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없는 항암치료도 있다고요?

나이롱환자

by 강점코치 모니카

대부분의 암환자에게는 첫 번째 항암 치료제가 효과가 가장 좋다. 원발암 및 전이상태 확인을 위해 온몸을 구석구석 정밀검사를 하고 환자의 유전자까지 분석한 뒤, 각 환자 상황에 맞는 최적의 항암치료제를 첫 치료약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수술이 불가한 4기 폐암의 경우, 환자에게 특정 유전자변이가 있으면 경구 표적치료제 방법이 가능하다. 당뇨나 혈압을 다스리듯 알약을 꾸준히 복용하며 항암치료를 할 수 있다. 아니면 흔히 떠올리는 주사치료를 할 수도 있다.


조직검사 결과 엄마의 경우 경구 표적치료제 방법이 가능한 유전자 변이가 없다고 했다. 항암 주사치료 방법만이 유일했는데 엄마는 항암주사에 대한 굉장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토하고 머리 빠지는 치료는 받지 않겠다며, 그 옛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영화의 민머리 여주인공을 떠올리곤 했다.


주사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주치의 교수님의 말에 엄마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입원 검사 기간 내내 여장부 같이 기개 넘치던 엄마의 몸에서 실시간으로 혼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알약 치료가 불가하다는 말 뒤로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듣는 귀머거리가 되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내 자식 같으면 뺨이라도 때려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었다.


다행히 당장에는 엄마가 영화 속 민머리 여주인공이 될 걱정은 없었다. 항암주사제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영화 속에 그려졌던 극심한 오심과 구토, 탈모의 부작용을 동반하는 전통적인 항암요법인 '세포독성항암제' 와 비교적 신약에 속하는 '면역항암제'가 있다.


좋은 세포, 나쁜 세포 구별 않고 우리 몸에서 급성으로 증식되는 모든 세포를 다 죽이는 세포독성항암제와 달리, 통상 면역항암제로 주로 불리는 면역관문억제제는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을 직접적으로 활성화시켜 암과 싸운다. 면역항암제 치료도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검사결과 체내 PD-L-1이라는 물질의 수치가 높아야 되는데, 엄마의 PD-L-1 수치는 100점 만점에 70점이었다.


물론 면역항암제도 폐렴이나 피부건조증, 무기력증, 근육통 같은 부작용을 갖고 있으나 그 정도가 세포독성항암제의 부작용에 비하면 경미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탈모 부작용이 없다. 죽고 사는 문제에 탈모 부작용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자존심이 세고 체면을 중시하는 엄마에게는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극 외향 성향을 가진 엄마에게 '살아있다.'라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친지들과 외출하여 맛있는 음식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왁자지껄 깔깔 웃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남들이 보기에 환자 티 나지 않는 외모를 가져야 되는데 탈모가 오는 순간 엄마는 외출을 삼가고 사람 만나기를 꺼려할 것이다. 나는 엄마 배에서 태어난 자식이지만, 극 실용주의자로서 그깟 머리털이 무슨 대수냐, 남들이 나를 보든 말든 소위 '알빠노'로 가볍게 쳐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즉흥적인 이벤트 없이 매일 일정한 루틴을 지키며 실내 위주 생활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며 지낸다면 엄마에게 그건 살아있어도 죽은 삶이다. 엄마는 폐암 이전에 이미 '집에 잠시도 가만히 못 앉아있는 병'을 가졌다. 주 6일 식당 일하고 딱 하루 쉬는 일요일, 외출 건이 없어 하루 종일 집에서 티브이라도 보는 날이면 엄마는 다 죽어가는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곤 했다. 엄마는 여장부 포스를 뽐내며 이 집, 저 집 간섭도 하고 퍼주고, 언성 높여 싸우고 또 풀며 하루를 살아도 멀쩡하고 활력 있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엄마에게 항암주사를 맞으라고 하니 평소 괄괄하던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순식간에 어린아이처럼 주눅이 들었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눈가에 눈물을 달고 있는 엄마를 보니 발이 떨어지지 않아 암호같은 의사의 말을 보호자의 언어로 다시 설명해 주었다.


"엄마 김한길이 알제? 왜, 그 머리 허~연 국회의원 있잖아."


