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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Oct 11. 2022

논문 써봤더니 결국은 레고(LEGO)

레고와 6하(5W1H) 원칙으로 풀어보는 논문 쓰기

논문은 어렵다.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논문의 글자 그대로 정의를 보면 핵심이 그대로 전해지고 와닿는다. 영어의 ‘paper, thesis, dissertation’ 등 보다는 우리말의 근원인 한자가 그 정의를 제일 잘 전하는 것 같다.  

논문(論文)은 말 그대로 논의하는 글이다. 논의하다는 의미의 논(論)은 말씀 언(言)에 둥글 륜(侖)이 합쳐져 있다. ‘륜’은 지붕 밑에 둥글게 모여있는 것을 나타낸다. 결국 논문은 말을 서로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렇다. 논문은 주고받는 글이다.  

그래서 논문은 일기나 에세이와 다르다. 일기는 그냥 그날의 내 느낌을 두서없이 주제없이 자유롭게 써도 된다. 무엇이라는 대상이나 제목이 있는 에세이와도 다르다. 연구 주제가 명확해야 하고,  말을 하는 글쓰기라는 점에서, 주고받는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논문 쓰다'의 저자 김용찬 교수는 대화를 강조한다. 대화를 목적으로 한 글쓰기를 염두에 둔다면 논문의 본질이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논문의 한자 정의에 충실한 이 설명은 논문을 어떻게 써야할지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이같은 관점에서 논문 쓰기는 레고 블록 쌓기와 비슷하다. 다만 설명서를 따라 만들면 언젠가는 완성되어 더이상 쌓을 블록이나 자리가 없는 레고 블록 쌓기가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온 것을 내가 수정하고 다시 쌓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는 공동 레고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겉으로 보면 완벽해 보이는 기존의 레고 작품(A)에 내 블록 몇 개만 올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도 있고(A+), 기초만 남기고 다 분리해 변형을 가할 수도 있다(A’). 아니면 아예 다 분해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B). 다만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 규칙이 있다. 내가 손을 대서 변형을 했다면 왜 그렇게 했는지, 기존의 작품이 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가 수정한 규칙을 얘기해줘야 한다. 특히 앞서 손을 거쳐간 레고 제작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손을 댄 것이 기존의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는지 판단은 내 작품을 감상할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미완성인 부분은 다시 다음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 


레고 블록 쌓기와 같은 논문 쓰기는 일련의 순서가 있다. 연구문제를 세우고 기존 연구나 문헌을 검토하고, 나름대로 개념화를 거친 뒤에 연구방법을 정하고 자료를 수집해 통계를 낸 뒤 결과를 분석한다. 역시 어렵다. 순서도 와 닿지 않고, 특히 왜 그런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지 논문을 처음 쓰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좀처럼 개념이 잡히지 않는다. 


노하우를 정리해본다. 논문 쓰기 방법을 우리에게 익숙한 6하(5W1H) 원칙에 따라 논문 쓰기를 다시 정리해보니 나름 이해가 된다. 지금부터 어려운 논문 쓰기를 '누가, 무엇을, 왜, 언제, 어떻게, 어디서'에 따른 쉬운 레고 블록 쌓기 놀이로 풀어보려고 한다. 


1. 레고 블록을 누가 쌓을 것인가...누가(who) 

레고 블록은 내 손으로 쌓아야 한다. 논문은 내가 쓰는 것이다. 남의 생각이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인용이고 표절이다. 내 생각과 내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문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고는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는 수많은 글을 쓰면서 항상 내가 써야 한다는 점을 잊고 산다. 내가 글을 쓰면서 내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읽었던 수많은 말이나 글이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써질 때가 있다. 타인의 생각과 글이 내 글이 된 것이다. 그래도 내 관점과 틀에 의해서 써보면 표절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같은 원료로 같은 음식을 만들더라도 요리 순서와 시간에 따라 요리사마다 다른 음식이 나온다. 요리사 숫자만큼 요리가 다양하듯이, 논문 저자 숫자만큼 논문의 표현도 달라야 한다. 


내가 쓰기 위해서는 내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질문이 좋은 연구와 논문으로 이어진다. 내 질문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내 글이 되지 않는다. 내가 궁금하지 않은 것에 대한 연구와 글이 힘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나아가 남의 관심을 얻는 것은 더 어렵다. 논문은 자기의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내 논문에서는 내가 나의 목소리로 내 억양으로 떠들어야 한다. 


ps. 물론 내가 쓰기 어려울 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용하면 된다. 단 생각이나 글을 옮겨온 만큼 누가 언제 어디서 쓴 걸 가져왔는지 정직하게 잘 남겨주면 된다. 


