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용서 못해
"엄마는 왜 모든 우산을 일회용으로 만들어?"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컨디션이 찌뿌둥해진다거나 감정이 센치해진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고 비 오는 날엔 매번 우산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갈 때 우산을 챙기는 것부터 잊어버리기에 항상 편의점에서 새 우산을 사는데, 그 우산을 딱 한번 쓰고 지하철이나 버스에 두고 내린다. 그래서 내게 비 오는 날은 돈 만원은 꼭 버리는 날이다.
같은 맥락에서 겨울도 좋아하지 않는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북한에 더 가까운 도시에 살면서 한파를 이겨내려면 비니, 목도리, 마스크, 장갑으로 온몸을 동여매고 외출을 해야 한다. 몸에 걸친 아이템이 늘어날수록 분실의 위험도 높아진다. 스마트폰 사용 때문에 특히 장갑을 가장 자주 잃어버려서 산책용 장갑은 항상 다이소에서 가장 저렴한 것을 산다. 좋은 걸 쓰다가 잃어버리고 자책하는 게 스트레스여서 애초에 좋은 것을 사지 않기로 했다.
30년 전에 산 헬로키티 헤어핀을 딸에게 물려주는 우리 언니는 도대체 장소 이동 전에 한번 뒤 돌아보고, 주변 확인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의아해한다. 들을 때는 참 쉬운 말인데, 실전 적용은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40년 넘게 살아온 데이터 분석의 결과 나란 인간이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일주일 전쯤 마을버스를 타고 안경점을 다녀오는 길에 2인용 좌석에 앉았다가 다이소에서 산 3,000원짜리 장갑을 두고 내렸다. 그래서 이번 주 내내 반려견 찰리를 산책시킬 때 외출용 가죽장갑을 끼고 나갔다. 외출용 장갑도 어차피 잃어버릴 것을 알기에 매년 겨울이 시작할 때쯤 백화점 좌판에서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정도에 산다. 그래도 다이소 장갑보다 최소 5배는 비싸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산책용 장갑을 하루빨리 사놔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매번 외출할 때마다 다이소 가는 것을 또 잊어버려서 일주일째 가죽장갑을 끼고 찰리와 산책을 다녔다.
어제 아침에 찰리를 산책시키고 돌아와서 옷가지를 정리하는데 가죽장갑 한 짝이 없었다. 역시나 일주일을 못 버텼다. 이쯤 되면 도대체 나는 이 미천한 두뇌로 20년 넘게 어떻게 일을 하고 급여를 받아왔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오늘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다가 식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던 가죽장갑 한 짝을 보았다. 한 짝뿐인 장갑이 무슨 소용인가. 어디서 떨어뜨렸는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기에 다시 찾을 확률이 희박했다. 미련 없이 종량제 봉투에 장갑을 쑤셔 넣었다. 한 손에는 찰리의 목줄을 쥐고 다른 손에는 종량제 봉투를 들어야 하니 주머니도 쓸 수 없어 손이 시리다 못해 아렸지만 오늘은 맨손으로 산책을 나갔다.
산책이 끝날 무렵이면 들르는 작은 동산에서 항상처럼 찰리에게 물을 먹이고 목줄을 풀어주었다. 갓 돌이 지나 에너지가 넘치는 찰리가 동산을 운동장 삼아 뺑뺑이를 도는 모습을 선 채로 바라보는데, 나뭇가지에 열매처럼 걸려있는 내 가죽장갑 한 짝이 눈에 들어왔다.
'앗! 어제 찰리에게 물을 주다가 가죽장갑을 동산에 떨어뜨렸었구나.'
이 동산은 일반 공원이 아니라서 인적이 드물고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주민들만 잠시 목줄을 풀어줄 목적으로 출입하는 곳이다. 내가 떠난 자리를 찾은 우리 동네 어느 주민이 장갑을 발견하고는 내가 다음 산책 때 장갑을 찾아갈 수 있도록 눈높이 나무 위에 장갑을 걸어두고 가신 것이다.
'아이고, 친절하셔라. 이야, 아직 세상은 살 만해. 인류애가 넘치네 아주. 난 정말 운이 좋아. 올해는 일이 다 잘 풀리려나. 이번에는 돈 굳었네.'
따위의 생각을 하다가 종량제에 쑤셔 넣은 나머지 장갑 한 짝이 기억났다.
'앗. 내 장갑. 내가 너무 일찍 포기했구나. 너무 빨리 단념했구나. 나는 이렇게 승질이 급해서 문제야.'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찰리와 함께 집으로 달렸다. 다행히 주말이었다. 토요일 이 시간에 쓰레기 수거차가 왔을 리는 없으니 되찾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장갑의 컨디션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가 없다. 싱크대 배수구 음식물 찌꺼기를 음식물 쓰레기로 분리수거하지 않고 귀찮아서 종량제 봉투에 냅다 쏟아부은 것이 생각났다. 하늘이 준 세컨드 찬스를 내 귀차니즘이 망쳐버렸다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요즘은 '기-승-전-엄마의 암'으로 모든 생각의 흐름이 이어진다. 엄마는 3달에 1번씩 CT검사로 항암치료 경과를 체크한다. 암이 더 작아지거나 없어진다면 더 좋겠지만 다른 곳에 전이되지 않고 현상유지만 해도 검사 결과는 통과이며 현재의 치료방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진단 후 7개월째에 받은 지난 CT검사 결과 엄마의 폐암의 크기가 조금 더 커졌다고 했다. 오른쪽 골반 뼈에도 희끗하게 새로운 종양이 보여 전이가 의심된다고 했다. 탈모 부작용이 없는 현재 약을 오래 유지하기를 바랐는데 약을 바꾸어야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앞으로 엄마가 쓸 수 있는 약은 2-3가지뿐이고, 약에 암이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엄마는 떠날 것이다.
그 순간이 더디어 오길. 약을 바꾸는 기간이 늦추어지길. 암이 제발 더 번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있어 주길 바라왔는데. 암이 커졌다고 했고 엄마는 전이 여부를 상세하게 확인하기 위해 진단 당시 때처럼 대여섯 가지의 검사를 받느라 오랜 기간 입원했다.
동산에서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장까지 달려가는 동안 나 자신을 원망하고 원망했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이렇게 나를 도와줄 텐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데 섣불리 장갑 한 짝을 쓰레기 봉지에 쑤셔 넣은 내가 너무 미웠다. 내가 너무 일찍 포기해 버린 그 장갑을 다시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 장갑이 오염되지 않고 손상되지 않고 깨끗한 상태라면 우리 엄마도 머리털 한 올 빠지지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 동생의 결혼식 혼주석에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리수거장에 담배를 피우러 나온 아저씨가 이상하게 쳐다보는데도 아랑곳 않고 30분 전에 내가 버린 종량제 봉투를 마구 헤집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걷어내고 쓰레기 뭉치 몇 점을 걷어냈더니 까만 장갑이 보였다. 조심스레 들어 올리니 깨끗한 모습 그대로였다. 장갑 두 짝을 마주 보게 포개 쥐었더니, 이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다행히 엄마의 치료는 기존 약을 유지하면서 방사선 치료를 10회 병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방사선 치료는 또 처음이라 엄마도 가족들도 불안한 기색을 띠었다. 괜찮다. 나에게는 네 잎클로버도 몇 십 개나 있고 환생한 가죽장갑도 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