면역항암제는 배우 최명길 남편, 김한길 의원이 맞았던 아주 비싸고 귀한 약이라고, 2016년에 폐암 4기 진단받은 김한길 의원이 이 약 맞고 아직도 건강하게 잘 살아있다고, 2024년도 3월 이전에는 돈 있는 사람들만 맞을 수 있던 이 귀한 약이 이제는 건강보험 급여 약이 되어서 엄마는 돈 걱정 없이 이 좋은 약을 맞을 수 있다고. 무엇보다 이 약은 엄마가 상상하는 '세포독성항암제' 와는 달라서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고.


"탈.모.가. 없.어!"


힘주어 말해주고는 병실을 나섰다. 오늘 같은 날 하루 종일 곁에 있어줘야 되는데 지난 2주의 입원 기간 동안 미루고 미룬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날이 하필 오늘이었다. 언니 말로는 엄마가 언니와 통화할 때 둘이 같이 조금 울었다고 했다.


나는 아직 엄마 때문에 운 적은 없다. 슬픈 감정보다 현실적인 걱정이나 불안의 감정이 압도적으로 크다 보니 눈물이 나지 않는다. 가끔씩 울컥할 때가 있긴 한데 그럴 때마다 인위적으로 누르는 것도 있다. '저 독한 년이 울 때는 뭐가 안 좋게 돌아간다는 건데.' 라며 내 눈물은 엄마를 오해시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막상 첫 항암주사치료를 받을 때 엄마는 꽤 덤덤했다. 머리가 빠지지 않는, 한 팩에 300만 원이나 하는 약이라니 '내 생애 이런 비싼 약도 맞아보네.' 라며 살짝 황송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엄마는 3주에 한 번씩 입원하여 면역항암주사치료를 받고 있다. 주사를 맞고 나서 3일 후부터 일주일 정도까지는 부종, 피부건조증, 설사, 무기력증, 근육통, 숙취 같은 오심 등 자잘한 부작용을 겪지만 나머지 2주는 평소 컨디션을 유지하며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손끝, 발끝 주변에서 시작해서 온 몸의 피부 빛깔이 조금 거뭇거뭇해지긴 했지만 탈모는 없다.


심심하지 않을 정도의 간격으로 전화기가 울려대어 식사 약속, 커피 약속, 드라이브 약속이 생겨 여기저기 바삐 다니신다. 암 진단을 받고 맞이한 첫가을에는 친목 계모임에서 일본 오사카로 해외여행도 다녀오셨다. 폐암 4기라는 병명에 압도되어 매사에 조심하며 위축되어 살기보다 이전의 일상을 유지하며 활력 있게 사는 것은 환자 본인에게나 주변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엄마의 투병기를 보며 암 '4기'와 '말기'는 전혀 다른 개념임을 배운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오르는 상경길 역시 엄마는 3주마다 돌아오는 소풍으로 여긴다. 암 진단을 받고 생애 처음 타본 KTX. 이제는 혼자서 척척 플랫폼도 잘 찾으시고 탑승 전 카페라테 한 잔도 미리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타는 여유가 생겼다. 딸이 행여 마중시간을 못 맞추고 늦더라도 서울역 주차장까지 미리 내려와 계신다.


항암치료를 받는 2박 3일의 입원기간, 또래 보다 키도 크고 건장한 엄마가 너무도 씩씩하게 복도에서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병동 환자들이 의아한 듯 쳐다보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어본다.


"아줌마는 어디가 아파서 입원하셨어요? 이렇게 건강해 보이는데......"


"아~ 저요? 저 항암주사 맞으러 왔어요. 폐암이에요. 4기!"


너무나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폐암 4기'라는 병명을 뱉어내니 상대방이 적잖이 당황한다.


"어머, 전혀 환자처럼 보이지 않으세요. 이렇게 건강하신데 잘 이겨내실 거예요!"


"그렇죠? 이래서 내가 자꾸 나이롱 환자로 오해받는다니까요. 호호호."


마지막은 역시나 엄마의 농으로 가볍게 털어진다.


자라면서 엄마의 대책 없는 낙천적임이 원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엄마가 긍정적일수록 나는 시니컬한 딸이 되어갔다. 그런데 이제 보니 엄마의 낙천성 그 자체가 만사의 솔루션이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에게 머리칼은 너무 소중하다. 머리카락이 빠지면 엄마의 낙천성도 같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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