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 혹은 메타인지란 무엇인가.
요즘 유튜브, 브런치스토리, 신문기사, 심리 관련 책 등 여기저기에서 자기 객관화 혹은 메타인지란 말을 종종 듣는다. 내가 자기 객관화라는 개념을 인지한 건 초등학교 때의 한 사건 덕분이다. 내 초등학교(정확히는 국민학교) 5학년 때에 담임선생님의 지명으로 부반장이 되었다. 보통 부반장은 크게 하는 일이 없는데, 마침 학급회의를 하는 날 반장이 아파서 결석을 하였고, 내가 학급회의를 주재하게 되었다. 남 앞에 서는 일을 해보지 않았고 그런 일이 절대 나의 일이 될 것이라 생각지 못했는데, 수십 명(내 기억에 우리 반 인원이 60명 가까이 되었다) 앞에서 회의 진행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때 부끄러움이 극에 달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내가 단상 앞에서 우물쭈물 말하는 것을 제3자의 시점에서 관찰하는 또 다른 나를 느꼈다.
그때 사람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말을 하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하고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어떻게 회의가 마무리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로 난 웅변학원에 다니면서 남들 앞에서 말하는 훈련을 열심히 하였다. 웅변대회에도 나가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하고 외치며 당당히 3등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천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때에도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부끄러움이 많은 내 모습의 다른 한편에는 남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말을 잘하고 이성에게도 인기가 많은 나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자기 객관화는 말 그대로 자기를 제3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자기가 바라는 자신의 모습, 남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 간의 차이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과정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인식에 대한 인식', '생각에 대한 생각'처럼 보다 높은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메타(meta)는 '넘어서', '~와 함께', '~에 대하여'라는 뜻으로 어떤 개념의 추상화를 가리키고 그러한 개념을 완성하거나 추가할 때에 사용한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자신의 생각(인지)에 대한 자기 인지능력을 말한다.
자기 객관화의 기본은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다. 소크라테스(테스형)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다. 군을 제대하고 사법시험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 집 근처에 있는 동네 도서관에 가서 혼자 공부를 했다. 이듬해 원서접수를 하고 시험을 봤다. 내 나름으로는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커트라인에서 한참 모자란 점수로 불합격하였다. 이렇게 혼자 공부해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고, 신림동 고시촌을 다니며 학원강의를 듣고, 고시생들이 모여있는 독서실에서 공부하였으며, 고시서점에서 정보도 열심히 귀동냥하였다. 내가 뭐가 부족한지 확실히 인지하게 됐고, 부족한 점을 열심히 보완하였다. 다행히 늦지 않게 시험에 붙었다.
자기 객관화의 두 번째는 내가 내린 판단을 곱씹어보는 것이다. 민간에서 오랫동안 공익전업 변호사로 일하면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선배가 없었기에 동료변호사들, 활동가들과 계속 상의하고, 논쟁하고, 다퉜다. 그때는 내 판단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른 동료에게 내 의견을 꺾이기 싫었다. "100퍼센트 동의 못해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요." 하면서 평행선을 달렸다. 나를 객관화하여 바라보지 않았고, 사안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다.
그런 시절을 거치고, 여러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내 좁은 시야를 자각하게 되었다. 종종 내 판단의 근거가 부족하였고, 그래서 그에 기대어 내린 내 판단은 종종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 판단이 100퍼센트 옳은 것은 아닐 수 있음을 인지하여야 하고, 다른 관점에서는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판단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 객관화의 세 번째로 나의 감정에 대해 잘 인지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내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렇게 느끼는 나의 감정은 정당한 것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외로움을 느낄 때, 혹은 분노나 울분을 느낄 때, 슬픔 혹은 서글픔을 느낄 때, 즐거움이나 행복함을 느낄 때에도 그때그때 느껴지는 감정을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도 스스로 확인하여야 한다. 그런 감정이 객관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때에는 이성적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여야 하고, 정당한 감정이더라도 오래 지속하는 것이 좋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해소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자기 객관화의 마지막은 내가 해야 할 역할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잘 아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늘 판단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해내야 하고,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 자제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자기 객관화는 국어와 산수를 잘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제를 잘 파악해야 하고, 분수도 잘 알아야 한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면 매사에 허둥대지 않고 자연스럽다. 누구를 만나도 편하게 대할 수 있다. 내가 나를 더 잘 알고 사랑하게 되니 자기 스스로를 더 가꾸고 돌보게 된다. 또한 자신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나 스스로를 잘 파악하게 되니 굳이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고, 남들에게 인위적이거나 가식적으로 대하지 않게 된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인간관계를 더 잘 맺을 수 있고, 자기 일을 더 충실하게 잘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기 인생을 좀 더 알차게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