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의 내가 아니라, 속의 나를 보게 된 시간
아이들을 키우며 잠시 일을 내려놓았던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 전까지의 나는 성취 중심으로 살아왔다. 일을 해내는 속도, 결과, 성과. 그 리듬 안에서 나는 늘 바쁘게 움직였고, 그게 곧 나의 본모습이라고 믿었다. 촘촘하게 채워진 플래너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했다. 아침마다 간단한 일정 체크로는 부족했고, 매일매일 ‘To do 리스트’를 따로 만들어서 하나씩 지워가는 것이 일상의 중심이었다. 체크 표시를 하는 순간, 그 작은 ‘✔’ 하나가 주는 쾌감과 안정감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일정을 얼마나 많이 처리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였는지가 하루의 기분을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더 잘하고 싶었다. 더 성장하고, 더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성공한 사람들의 루틴과 습관을 찾아 읽었다. 자기계발서, 경영서, 동기부여 책들이 책장 한 줄을 가득 채웠고, 유튜브에서는 늘 자극적인 메시지를 찾아 듣곤 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나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MBTI에서도 나는 늘 ‘ENTJ’라고 확신했다. 집 안에 머무는 것보다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빠르게 움직이는 시간이 좋았으니 당연히 외향형이라고 생각했다. 일에서는 감정보다 논리가 중요하다고 믿었기에 사고형이라고 단정했다. 그게 내 능력이고, 강점이며, 살아남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잠시 멈춰 있던 동안,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내 안에서 나타났다. 아이가 낮잠에 들어 집 안이 고요해지는 몇 시간. 예전 같으면 손이 자동으로 플래너로 갔을 것이고, 뭘 더 해야 할지, 무엇을 성취할지를 떠올렸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책을 펼치고 싶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었다. 소설책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읽지 않던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타인의 세계에 스며드는 기분, 등장인물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발을 담그는 감각. 조급함이 사라진 상태에서 읽는 소설은 내 삶에 없던 결을 새롭게 만들어줬다. 내가 여유를 갖게 되니, 비로소 이런 것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평온했고,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들이 나에게 작은 안식을 주었다.
성취와 속도를 내려놓은 시간은 나의 감정형 세계를 자연스럽게 열어주었다. 누군가의 말투에 더 민감해지고, 감정을 더 깊게 느끼고, 작은 일에도 금세 울컥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전에는 “사회생활을 위해 만들어낸 능력”이라고 믿었던 공감과 감수성이, 사실은 내 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본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과 성취가 중심이었던 시절에는 논리적이고 계획적이고 단단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일의 세계가 그런 태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유가 생기자, 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더 많이 헤아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변화가 처음엔 어색했다. “이게 진짜 나일까?”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걸까?” 하는 고민이 뒤섞였다. 그러다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나는 외향형, 내향형, 사고형, 감정형 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한쪽으로 뚜렷하게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 환경과 시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이 달라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일할 때는 외향형의 힘이 필요했고, 성취가 중심일 때는 사고형의 강함이 나를 지탱했다. 반대로 느리게 흐르는 육아의 시간 속에서는 감정형의 부드러움과 내향형의 고요함이 내 안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그러니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이라기보다, 같은 사람의 다른 계절일 뿐이었다.
바쁨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끝없이 달렸던 시절의 나는 단단했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 있었다. 하지만 여유는 나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멈춰 있는 시간 속에서만 보이는 결이 있었고, 달리기만 할 때는 절대 보이지 않던 내 마음의 구조가 차분하게 드러났다. 이런 것을 보면 아이를 키우는 10년 동안 잠시 내려놓았던 시간은 다시 일로 돌아가기 위한 공백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차근차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어떤 속도가 나에게 맞는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진짜 나를 살아 있게 하는지,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 그 질문들에 답을 쌓아가는 조용한 시간이자, 아주 단단한 기반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더 명확한 마음으로 다시 일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일을 하는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유연하며, 무엇보다 나다운 모습에 가까워졌다. 성취를 위해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리듬에 맞춰 일하는 사람. 속도가 전부라고 믿던 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새로운 계절의 나를 알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앞만 보고 달렸다면, 지금의 나는 방향을 먼저 본다. 예전의 나는 성취가 나를 증명한다고 믿었지만, 지금의 나는 결이 나를 증명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예전의 나보다 조금 느리지만, 더 정확한 나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와 함께 멈춰 섰던 시간들은 나를 약하게 만든 시간이 아니라, 더 나다운 나를 발견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앞으로의 나도 한층 더 선명한 결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작은멈춤>
1. 누군가 기대하던 ‘나’가 아니라, 내가 느낀 ‘나’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2. 여유가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드러난 내 성향은 무엇이었나?
3. 앞으로 나는 어떤 나다움을 더 살리고 싶은가요?
"나를 강하게 만든 건 성취였지만, 나를 이해하게 만든 건 여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