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을 유지하는 새로운 방식

예전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 순간들

by 자모카봉봉

첫째가 어릴 때, 우리 집은 매일매일 파티였다. 생일 전날이면 나는 혼자 분주하게 집 안을 오갔다. 테이블 밑으로 기어 들어가 테이프를 붙이고, 의자 위에 올라 풍선을 달고, 장롱 앞에서 은박 커튼 길이를 맞추느라 몇 번이나 팔을 쭉 뻗었다. 생일파티를 하게 될 식탁 주변과 거실은 늘 작업의 중심지였다. 베란다 창가에는 은박 커튼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 위에 ‘HAPPY BIRTHDAY’ 은박 풍선을 하나하나 불어 붙였다. 헬륨풍선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풍선들을 실로 묶어 천장에 고정하기도 했다.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오는 소품들을 정성스레 배치하고, 새벽 무렵이면 스스로에게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조명을 꺼두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분위기는 더했다. 커다란 트리는 기본이었고, 온 집 안을 초록 풍선, 빨간 풍선으로 꾸며 며칠 동안 겨울 축제처럼 지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편의 산타 이벤트다. 남편은 다이소에서 산타 옷과 모자, 선물 주머니를 사왔고, 부직포로 된 옷이었지만 잠깐의 이벤트에는 충분했다. 아이가 혹시라도 눈치챌까 봐 얼굴을 솜으로 듬뿍 덮어 가리던 모습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그렇게 완성한 ‘산타 아빠’는 지하주차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올라오다가 배달 기사님과 눈이 마주쳐 얼어붙기도 했지만, 현관 인터폰 앞에서는 “호호호~ 산타할아버지예요!” 하고 열정적으로 연기했다. 그 모습을 본 첫째는 두 눈이 반짝였고, 둘째는 겁에 질려 울먹이면서도 “착한 일 많이 했어요… 울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던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밤새 풍선을 달아도, 새벽에 몰래 장식을 해도 힘든 줄 몰랐다. 아이의 얼굴이 기대되어 몸이 먼저 움직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둘째가 자라면서 나는 조금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느 날 둘째가 말했다. “우리 집도 크리스마스 꾸미자!” “내 생일에도 풍선 달아줄 거지?” 말은 너무 귀여웠는데, 그 순간 몸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은 아직 해주고 싶은데, 막상 하려면 피곤함이 먼저 올라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묘하게 미안했다. 첫째에게 해준 만큼 둘째에게 못 해주는 것 같아서, 둘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 한켠이 쓰렸다.


첫째 때 나는 정말 많은 것을 해줬다. 인형 놀이를 시켜주고 싶어 천을 잘라 실로 꿰매 인형 옷을 만들고, 문구점에서 자석과 클립을 사와 낚시놀이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첫째의 육아일기를 정말 열심히 썼다. 첫째의 100일을 기준으로 일기를 묶어 책으로 만들었고, 어느새 그 책이 10권이 넘었다. 첫째는 글을 읽게 된 이후로 그 책들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모른다. 아직도 가끔 꺼내 본다.


하지만 둘째에게는… 그만큼 해주지 못했다. 노력했지만 육아일기는 겨우 세 권이 전부였다. 첫째처럼 100일마다 만들 자신이 없어 1년에 한 번으로 기준을 낮췄는데도 쉽지 않았다. “불공평한 엄마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종종 찾아왔다. 아무리 애써도 예전처럼 매일 기록하고, 만들고, 꾸미던 그 에너지가 나에게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 생각하다 보니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다. 첫째 때의 나는 체력도 넘치고, 한 명만 돌보던 시절이었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둘째가 자랄 때의 나는 이미 두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달라진 사람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같을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둘째도 언젠가 알게 되지 않을까. 장식이 얼마나 화려했는지가 아니라, 엄마가 기꺼이 마음을 내준 순간들이 얼마나 따뜻한 의미를 지니는지. 그래서 요즘은 어마어마한 트리를 만들지는 않지만, 소소하게 트리장식을 직접 꾸미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전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지금의 우리 가족에게 더 자연스럽고 솔직한 즐거움이다.


그리고 요즘, 변화한 내 몸과 마음을 받아들이며 우리만의 새로운 ‘가족 취미’를 만들었다. 바로 마라톤이다.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천천히, 시간이 될 때마다 동네 천을 따라 함께 뛰곤 한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아줄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면서 “그래, 그럼 체력을 다시 길러보자” 하고 남편과 함께 시작한 작은 시도였다. 달리다 보면 땀이 기분 좋게 식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무엇보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이 점점 실감된다. 체력이 있을 때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오래 들어줄 수 있고, 피곤하지 않을 때 더 부드럽게 웃어줄 수 있고,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작은 이벤트도 기꺼이 해줄 수 있다.


예전처럼 매일이 이벤트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체력이 쌓이면 우리 가족의 작은 행복을 만드는 힘이 다시 생긴다. 그래서 이제는 예전 방식이 아닌, 지금의 나와 우리 가족에게 맞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채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도, 이런 조율도 결국 우리가 함께 자라가는 과정이라는 걸 천천히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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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예전엔 자연스럽게 했지만, 지금은 힘들어진 일은 무엇인가요?

2. 몸이 달라지면서 가족에게 미안했던 순간이 있나요?

3. 지금의 나에게 맞는 사랑하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줄어든 에너지 속에서도 다정함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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