2. 누구의 블록에 손을 대 볼 것인가...무엇을(what) 


무엇에 대해 쓸 것이냐는 좋은 질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다. 연구 문제를 세우고 가설을 만드는 과정은 논문 쓰기의 절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연구를 업으로 하는 학자가 실험을 통해 의미있는 결과를 얻었다면 논문 쓰기는 쉽다. 하지만 논문을 써야 하는 학생이 어떤 대상에 대해 연구를 하고 글을 쓸지는 어렵다. 내가 뭐가 궁금한 지 나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 질문은 무엇인가? 완성된 레고 블록을 보면서 멋있다, 아름답다고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저 자리에 왜 저 색상의 블록이 들어갔을까?’ ‘왜 저 크기의 블록이 들어갔을까?’ 끊임없이 빼어 보고 바꿔 끼워봐야 한다. 그래야 내 질문이 나온다. 너무 크게 바꾸려고 시도하거나, 하나 바꿔도 표시나지 않을 미시적인 변화보다는 역발상적이고 구조와 개인을 연결시키는 질문, 여러 상황에 적용이 가능한 질문을 만들어보는 과정에서 내 질문이 나온다.


그렇다. 새판을 짜기 보다는 기존의 완성된 블럭들(A, B, C, D…)을 관찰하고 많이 볼수록 A+나 A’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A는 검증되고 완성된 블럭인만큼 A+나 A’가 된다는 것은 실패한 논문이 될 가능성이 적다. 초심자에게 의미있는 지적이다. A를 보고 논문을 처음 쓰는 학생이  당장 B를 만들어 내려고 하기 보다는 A+나 A’를 고민하는 것이 배가 산으로 가지 않는 비결인 듯 싶다. 내가 궁금한 주제나 대상과 관련된 선행 연구를 많이 찾아서 읽어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선행 연구는 남들이 쓴 논문을 읽는 문헌 고찰로 시작된다. 선행 질문에 같은 답을 하는 것도, 기존 질문에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부딪히는 논쟁을 말리는 것도 모두 논문으로서 의미가 있다. 남들의 업적을 살펴보는 문헌 고찰 역시 내 논문의 기록에서는 내 말로 풀어써야 표절의 오해를 피할 수 있다.  


3. 블록을 고치고 싶은 이유는...왜(why) 


거듭된 선행연구와 호기심, 이론에 대한 시비와 딴지걸기를 통해 연구 주제가 찾아졌다. 제목을 만들어야 하고, 주제를 잡아야 한다. 논문 쓰기에서 ‘what’만큼 중요한 것이 ‘why’라고 생각된다. ‘why’를 설명하기 위해서 논문을 쓸 때는 제목과 초록, 서론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았다고 해도 제목과 초록, 서론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논문으로 탄생하기 위한 선행 과정인 교수들의 심사 문턱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제목은 글쓰기의 전부라고 해도 사실 과언이 아니다. 뉴스 기사에서 제목과 헤드라인이 중요한 이유와 같다. 독자가 찾지 않는 글은 생명력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눈길을 끄는 문구를 동원하되 핵심 내용과 맥락이 빠져서는 안된다. 그러면 길어진다. 실패다. 제목은 핵심을 싣되 짧아야 한다. 그래야 관심도 불러일으키고 후속 연구자들에게 인용될 수 있다. 인용되지 않은 논문 역시 눈길을 끄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낮다고 볼 수 있다. 


초록에도 ‘why’는 독립되고 완결되게 담겨야 한다. 시간이 바쁜 독자들은 내 논문을 다 읽어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옷을 사러 갔을때 눈으로만 훑어보는 것이 제목 읽기라면, 종업원의 권유에 따라 한번 입어보는 것은 초록을 보는 것과 같다. 한번 입어본 고객들은 그냥 지나친 사람들보다 그 옷을 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종업원의 입장에서 눈으로만 보고 가는 고객보다 피팅룸에 옷을 가지고 들어간 사람들에게 더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논문 쓰기에서 초록에 공을 들여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4. 레고 블록이 90년을 버틴 이유는...언제(when) 


레고는 1930년대 덴마크에서 탄생했다. 100년을 향해가는 레고는 1년에 2억 박스 이상 팔린다. 집집마다 레고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이다. 다양함 속에 보편적인 규칙을 적용한 레고 블록으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은 무한하다. 어떤 크기의 블록을 어느정도 투입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초창기의 레고 작품과 요즘 생산되는 레고 모형이나 작품을 비교해보면 90년의 차이가 느껴진다. 


