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환대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인권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인권(人權, human rights)은 말 그대로 사람의 권리,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법과 제도에 의해 필요한 권리를 보장받는 것도 중요하고,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복지가 보장되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 나라는 존재를 나를 둘러싼 사회가 환대((歡待, hospitality), 즉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것이다.
인권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권 일은 누군가(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누군가(가해자)에 의해 침해되고 짓밟히는 일을 마주하고, 이를 구제하는 일이었다.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공익소송을 제기하기도 하고, 형사고발을 하기도 하였다. 때론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입법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상의 벽은 높았고, 소송과 고소고발을 통해 변화되는 것은 많지 않았다. 제도적인 보장을 위한 입법에 성공하더라도 실은 그리 바뀌는 것이 크게 없는 듯 보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제도가 바뀌고,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사람들의 차가운 인식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았다. 장애인에 대해, 정신질환자에 대해, 이주민에 대해 사람들은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그러한 편견과 낙인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이처럼 바뀌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게 되고, 편견과 낙인의식으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해 나 또한 차갑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한계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사실이다. 나 또한 '이기적'이라는 것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져서 유리한 것은 어떻게든 차지하려고 하고, 불리한 것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기본 속성이 있다. 내가 인정받고 대접받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이 인정받고 대접받는 것은 나와 그리 상관이 없는 것이고, 그에 더해 다른 사람의 파이가 커져서 내 파이가 줄어든다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이 이기심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가혹한 것은 이기심의 맥락에서 지극히 부합되는 행동이다.
생각해봐야 할 점은, 내가 남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차갑게 혹은 가혹하게 대하는데 남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따뜻하고 관대하게 대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내가 '갑'의 위치에 있으면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면서 '을'로부터 대접을 받을 것을 혹시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그때뿐이거나, 눈앞에 보일 때뿐이다. 평생 누구에게나 '갑'으로 살 수는 없고, 행여 '갑'으로 계속 살 수 있다고 해도 '을'로부터 받는 대우는 마음에 없는 지극히 형식적으로 말라비틀어진 껍데기뿐인 대우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그러하니 결국 내가 남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남들에게도 따스한 대접을 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남들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고 하는 황금률은 시대를 넘어서 적용될 수밖에 없는 당연한 명제이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남도 나에게 말하고 행동하니 좋은 말을 듣고 싶고, 남이 내게 잘 대해주길 바란다면 먼저 남에게 좋은 말을 하고, 남에게 잘해주어야 한다.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따스하게 대해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환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