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엄마의 일정 조율기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나를 가장 숨 가쁘게 만든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의 스케줄을 맞추는 일이었다. 스케줄은 늘 ‘일정표’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의 성장, 성향, 하루의 흐름, 그리고 그날의 컨디션까지 모두 포함된 복잡한 퍼즐이었다. 그리고 그 퍼즐을 맞추는 역할은 늘 나의 몫이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는 방과후 수업이나 돌봄을 신청하지 않았다. 학교는 1시면 끝났고, 오후라는 시간이 너무 길게 펼쳐져 있었다. 혼자 집에 두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였고, 하루 종일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하고 싶지도 않아서, 피아노와 미술처럼 가볍고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 위주로 스케줄을 만들었다. 첫째는 성향 자체가 차분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많은 활동을 넣을 필요도 없었다.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도 스스로 잘 놀았고, 천천히 집중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아이였다. 그러다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조금 더 외향적인 성격을 갖게 되고, 필요한 공부가 하나하나 늘어가면서 학원스케줄이 점차 추가가 되었다.
반면 둘째는 완전히 달랐다.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 나는 일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 둘째는 조금 일찍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공부를 빨리 시키고 싶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일상을 미리 적응시키기 위한 ‘생활 리듬 훈련’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둘째의 스케줄이 빠르게 채워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둘째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는 에너지가 넘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하고, 친구 따라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욕심도 많아서, 친구가 줄넘기를 잘 한다고 하면 “엄마, 나도 줄넘기 학원 보내줘!” 하고, 여름에 수영장에 다녀오면 “수영 너무 재미있어. 나도 배우고 싶어!”라고 했다. 유치원에서 미술 활동을 하고 오면 “미술 너무 좋아. 미술학원도 다니면 안 돼?”라고 보채기도 했다. 영어노래를 또박또박 따라 부르고 문장을 기억해오는 걸 보니 영어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영어학원을 시작했고, 태권도는 친구들이 다 다니니 자기도 빠질 수 없다고 했다. 둘째는 늘 스스로 신호를 보내는 아이였다. “나 이거 하고 싶어.” “나도 배워보고 싶어.” “나도 할 수 있어.” 그런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엄마로서 그 열정을 무시할 수 없어 자연스럽게 둘째의 스케줄은 풍성해졌다.
이런 두 아이의 스케줄이 스케줄이 기가 막히게 하나의 줄 위에 정렬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아파서 빠진 수업들, 휴가철에 빠진 일정들, 명절 전에 밀린 수업들을 보강으로 순서대로 넣다 보면, 어느새 기가 막힌 조합이 완성된다. 첫째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피아노, 그리고 곧바로 미술.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나오면 태권도, 태권도가 끝나면 영어. 아이 둘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물 흐름처럼 이어지는 날들은 정말로 숨이 찰 정도로 바빴다. 그날의 나는 거의 ‘도보 내비게이션’처럼 움직였다. 걸음 속도는 빠르고, 다음 장소까지 도착 예상 시간을 계산하며 걷고, 뛰고, 다시 걷고.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을 만큼.
내가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그 스케줄을 직접 뛰어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카톡 알림”과 “전화 체크”로 하루의 흐름을 운영해야 했다. 강의 쉬는 시간에 휴대폰을 켜 보면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온 문자가 촘촘히 쌓여 있었다. “엄마, 지금 학원 도착!” “수업 잘 듣고 있어요.” “수업 끝나고 집으로 출발했어요.” 알림창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이제 어디쯤일까? 잘 가고 있나?” 머릿속에서는 항상 아이들의 위치가 움직였다. 강의가 끝나는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 앞에서, 강의장 뒤편에서, 복도 창가에서 재빨리 전화를 걸어 “지금 어디야?” “이제 들어갔어?”라고 묻던 그 초조함은 아마 워킹맘만이 아는 고유의 난이도일 것이다.
여기에 병원 일정까지 더해지면 퍼즐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독감 시즌이면 두 아이의 시간을 맞춰 같은 날 예방접종을 넣어야 했고, 방학마다 치과 검진과 불소 치료, 정기적인 안과 진료까지 이어졌다. 엄마들 사이에서 방학 동안 치과와 안과를 잡는 것은 ‘엄마 숙제’라고 불릴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내 병원에 전화해 빈 시간을 찾을 때면 마치 항공권 예약 시스템을 보는 것처럼 원하는 시간대가 줄줄이 마감되어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전화를 반복하다 결국 딱 맞는 시간대를 잡았을 때 그 조용한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컸다. 누가 칭찬해주는 것도 아닌데 혼자 “휴…” 하고 안도의 숨을 쉬며 작은 승리를 맛보았다.
이 모든 일정이 어긋나지 않고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날이면 스스로 좀 더 부지런해진 것 같고, 더 유능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학원 스케줄’이고 ‘병원 예약’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흘리지 않고 붙잡아낸 소중한 하루의 균형이었다. 아이 둘의 하루를 지켜내고, 내 일도 지켜내고, 그 두 가지가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해낸 날의 뿌듯함은 작지만 깊었다.
바쁘고 복잡한 하루였지만, 그 속에서 내가 지켜낸 순간들이 나의 삶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떤 날은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나를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아이들이 학원 끝나고 밝게 손 흔들며 “엄마!” 하고 달려오는 한 장면이면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그 한 장면 때문에라도 나는 내일 또다시 아이들의 일정을 천천히 그려본다.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그날의 균형을 찾아가며.
<잠시, 작은멈춤>
1. 오늘 나는 어떤 일정들을 소화했나요?
2. 아이의 하루에서 ‘내가 해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을까?
3. 내일 일정표에 내가 조금 더 여유 있게 적어넣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복잡한 스케줄 속에서도 놓치지 않고 지켜낸 순간들이, 오늘의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