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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파인 Nov 30. 2021

두 살 아이와 와이프를 데리고 아프리카에 온 사연

2021년 5월 초, 아프리카 르완다에 있던 지인을 통해 국내 NGO의 현지 지부 총괄 파견직 제안받았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유엔 가입 기준 총 54개의 국가가 있다. 그중 르완다는 우리나라 경상도 크기 정도로 작은 나라이며, 1994년 르완다 제노사이드(대량학살) 사건으로 100만 명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 후 전 세계적인 지원으로 현재는 천 개의 언덕,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리며 아프리카에서 여행하기 좋은 나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르완다의 치안 수준은 굉장히 높아졌다.


나는 2016년, 2018년 두 차례 아프리카 경험이 있었고, 7년여 동안 비영리 분야에서 보건-일자리-국제개발 등 다양한 영역의 사업을 진행하여 지원요건은 충족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왜 아프리카, 그 못 사는 나라로 가냐고? 표면상의 이유는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을 하려면 현지 경험이 필요했다. 사실 궁극적으로 나는 나를 더 성장시킬 무언가를 찾기를 원했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안정된(또는 안주할 수밖에 없는)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와이프는 아프리카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었지만, 내가 경험한 아프리카를 설명할 때마다 잘 들어주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나의 결정을 응원했다. 결혼을 한 후, 언젠가 외국에서 살아보자고 얘기했었지만 그게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가 될 줄은 우리 둘 다 상상하지 못했다. 


2021년 5월 말, 서류와 면접을 통과해 최종 합격했고 파견 일자도 대략 잡혔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감은 없었고 그냥 이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준비할 게 많다고 생각이 들었다. 6월, 기존 회사를 퇴사했고, 아프리카 르완다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시작했다. 코로나 백신과 예방 접종을 했고, 전셋집과 팔아야 하는 물품들을 정리했으며, 현지에 반드시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다. 사실 미션처럼 하나씩 하면서도 실감 나지 않았다.


2021년 8월 11일, 한국을 떠났다. 몇 달째 준비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공항에 도착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2살 아들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고, 양가 조부모님에게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었다.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며 뒤돌아설 때, 우리 엄마의 울음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아쉬울 게 하나 없던 나의 와이프와 2살 아들은 나로 인해 부족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또 고생길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2021년 8월 12일, 만 하루 만에 르완다에 도착했다. 코로나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라 호텔에서 하루를 격리하고 우리 세명이 살 집으로 이동한 첫날밤, 낮동안 청소하느라 열어둔 문과 창문을 통해 수십 마리의 모기떼가 들어와 있었고, 그로 인해 아들의 얼굴은 모기떼에 뜯겨 만신창이가 됐다. 놀라고 가려워 깬 아들은 하얗게 질려있었고, 나와 아내는 아연실색했다. 솔직히 패닉 상태였다. 숨을 헐떡이는 아들을 붙잡고 혹시 말라리아면 어떡하지, 지금 병원은 여나, 이동할 차는 어떡하지 등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급히 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그의 권유로 그의 집으로 피신했다. 르완다 현지에서 선교하는 의사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르완다 수도에는 말라리아가 거의 없고 괜찮을 거라 안심시켜주셨다.


2021년 8월 중순, 집에 모기장을 설치했다. 아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모기에 물린 상처가 있지만 금세 나았다. 아이의 회복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르완다 첫날부터 액땜했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가 어떠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도 사람을 사는 곳이다라고 대답한다. 물론 한국처럼 빠르고, 원하는 물건이 지천에 널려있지는 않다. 세탁기가 고장 난 것을 못 고쳐 1달 동안 씨름하다가 결국 내 돈으로 사게 되고, 2~3일에 한 번씩 미국 바퀴벌레(정말 크다)가 나와 깜짝 놀라기도 한다. 직원들과의 스토리, 현지에서 살면서 겪는 다양한 일들은 차후 스토리를 통해 천천히 공개할 예정이다.


가끔은, 나만 보고 온 가족들 그리고 나의 결정을 따르는 직원들과 나의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현지 사람들을 보며 '내가 뭐라고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좋은 리더, 좋은 선배 등, 우리는 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일단 한 발자국씩 가보려 한다. '좋은'게 '좋은'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이곳에 온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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