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어른

느림을 지키기 위해 쓰는 기록들

by 별향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 어릴 때엔 그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를 더한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쌓일수록 삶은 복잡해졌고, 흔들림은 더 자주 찾아왔다.


첫 직장에서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공채로 들어간 회사에서 그들보다 직급이 조금 더 높다는 이유로 선배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야 했다. 스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실장님과 나 사이에 쓸데없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제대로 된 변명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 소문은 오래도록 마음에 얼룩처럼 남았다. 무엇보다도 그런 이야기를 입에 올리던 사람들이 ‘어른’이라는 사실이 나를 깊이 실망시켰다. 그 경험은 내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오래 생각하게 한 바탕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며 나는 오래 붙들어온 그 질문과 다시 마주했다. 처음에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첫 화의 공기는 지나치게 어둡고 무거웠다. 화면 가득 드리운 상처와 무력감 때문에 몇 번이나 멈췄다가 겨우 끝까지 보았다.


드라마의 주인공 박동훈은 특별한 인물이 아니었다. 직장에 치이고, 가정에서도 기대지 못하는 흔한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늘 버티고 있었다. 그 버팀은 자신을 넘어 타인에게까지 닿았다.


동생을 챙기고, 동료를 감싸고,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누군가를 지켜내려는 모습. 나는 그 안에서 어른의 얼굴을 보았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거야.”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끝내 살아내려는 의지처럼 들렸다. 그 말처럼, 버티는 힘은 내 안에서 비롯되지만 누군가 곁에 함께 있어줄 때 더 단단해진다. 그런 삶의 태도는 지친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건네주었다.


“이제 너도 좀 편하게 살아...그냥 행복하게 살아.. 먹고 싶은 것도 먹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것은 단단한 위로였다. 행복해도 된다는 말, 그 안에 그 사람의 삶을 인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드라마의 다른 주인공 지안 곁에 머무르며,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밥을 사주고, 함께 앉아 있어 주고,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 따뜻한 무심함이 지안에게는 처음으로 ‘살아도 된다.’는 확신이 되었다.


좋은 어른은 반드시 정답을 내놓는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말보다 먼저 시간을 내어 주고, 어떤 날은 잠시 물러서 기다려 준다.


또 어떤 날은 위로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곁에 머문다. 누군가가 자기 삶을 미워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조금 덜 책망하도록, 마음의 호흡을 되찾을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사람. 흔들림을 함께 견뎌내며, 조용히 지지해 주는 어른이고 싶다.


많은 것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버티는 동안 곁에 함께 머물러 주다가, 언젠가 그 사람이 나 없이도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 때 조용히 한 걸음 물러설 수 있기를.

<드라마 ‘나의 아저씨’ 대사 中>


· 나는 태어나서... 좋은 날이 하루도 없었어요 –지안-


· 그래요. 버티면 돼요. 결국 버틴 사람이 이기는 거잖아요 –지안-


·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더라 –윤희-


· 인간은요, 평생을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면서 살아요. 전 그랬던 것 같아요...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이 됐어요 - 유라-


·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동훈-




매거진의 이전글02. MB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