레고는 발전해왔다. 레고는 그 시대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그 시대의 유행이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작품, 건물, 만화 속의 캐릭터 등도 상품으로 출시되고 있다. 생산자들이 이렇게 조립하라고 가르쳐주는 설명서에 따르지 않아도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레고는 블록 자체의 차이만 있을 뿐 완성된 작품의 종착지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다. 1980년대 미국의 어린이가 만든 것과 2022년 우리나라 아이들이 만든 작품에 쓰인 방법은 같다. 단지 쓰인 블록과 만들어내고 싶었던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논문 역시 마찬가지다. 논문이 다른 출간물과 다른 점은 다양함 속에 보편적인 규칙을 적용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살아남게 한다는 점이다. 논문을 쓰는 시점의 연구 문제는 같은 시기의 다른 대상을 비교해볼 수도 있고, 같은 대상을 시간을 두고 변해가는 모습을 측정해볼 수 있다. 각각의 논문이 그 시대가 용인한 데이터 측정 방법과 결과, 한계 등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의 연구자가 1930년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연구를 시작하고 논문을 쓸 수 있다. 논문의 생명력은 기록만 남아있다면 영원하다. 


5. 무결점의 잠김 기술과 ABS 소재...어떻게(how) 


레고 블록은 아무렇게나 올릴 수 없다. 각 블록마다 크기와 색상의 차이는 있지만 튀어 나온 부분과 들어간 부분이 있고 거기에 맟춰 조립할 수 있다. 블록끼리 잘 빠지지 않고, 아래 위로 다양하게 맞춰볼 수 있는 것은 레고가 발전시켜온 무결점의 잠김 기술과 ABS 소재 덕분이다. 덕분에 레고를 조립하는 아이들은 레고 블록이 정한 규칙만 따르면 무한대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레고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각 블록이 가진 최소한의 규칙이 없었다면 여느 다른 장난감이나 블록 쌓기와 다를바가 없없을 것이다. 


논문이 논문으로서 자격을 인정받고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과학사의 보편적인 연구방법을 적용하고 축적하고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how’에 해당하는 논문의 규칙이다. 논문에는 룰이 있다. 본질은 대화이다. 논문이 일기와 다른 점은 공동체(학교, 학술지)에 공표, 출간한다는 것이고 다른 연구자들의 검토를 거친다는 것이다. 학문 공동체의 공론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논문이 불특정 독자를 대상으로한 책 출간과 다른 점은 일차적으로 다른 학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탄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논문의 규칙에 해당하는 연구 방법은 자세하게 써야 한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신뢰도와 타당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설명을 동원해야 한다. 자료는 어떻게 수집했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 측정하고 분석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애매모호하지 않고 직설적이고 명확하게 써야 한다.


6. 그리고 어디서(where) 


논문은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쓴 것이다. 심사가 끝나고 투고를 거쳐 발간이 됐다면 모든 과정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지금 내가 쓴 것이지만 또 다른(시간적 공간적) 장소에서 읽혀지고 인용될 수 있다. 그래서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 내가 만든 작품이 완성작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한계 때문에 미완성인 점을 결과에 밝혀야 한다.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 너무 겸손하게 쓰다보면 연구와 논문 자체가 볼품없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만해서도 안된다. 자신의 연구를 남의 입장에서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읽어보고 비판할 수 있으면 논문의 완결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백지 상태였던 머리에 논문이 어떤 것인지 대충 스케치는 그려진다. 하지만 여전히 배고프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당위론적인 학자의 팁과 충고가 넘쳐나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함이 가시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대충 이렇다. 


- 지식인들과 학자들은 논문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남의 연구를 평가한다. 시간이 갈수록 연구가 많아질수록 시대는 발전하고 세상은 편리해졌는데, 연구를 수행하고 평가받는 제도와 문턱은 왜 여전히 높은가? 왜 낮아지지 않는가? 

학술적 글쓰기의 형식과 문체, 특성은 왜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와 닮아가지 않는 것인가? 

학계가 수백년 발전시켜온 학문적 글쓰기와 연구방법이 상아탑을 오히려 현실세계와 멀어지게 한 것은 아닌가? 

좋은 연구와 잘 쓴 논문은 항상 일치하는 것인가? 잘 쓴 논문의 통과 의례를 거치지 못하면 좋은 연구가 아닌 것인가? 좋은 연구는 안되는 것인가? 

논문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한 소위 글발이 약한 천재들은 없었을까? 


논문에 대한 초심자의 끝도 없는 의문이 불쑥불쑥 솟아나지만 무릇 지금의 제도란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를 앞서간 수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이 방법이 제일 나아'라며 효율적으로 정착시켜온 것일 것이라는 나의 믿음에 변함은 없다. 

신제품 레고 블럭은 이제 내 손 앞에 있다. 난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하나? 나에게는 셀 수 없는 앞선 레고 완성작들을 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주어져 있다. 다만 긴 시간은 아니다. 누구의 작품에 손을 대야할까? 괜히 건드려서 기존의 작품을 망가뜨리지나 않을까? 전작이 의도한건 색상 변화, 크기 조정이 아니라는 심판이나 관객들의 비판을 들으면 어떡하나? 나는 어떤 레고를 만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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