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텐달라! 어메이징 코리아!

외국인 남편이 한국인이 다 되었다고 느낄 때 1

by 강점코치 모니카


한국 생활 8년 차인 호주 출신인 나의 남편은 가끔 나보다 더 '한국적' 이어서 나를 빵 터지게 할 때가 있다.

한국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가까이 사는 외국인 강사 친구의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간 남편. 차를 몰고 나갔는데 술도 마셨고 좀 늦는다는 연락이 와서 그러면 그 집 주차장에 차를 놓고 택시를 타고 오라고 이야기를 해 둔 터였다. 새벽 1시쯤 신랑이 들어왔는데 굳이 잘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워 격앙된 목소리로 호소하는 남편.


"골목에서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나서 우리집 까지 차를 몰고 주차까지 완벽하게 해주고 갔어. 단 돈 10달러에 말이야. 이게 말이 돼? 당신도 이 시스템을 알고 있었어?"


남편의 친구 아내분도 한국 분이라 남편에게 대리기사를 불러준 모양이었다. 하긴, 택시 기본요금이 이만원이 넘고 버스나 지하철로 3-4정거장만 이동해도 5천원 돈을 내야되는 호주 대중교통만 이용하다가 한국 대리기사 제도를 이용하면 엄청 놀랍긴 할 것 같았다. '저스트 텐달라! 어메이징 코리아!' 그 날 밤 남편의 흥분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이제는 스스로 대리기사 앱을 다운 받아 한국말 한 마디 하지 않고도 알아서 척척 대리기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남편. 심지어 쿠폰을 이용해 할인까지 받는 남편을 보면 나보다 더 한국인 같다고 느낀다.




우리 부부는 결혼 초기에 호주에서 먼저 생활했기에 소꿉놀이 같은 살림이긴 했지만 내가 요리를 시작한게 호주였으므로 나는 한식보다 양식이 익숙하다. 그래서 한국에 살아도 우리집 식사시간의 메뉴는 한식 반, 양식 반 정도의 비율을 늘 유지하고 있다.


한식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돌솥비빔밥(우리 남편이 돌솥비빔밥을 특히 좋아해서 대형 식자재 마트에서 돌솥비빔밥 용기를 사놓아서 집에서도 식당식 돌솥비비밥이 완벽 구현 가능하다.) 정도를 자주 요리하는 편이고, 육식 식습관을 가진 호주인 남편인지라 돼지고기든 소고기든 아무 고기를 구워주면 잘 먹는다. 구운 고기를 쌈장에 푸욱 찍어 구운 마늘과 묵은 김치를 곁들여 야무지게 상추에 싸먹는 걸 좋아한다. 파절이나 양파절임 말고 꼭 김치를 곁들어 쌈을 싸먹는다.


우리 남편이 한식 한 상 크게 차려잡숫고, 콜라 한 잔으로 마무리 후, 끄어억 하고 트림을 하면 영락없이 고추가루와 마늘 냄새가 뒤섞인 '전형적인 한국인의 트림 냄새' 가 난다. '이 인간 한국사람 다 되었네!' 를 남편의 트림 냄새로 깨닫는 내가, 스스로도 웃긴 순간이다.




인건비가 엄청 비싼 호주는 모든 주유소가 셀프주유소 이다. 모든 주유소에는 작은 편의점이 딸려 있어서 손님이 스스로 주유를 하고 요금 청구서를 뽑은 후, 편의점 카운터에서 계산한다. CC TV 가 설치되어있으니 계산을 안하고 도망가더라도 어차피 잡히는 건 시간 문제이다.


평생 이 시스템에서 자란 우리 남편이 한국에 와서 주유소를 들렀더니, 들어가는 순간 3-4명의 직원이 90도로 인사하고, 휴대용 티슈와 생수를 선물로 주기도 하고, 주유 중에 앞 유리창을 닦아주기도 한다. '어메이징 코리아!' 를 연발하며 감동을 받은 우리 남편. 자주 가는 동네 주유소는 정해져 있는데 다녀올 때 마다 오늘은 무얼 받았는지 꼭 자랑한다.


우리 동네를 벗어나 주유를 하던 어느 날. 호기롭게 주유기 앞에 주차를 했는데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는 이가 없다. 우리 신랑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주유기에 영어로 크게 쓰여진 'SELF' 라는 단어를 보고는 곧장 차를 돌려나가는 것이다. 지금 뭐하냐고 황당해하는 나를 향해 'It's Korea. I should follow the local system.' 이 얼마나 구차한 누가 정한 지 모를 법칙인지. 자기는 평생 스스로 주유했으므로 이제 남은 여생은 특권을 누릴 자격이 된다나 뭐래나. 여하튼 우리 남편은 셀프 주유소를 발견할 때 마다 주유 경고등이 깜빡이는 상황에서도 그 '특권' 을 누릴 수 있는 주유소만을 기어이 고집한다.




호주 문화 특유의 느리고 릴렉스하고 여유로운 성향을 우리 남편도 뼛 속 깊이 갖고 있다. 삶의 신조도 'Work to live. Do not live to work.' '살기 위해 일하자. 일하기 위해 살지말자.' 이기에 영어공부방을 하는 우리 남편은 주 20시간 이상 절대 수업을 하지 않는다.


이런 남편이 정말 야박하고 급한 경우가 운전을 할 때이다. 보통 호주 사람들은 교통규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보행자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몇 분이건 몇 십분이 건 기다려주는 기다림의 미덕을 보여주는 운전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예외. 어릴 때 피자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호주에서 오랫동안 택배 사업을 한 적이 있어서 우리 남편은 운전대를 잡으면 본능적으로 마음이 급해지는 모양이다. 자기는 너무 급한데 온 나라 운전자들이 양보의 미덕을 생활화 하고 있으니 늘 답답했던 남편이 한국에와서 운전대를 잡으니 물 만난 고기이다.


과속 벌금이 엄청 비싸고 도처에서 단속이 이루어지는 호주에서 교통법규를 항상 지키고 살다가, 상대적으로 단속이 느슨하고, 위반이 적발된 경우에도 호주에 비해 벌금이 매우 저렴한 한국에 오니 고속도로만 타면 스피드 레이서가 된다. 자동차를 200키로미터 주행이 가능하게 만들어놨으면 그 기능을 써줘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시속 130, 140키로미터를 밟는 것은 예삿일이다.


끼어들기, 불법유턴 등 온갖 불법을 자행하여 나의 비난을 들을 때 마다 'In Rome do as the Romans do.',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한다.'며 한국에 잘 적응하고 있는 본인을 자랑스러워하지는 못할 망정 왜 잔소리를 하느냐고 되려 큰 소리이다. 부끄러운 내 나라의 단면을 '어메이징 코리아!' 라고 치켜세우는 철없는 남편.


둘 중에 뭐가 더 최악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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