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알려준 새로운 리듬
예전의 나는 참 활동적이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일주일 내내 일을 하고, 밤새 강의 준비를 하고, 새벽까지 PPT를 붙잡고 있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체력이었다. 나는 유독 그 ‘체력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그래서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일하는 체력, 운동하는 체력, 노는 체력은 다 달라.” 그리고 나는 그 셋 모두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믿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날에도 잠깐 쉬었다가 저녁에 다시 나가 자전거를 탔고, 갑자기 등산을 가자고 하면 두 손 들고 따라 나서던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 능력이 부족해도 체력이 받쳐주면 뭐든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만 자라면 나는 더 신나게 돌아다니고, 함께 운동하고, 사계절을 따라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커다란 추억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내 미래 육아의 중심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런 엄마가 될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 생각이 더 강해진 이유도 있다. 대학 시절, 나는 주말마다 국내 여행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전국의 패키지 여행을 이끌며 수많은 가족들을 만났다. 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 온 엄마, 작은 배낭 하나 메고 아이와 단둘이 여행 온 엄마, 길을 걸으며 아이에게 조곤조곤 설명해주던 엄마까지.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자주 다짐했다. ‘나도 나중에 저런 엄마가 되어야지.’ 주말마다 아이들과 봄이면 봄 여행을, 여름이면 물가를, 가을이면 단풍을, 겨울이면 눈꽃 여행을 떠나는 삶. 엄마가 체력이 좋다면, 그만큼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풍경도 넓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이라는 말 뒤에는 늘 여행과 체험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은근히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가볍게 지나가던 비염이 계절만 바뀌면 다시 찾아왔고, 가을바람만 불어도 기침이 길게 이어졌다. 겨울이면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내가 기침을 달고 살게 되었고, 장염도 잦아졌다. 몸은 예전과 같은 리듬으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아직 젊은데 뭘 벌써부터 그래.” “애 키우다 보면 다 그래.”라고 말했지만, 나는 속으로 조금 무서웠다. 예전에 ‘나라고 믿었던 모습’과 지금의 내가 너무 달라 보여서. 내가 나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예전의 나는 1박 2일 여행을 가더라도 빽빽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미리 맛집을 찾아보고, 명소를 검색하고, 하루에 여행지 서너 곳을 방문해야만 여행을 제대로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여행 방식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두 곳만 들러도 충분하다고 느끼게 되고, 남은 시간은 쉬어도 괜찮다는 여유가 생겼다.
캠핑도 마찬가지였다. 5년 전만 해도 캠핑은 나에게 완전한 ‘놀이터’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짐도 많고 챙길 것들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11시 매너타임이 지나도 조용히 우리끼리 시간을 보내고, 종종 새벽까지 불멍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텐트 치는 일도 힘들어지고, 저녁이면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캠핑장 주변을 돌아보던 시간은 점점 줄고, 캠핑 의자에 조용히 앉아 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변화가 나를 슬프게 하기도 하고, 어디선가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아, 나도 이제 속도를 바꿔야 할 때가 왔구나.’ 엄마로서의 속도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기본 속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억지로 예전의 나를 붙잡고 있으려고 하면 몸도 마음도 더 힘들어졌다. ‘아직 괜찮아’ ‘조금 더 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그칠수록 몸은 더 크게 항의했다.
하지만 속도를 조금 내려놓고 나니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하루가 액티비티 중심에서 대화와 관찰 중심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사람 많은 곳을 다니고 경험을 채워 넣는 것이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다면, 요즘은 집 근처 산책을 하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깊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도 내 옆에서 그 느린 속도를 오히려 더 편안해했다.
예전 같으면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 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자책했겠지만,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속도가 따로 있구나.” 그 속도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아이와의 하루는 더 부드럽게 굴러갔다. 내 몸의 변화는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나는 예전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아이와 걷는다. 몰아붙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속도. 그 속도가 내가 살아갈 다음 단계를 준비시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옆에서 묵묵히 속도를 맞춰 걸어주는 아이를 보며, 나는 여전히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안도감을 얻는다.
<잠시, 작은멈춤>
1. 요즘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는 무엇인가요?
2. 나는 언제 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느끼나요?
3. 지금의 나에게 꼭 맞는 새로운 리듬은 무엇일까요?
"예전 같지 않은 몸이, 내 삶의 속도를 바꾸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