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을 지키기 위해 쓰는 기록들
어릴 적 아이의 집은 넉넉하지 않았다. 장난감보다 빌려온 책을 읽고 혼자 상상 속에서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이는 스스로를 챙기며 자라났다. 기뻐도 크게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웃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였다.
그 시절 부모의 삶은 고단했다. 밤늦게 들어오는 발걸음, 낮은 한숨의 무게 같은 것들. 아이들만큼은 그 무게를 덜고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공부는 스스로 해냈고, 그것이 부모의 자랑이 되었다. 아이는 집안의 사정을 일찍 알아챘고, 동생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자랐다. 동생이 공부를 더 잘했으므로, 아이는 국립대에 진학하면 부모의 부담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행히 대학을 다니는 동안 장학금을 받았고, 한 학기를 앞당겨 졸업하기도 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진로를 오래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가볍게 준비한 시험에 뜻밖에 합격해, 졸업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대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행복해도 될까’였다. 혼자 느끼는 행복이, 부모에게 미안함으로 번지고는 했다. 행복한 순간마다 ‘정말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느 어른은 말했다. 부모의 감정이 너에게 깊이 배어 있는 것 같다고, 그 감정을 분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두 번째 직장을 선택하며 아이는 독립을 했다. 물리적 거리가 생기자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부모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은 별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부지런한 부모는 젊은 시절보다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모든 것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하니, 그제야 안도가 찾아왔다. 아무도 그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오래 짊어진 시간이었다.
30대에 접어들어서야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기뻐하고 숨 쉬는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 안에는 아직도 어린 아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을 돌아본다 해도, 매일 달라지는 자신을 따라잡지 못하면 금세 자신의 속도를 잊고는 했다.
아이는 지금도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아이는 그저 아이의 속도로 자라면 좋겠다고. 어른도 너무 어른답지 않아도 된다고. 어른다움이라는 건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기대일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어른이 된 아이는 가끔 어린 그 아이를 품에 안아본다. 그리고 말해준다. 이제는 마음을 놓아도 괜찮아. 네가 버틴 시간들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이제 천천히 숨을 들이쉬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