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정 아이 키우기
만난지 햇수로 16년 차가 된 우리 부부는 왠만해서는 목소리 높여 싸우지 않는다. 서로 심기를 거스리는 말은 알아서 자제하는 눈치가 생겼고, 부부싸움으로 인해 2-3일 간 감정적인 에너지 소모를 하느니 폭발 직전에 둘 중 누구 하나가 참고 스무스하게 넘어가는게 결과적으로 더 낫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무엇보다 연식이 이쯤되니 그냥 싸우는 것도 귀찮다.
이런 우리 부부가 언성을 높이는 일은 딱 하나인데 신랑 말도 맞고 내 말도 맞아서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늘 도돌이표처럼 잊을 만하면 논쟁을 하는 부분인데 그 날은 내가 폭발했다. 대낮 길거리에서 아이들도 둘 다 있는데 제대로 폭주했다.
한국을 떠나야 해결될 문제라서 신랑에게 오늘 분명히 정하라고. 지금 안 그래도 타이밍이 딱이라고. 이 부분을 받아들이고 닥치고 여기에 계속 살던지 아니면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사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될 판인데 다 정리하고 다시 호주에 들어가서 살던지. 선택하라고. 지금처럼은 내가 못 견디겠으니 결정하라고.
다그쳤더니 조금 전까지 같이 불같이 화를 내던 남편이 자기가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다시는 언급을 안하겠으니 일단 집에 가자고 진정하라고 해서 말을 멈추고 내가 먼저 앞장 서서 걸어가는데 그제서야 길가에 식당 사람들이 모두 우리만 쳐다보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고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목도 따가운게 느껴졌다.
7세 딸이 엄마 대디가 뭘 잘못했더라도 호주에 보내지말라고 울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애들 앞에서 못난 꼴을 보였다싶어서 딸에게 엄마가 너 마음 불안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대디 어디 안간다고 아이를 진정시키고 집에 들어와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2시간 정도 지났을까. 딸이 나에게 와서 "엄마 대디랑 화해해." "안돼." "왜?" "엄마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 엄마는 아직 대디한테 화가 나있어." "대디가 미안하다고 하면 되잖아. 그러면 엄마 화가 풀릴거야." "아니. 엄마는 많이 속상해서 대디 사과를 받아줄 생각이 없고, 대디가 엄마한테 사과하지도 않을거야." "왜??? 엄마는 나한테 준이가 사과하면 용서해줘야한다고 그랬잖아. 미안하다고 하면 괜찮아 하고 커들해주라고 했잖아. (cuddle 포옹) 기다려봐. 내가 대디한테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할거야."
내 스스로 아이 앞에 이중적 잣대를 드러낸 모순 덩어리 에미가 된게 민망하고 말문이 막혀서 안방에 들어가는 딸을 말리지 못했다. 곧이어 남편이 딸과 같이 나왔다.
"쏘리..."
싸운 문제에 대해서는 고집불통 남편이었기 때문에 딸 말을 무시할 줄 알았는데 나한테 정말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자기도 딸 앞에 모순덩어리가 될 수 없어서였는지 거실에 나와 벌건 얼굴로 사과하는 남편 얼굴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엄마, 잇츠 오케이 하고 둘이 안아."
그래서 우리는 "잇츠오케이" 하고 꼭 껴안았다. 그랬더니 딸이 "이제 됐다." 하고 삼각 포옹을 하니 갑자기 27개월 아들도 뭔일인가 쳐다보더니 달려와 사각 포옹을 했다. 식상해빠진 '애들 때문에 산다' 는 어른들의 말이 식상하지않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평생을 지겹도록 싸우고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싸우고 있는 친정부모님 밑에 커서 시집을 갔는데, 내 부모 데칼코마니인양 격렬하게 싸우는 외국인 시부모님을 통해 "we are the world." 느끼고 경악했는데, 내가 내 아이 앞에서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죄책감과 수많은 상념에 마음이 복잡한 날이었으나, 가장 큰 감정은 딸에게 느끼는 고마움이었다. 저렇게 예쁜 아이를 저 예쁜 모습이 닳지않게 잘 키워주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