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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점코치 모니카 Aug 14. 2020

아빠가 한글 아빠였으면 좋겠어?

다문화 가정 아이 키우기




매일 아침 아이들 등원 담당은 남편이다. 딸아이가 6세가 되어 새로운 유치원으로 옮기면서 셔틀버스를 타고 등원하게 되었다. 신학기에 며칠 동안 아빠와 등원을 하더니 딸이 엄마가 버스를 태워주러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7세 오빠들이 우리 아빠가 이상하다고 미국 사람이고 뚱뚱하다고 큰 소리로 말한 모양이다. 그래서 딸아이의 마음이 불편하니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가 셔틀버스 배웅을 나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침 시간을 조금 더 빠듯하게 보내면 내가 아이들 등원을 시키고 첫 수업을 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집안일 분담에 있어서 남편이 그나마 꾸준히 하는 고정 업무 2개가 쓰레기 버리기와 아이들 아침 등원인데 그것마저도 내가 맡기는 싫었고,



무엇보다, 딸에게 '다름'에 대한 인지와 비슷한 상황에서 대처 방법에 대해 부모로서 어떻게 가르쳐주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남들의 시선이 불편해서 나의 '다름'을 일시적으로 감추는 것으로 그 불편한 상황을 피하게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계속 등원을 시킨다고 해도 학교 행사가 있을 때 아빠가 참여하게 되면 아이의 친구들은 또 놀라게 될 것이고, 부모 참여 행사 때마다 신학기 셔틀버스 때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느니 꾸준히 매일 아침 아빠와 함께 있는 모습을 노출시켜서 이 유치원 학생들, 더 나아가 이 동네 모든 유아들에게 외국인 아빠나 외국인 엄마를 가진 가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저 친구 집은 원래 특이 또는 특별하다는 것을 꾸준히 자연스럽게 인지시켜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딸에게도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 아빠의 존재가 부끄럽게 느껴지고 혼란스러운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를 숨기는 것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게 되면, 엄마로서 아빠는 부끄러우니까 숨겨야 되는 존재라고 아이 앞에서 인정해버리는 꼴이 된다. 불편했을 아이의 마음이 걱정되어 위로를 해주는 것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럴수록 아이에게 잘 설명해주어 아이의 혼란을 정리해주어야 한다.



딸에게 물었다.




아빠가 날씬한 한글 아빠였으면 좋겠어?
... 아니... 음... 그런 건 아닌데...




나는 아이에게 오전에 수업이 있어 바쁜 엄마보다 오전에 쉬는 아빠가 등원을 시켜주는 것이 맞고, 아빠는 미국 사람이 아니라 호주 사람이고 (미국은 라이언 토이 리뷰에 나오는 라이언이 사는 나라고, 호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나라라고) 영어남자가 아빠일 수도 있고 한글 남자가 아빠일 수도 있는 건데 그게 잘못되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옆 아파트에 줄리네 집도 아빠가 영어 사람이지 않냐고. 원래 그럴 수 있다고. 그리고 아빠가 뚱뚱하지만 그건 부끄러울 일이 아니며 지금 지나가는 저 아저씨도 아빠처럼 뚱뚱하지 않냐고 사람은 뚱뚱할 수도 있고 날씬할 수도 있는데 그게 잘못은 아니라고. 뚱뚱하다고 놀리는 친구들이 잘못이라고.



엄마는 날씬한 한글 아빠가 온다 해도 아빠랑 바꿀 생각이 없고. 영어 사람이고 뚱뚱해도 엄마는 아빠가 제일 좋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 아무랑도 안 바꿔!



그지? 엄마도 그래. 엄마는 아빠가 제일 좋아. 그래서 아빠랑 결혼한 거야.






그 날 이후로 딸아이는 지나가다 뚱뚱한 남자들을 보면 나에게 귓속말로 '엄마 저 아저씨는 대디보다 더 뚱뚱해.' 라며 사람들이 뚱뚱할 수도 있고 우리 아빠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꾸 스스로 확인하며 안심(?)하는 것 같고,



티브이에 다문화 가정 친구들이 나오면 '엄마 쟤도 아빠가 영어 사람인가 봐. 줄리도 영어 아빠 있고 나도 영어 아빠 있는데~'라고 다양한 가정의 모습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딸은 요즘 들어 한국에는 온통 한글 아저씨들 밖에 없는데 엄마는 어떻게 영어 아저씨인 아빠를 만나게 되었는지가 궁금한지 엄마랑 아빠가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를 질문하기도 했다.



호주에서 엄마가 커피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손님으로 온 아빠가 띠용 하고 엄마한테 반했다고. 첫날에 엄마한테 "왓츠 유어 네임?" 묻고는 "땡큐 모니카" 하고 갔다니까 계속 "땡큐 모니카" "땡큐 모니카" 라면서 아빠를 놀린다.



그러더니 지난번에는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하다가 딸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누군지 말해주어서 "그럼 00이 하고 결혼할 거야?"라고 물었더니 "아니 나는 영어 사람이랑 결혼할 건데? 나는 우리 아빠 같은 영어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딸아이의 저 말 한마디가 얼마나 나에게 큰 안도와 행복을 주었는지 모른다. 딸이 어느 인종 어느 국적인 사람과 결혼하든 전혀 상관없고 부모로서 선호도(?) 따위 없다. 껍데기가 어떤 사람이든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면 된다.



그런데 영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딸의 말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한국에서 사는 아이가 남들과 다른 아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빠의 다름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고 진심을 다해 마음껏 아빠의 존재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빠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는 계속 "왜 우리 아빠는 한글 사람이 아닐까? 왜 우리 집만 남들과 다를까? 나는 커서 꼭 한글 사람과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속해있는 사회의 주류 혹은 다수와 내가 다르다고 해서 열등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남들과 다른데 그래서 어쩌라고? So what?이라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우리 딸이 자랐으면 좋겠다.



"너네 아빠 외국인이라며?"


"응. 근데 뭐?"


"너네 아빠 진짜 뚱뚱하다"


"응. 근데 어쩌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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