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실패에서 시작된 새로운 주말

주말농장에서 찾은 우리가족만의 주말

by 자모카봉봉

어느 순간부터 나는 주말에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일이 꽤 큰 에너지가 든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SNS 속 다른 엄마들은 주말마다 새로운 카페, 전시, 체험장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지만 막상 예약하려 하면 이미 마감. 괜찮아 보이는 프로그램은 날짜가 맞지 않거나, 가는 길이 너무 멀어 포기하기 일쑤였다. 결국 주말이 되면 거창한 계획만 머릿속에 남고, 정작 당일에는 근처 대형마트나 쇼핑몰에 가거나 동네 공원을 걸으며 놀이터 벤치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앉아 있는 나 자신이 괜히 부족한 엄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우리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 것이 주말농장이었다. 주말농장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도 그렇고, 나 역시도 주중에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일을 한다. 하루 종일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감정과 에너지를 나누고, 필요한 말과 행동을 건네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잠깐이라도 ‘우리 가족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북적이는 공간을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 큰 이벤트가 있지 않아도 소소한 즐거움을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 게다가 우리는 언젠가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작은 꿈도 가지고 있는 만큼, 조용하게 자연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는 삶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농장은 그 꿈의 작은 연습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15분 거리. 멀지 않으면서도 도착하면 갑자기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 마음이 내려앉는 공간. 그 적당한 거리감이 우리 가족에게 딱 맞았다.


첫날 농장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들떠 있었다. 상추, 고추, 깻잎, 토마토 모종을 사서 조심스럽게 옮겨 심고, 손바닥보다 작은 모종에 조심조심 물을 주었다. 우리는 주말마다 농장에 와서 흙을 고르고 잡초를 뽑았고 아이들은 옆에서 흙놀이를 하며 깔깔 웃었다. 키즈카페에서 하는 깨끗한 모래놀이와는 전혀 다른, 진짜 자연 속 흙놀이였다. 거미도 나오고 지렁이가 기어 나오기도 했다. 특히 감자를 캘 때는 지렁이가 얼마나 많은지 아이들이 동시에 놀라고 동시에 웃고, 동시에 도망가고 동시에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 참 귀여웠다.


계절의 변화도 눈에 띄게 느껴졌다. 상추가 어느 정도 자라 먹을 만큼 올라오자 가족 모두가 놀랄 정도로 기뻤다. 처음엔 우리 먹을 만큼만 자랐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니 성장 속도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그때부터는 상추를 딸 때마다 “할머니네 드릴까?”, “오늘은 친구네도 나눠줄까?”, “또 누구 줄까?”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상추 한 봉지를 들고 친구 집 초인종을 눌러 “이거 우리 밭에서 난 거야!”하고 씩씩하게 건네던 아이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귀엽다. 며칠 뒤 그 친구가 감사 인사와 함께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들고 우리 집에 찾아왔을 때 아이들은 “우리가 준 상추가 진짜 맛있었나 봐!” 하며 한참을 웃었다. 작은 나눔과 작은 감사가 서로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드는 장면이었다.

정말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잡초를 뽑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사 먹는 야채들, 쌀, 과일 다 이렇게 힘들게 기르는 거야. 그러니까 음식은 소중하게 먹어야 해.” 아이들은 그 말을 들으며 콧잔 등에 땀을 맺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보통 밭을 정리하고 배추와 무를 심는다. 그리고 11월이 되어 배추를 뽑게 되는데,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끼리 작은 김장을 했다. 우리 가족만의 작고 소박한 김장. 아이들도 배추를 씻고 절임물을 만지는 걸 신기해했고, 우리는 웃으며 겨울 준비를 했다.


가끔은 농장에 가기 싫은 날도 있었다. 너무 덥거나, 너무 피곤하거나, 날씨가 애매한 날. 그런데 막상 도착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손에 흙이 묻는 게 싫지 않았고, 땅에서 나는 향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이들은 금세 흙놀이를 시작했고, 우리는 그 곁에서 조용히 잡초를 몇 개씩 뽑고, 어쩌다 앉아 쉬기도 했다. 이런 소박한 시간들이 쌓이면서 점점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이런 주말이 더 잘 맞는구나.’

채소를 가져와 요리하는 즐거움도 컸다. 고추는 싱싱할 때 따서 고추장아찌를 담갔고, 호박이 한창일 때는 호박전을 부쳐 주말 점심으로 먹었다. 상추가 풍성했던 날에는 집 도착하자마자 고기 파티를 열었다. 아이들은 채소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거 진짜 우리 고추 맞아?” “이거 우리가 심은 상추지?” 하며 용기 내어 쌈을 싸 먹어보았다. 그 작고 용감한 한입이 얼마나 귀엽던지.


돌아보면 주말농장은 부지런한 사람만 즐길 수 있는 활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덜 부지런하고,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은 조용한 우리 가족에게 완벽히 맞는 방식이었다. 예약 실패로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고, 피곤하다고 미안해할 필요도 없었다. 농장은 우리에게 ‘조급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을 선물해주었다.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우리 리듬대로 주말을 보내면 되는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 주말 계획을 물으면 나는 자연스럽게 말한다. “우리는 이번 주말에도 주말농장이요.” 매주 같은 일정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정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엄마로서 묘하게 든든하다.


주말농장은 결국 ‘새로운 경험을 찾는 곳’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속도를 찾는 곳’이었다. 빠르게 채워야만 의미 있다고 믿었던 주말이, 천천히 비워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공간. 흙 냄새와 바람, 아이들의 웃음과 땀방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느리지만 깊은 성장. 그 속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요즘의 우리 가족에게 가장 잘 맞는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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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요즘 나는 주말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나요?

2. 우리 가족에게 가장 편안한 주말 방식은 무엇인가요?

3. 나에게 ‘잘 보낸 주말’은 어떤 모습인가요?


"우리가 보낸 평범한 오후가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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