮음이 때로는 걱정을 만들기도 하지만, 결국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깊은 안도감을 남긴다. 앞으로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더라도 그 닮은 결이 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고, 또 하나의 새로운 즐거움이 되어줄 것 같아 그 시간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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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아이 안에서 나와 닮았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2. 닮음이 마음을 편하게 만든 경험이 있나요?

3. 앞으로 아이와 함께하고 싶은 작은 취미는 무엇인가요?


"가족의 닮음은 말 없이 주는 안정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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