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정지된 것 같은 날의 감정들

뒤처진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까지

by 자모카봉봉

남편과 나는 같은 일을 하며 만났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팀으로 일을 하고, 출장도 잦았기에 함께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출장지로 가는 길에서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교육 일정이 끝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며 울고 웃기도 했다. 서로의 업무 강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말 한마디면 이해되는 사람이 되었다. 일을 하면서 만난 커플이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는 ‘일’이라는 언어로 가장 먼저 연결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고도 데이트는 늘 자연스럽게 일과 연결됐다. 서점 데이트를 하면 서로 다른 코너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코너 앞에서 “이 책은 사례로 써도 좋겠다”, “아 이거 교육에 활용하면 재밌겠다”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카페에서도 노트북을 펼쳐 각자 PPT를 만들고, 새로운 내용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는 일을 데이트에 가져오면 피곤할 거라고 말하겠지만, 우리에게 일은 함께 시간을 만드는 방식이었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때로는 보드게임을 하다가도 “이거 협업 교육에 쓰면 반응 좋겠다”, 여행지에 가서도 좋은 문구를 발견하면 “이거 슬라이드에 넣으면 괜찮겠다” 같은 말이 오갔다. 그 시절의 우리는 일과 사랑을 구분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비슷한 리듬으로 살았다. 그래서였다. 내가 일을 잠시 내려놓았을 때, 불안은 남편보다 훨씬 더 깊고 또렷하게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내 눈앞에서 남편은 그대로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같은 출발선에서 전력 질주하던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멈춰 서고 다른 한 사람은 계속 달려 나가면, 멈춘 쪽이 더 초조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이 퇴근 후 들려주는 회사 이야기들은 그저 가벼운 일상의 대화였따. 예를 들면, 어떤 프로젝트가 새로 시작됐고, 이번 현장 분위기는 어땠고, 어떤 담당자와 협업을 했는지와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데 그 시절의 나는 그 이야기들이 자꾸 마음을 긁었다. ‘나는 지금 멈춰 있고, 남편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그 사실 하나가 작게, 그러나 자주 마음의 균형을 뒤흔들었다.


나중에서야 남편도 그 시기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남편 역시 그때 많이 조심스러웠다고. 내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를 보면서 괜히 미안해지고, 회사 소식조차 편하게 말하기 어려웠다고. 같은 업계라 공유할 이야기가 넘쳐났지만, 그때만큼은 공유가 위로가 되지 못했다고. 그 말에 나는 그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불안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불안한 마음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멈추지 못했다. 일을 쉬고 있는 동안에도 ‘일처럼’ 무언가를 붙잡아야 했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읽은 책은 블로그에 서평으로 남겼다. 서평단에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덕분에 출판사에서 신간을 보내주기도 했다. 책이 도착하면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고, 몇 시간 만에 책을 읽어내고, 서평을 정리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다 글이 좋아져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올렸고, 작은 추천 수에도 기뻐하며 글쓰기 감각을 되찾아갔다. 그 무렵 유튜브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시에서 진행하는 크리에이터 양성과정을 들었다. 촬영과 편집 기본기를 배우고, 짧은 영상들을 테스트 삼아 만들어보기도 했다. 지금 보면 서툴고 투박하지만, 그때의 나는 멈춰 있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불안해서였고, 멈추면 나라는 사람이 흐려질 것 같아서였다.


돌이켜보면 참 열심히이기는 했다. 하지만 정작 ‘나를 쉬게 하는 법’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매 시간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어야만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고, 여유는 곧 뒤처짐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쉬어도 돼”라고 말하면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또 다른 할 일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그 방식에 균열이 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멈춤이 결코 빈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나를 다시 숨 쉬게 하는 ‘여백’이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처음으로 ‘멈출 수밖에 없는 시간’을 겪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을 그렇게까지 불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은 내가 몰랐던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창문 같은 것이었다.

요즘 주변을 보면 참 현명한 사람들이 많다. 아이 때문에 잠시 일을 쉬는 사람도, 육아휴직을 길게 쓰는 사람도, 그 시간을 ‘기다림’이 아니라 ‘선물’처럼 사용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고, 아이와 여행을 다니고, 듣고 싶었던 강의를 들으며 하루를 천천히 채워간다. 나는 물었다. “불안하지 않아?” 그러면 대답은 늘 같았다. “전혀. 지금 쉬지 않으면 언제 쉬겠어? 아이랑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그 말을 들으면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아이 옆에 있어야 해서 불안했고, 멈춰야 해서 조급했던 나.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움보다 책임과 두려움으로 더 가득했던 나. 그래서 문득 반성하게 된다. 그때의 내가 조금만 더 편안했더라면, 그 시간을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으로 받아들였더라면 훨씬 따뜻했겠지, 하고 말이다.

이제는 알겠다. 잠깐의 여백은 나를 작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든다. 나를 쉬게 하는 시간은 나를 멀어지게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나에게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리듬에서도, 내가 다시 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이 깨달음은 큰 기준이 된다. 흔들려도 괜찮고, 잠시 멈춰도 다시 돌아오면 된다. 여백은 결국 나를 숨 쉬게 해주는 자리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유를 믿어보기로 한다. 예전처럼 모든 속도를 지키지 않아도 괜찮고, 모든 순간을 꽉 채우지 않아도 괜찮다. 삶에는 달려야 하는 때가 있고, 멈춰 있어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계절도 있다. 그 계절의 흐름을 지나며 지금의 나는 훨씬 유연하고, 조금 더 단단하며, 무엇보다 나다운 모습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앞으로 다가올 모든 계절에서 나를 흔들림 없이 지탱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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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작은멈춤>

1. 나는 ‘멈춤’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왔을까?

2. 쉬는 동안에도 나를 채우려 했던 순간은 없었을까?

3. 지금의 나는 어떤 여백이 필요할까?


"불안했던 시절의 나를 이제는 다정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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