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더월드_We are the world

에필로그

by 강점코치 모니카

한국이란 나라를 2002년 월드컵 때 처음 알았다는 호주 촌놈 우리 남편이 2008년에 대학교 부설 한국어 어학당에 등록하여 학생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왔다. 어학당 학생 신분으로 일을 할 수 없던 상황이었는데 테니스 선수였던 남편은 동네 전봇대에 원어민 테니스 레슨 광고를 붙여서 주변 대학생들에게 영어 테니스 레슨을 시작했다.


첫 레슨비로 50만 원을 받은 날. 그는 한국에서의 첫 급여를 봉투 째로 나에게 건네주었다. 봉투를 건네며 남편이 혼잣말로 읊조렸다.


"아... 드디어 나도 한 푼 벌었어... 이 땅에서. 파이널리 Finally..."


서로 불타게 사랑했고, 나 하나 바라보고 모든 걸 버리고 이 남자가 한국에 들어왔으니 막연히 그를 책임(?)져야 된다는 생각을 당시에도 갖고 있었지만 겨우 26살이었던 내가 외국인 남자 친구의 비자 때문에 갑작스레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학생 비자 만료 기간이 다가올수록 남자 친구가 하루하루 속을 끓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확약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혼잣말을 듣고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남편은 기억도 못하는 저 읊조림에서 나는 남편의 머리에 깊이 뿌리 박힌 그의 사상을 엿보았다. 남편은 자기 앞가림을 스스로 하기 위해 혹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사람은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지 못했을 때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가부장적으로 꼭 남자만 돈을 벌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남녀 성별을 떠나 가정을 일구었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강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내 배우자가 되길 바랬다. 나는 늘 내가 자라온 가정에서는 없었던 것을 채워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기를 원했는데 남자친구의 혼잣말에서 그 책임감을 보았고 결혼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첫 급여를 봉투 째로 나에게 헌납한 이 날 전까지는 남자친구의 속마음을 몰랐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에 모아두었던 돈을 쓰며 학교를 잘 다니고 있었고, 나는 호주에 있을 때 데이트 비용을 남편이 더 냈기에 한국에 있는 동안 내가 데이트 비용을 더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 불편한 마음이나 돈에 대한 압박은 전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18세 때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일을 멈춘 적이 없었고 스스로 돈을 벌지 않은 적이 없었던 남편은 자신의 당시 처지가 고민스러웠던 듯 했다. 큰 뜻을 품고 하는 공부가 아닌 나이롱 학생 입장인데다 그렇다고 여행자도 아닌 자신의 불안정한 처지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부분이 직장인 여자 친구에게 위신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그의 사고방식이 나에게는 든든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흔히들 생각하는 외국생활에 대한 동경이나 서양 남자 혹은 타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로망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지극히 한국적인 사람인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외국인 남편을 배우자로 맞았다. 내가 자라면서 못 가져본 결핍을 내가 꾸린 가정에서는 채우고 싶었을 뿐이다.


외국생활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혼인신고 한 날 '양공주' 소리를 들었으니 '튀기' 소리를 들을 나의 자식들은 한국에서 키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양공주 소리를 들어도 괜찮은데 차마 자식이 튀기 소리를 듣게 할 수는 없기에 남편이 호주에서 공부를 마쳤을 때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이면 다시 호주로 돌아갈 생각으로 한국 살이를 시작했다. 친정 가까이 살면서 나의 부모님께 외손주와 함께 할 시간을 몇 년간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비정상회담' 같은 다문화가정과 외국인들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면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이 최근에 급속히 좋아졌다. 차별 속의 또 다른 차별이라 없어져야 할 현상이긴 하지만 영어권 출신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경우 영어를 잘한다거나 서구적 외모에 대한 동경으로 오히려 부러워하는 인식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막상 살아보니 나의 이웃들도 처음에는 우리 가족의 '다른 겉모습'에 호기심을 갖고 자극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있지만 몇 번 이야기를 섞고 같이 지내다 보면 나처럼 그들도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라는 '위아 더 월드; We are the world.'를 느끼는지 우리 가족을 여느 이웃들처럼 포용해주는 것을 느낀다. 쌀밥 한 숟가락에 섞여 있는 현미 몇 알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 가족도 겉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공동체 속에 융화되어가고 있다.


유난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에서 살아가는 다문화가정이기에 여전히 일상에서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일어나긴 하지만, 우리 가족은 우리 자신을 '특이' 하기보다는 '특별'하게, '잡종' 스럽기보다는 '하이브리드' 적인 '잡종 가족'이라 당당하게 칭하며 씩씩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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