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국 Oct 25. 2023

시간은 흐르고 있고

변호사 20년 차가 되어 알게 된 것들

시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변호사 1년 차 꼬꼬마이던 시절, 연차가 나보다 한참 많은 변호사님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분들은 20년 차 정도 되었을 것이다. 한없이 높아 보였고, 못 오를 나무 같아 보였다. 난 20년이 지나면 어떤 변호사,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를 생각했다. 한참 먼 미래이기에 20년 차가 된 내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세월이 야속하게도 난 올해 딱 변호사 20년 차가 되었다. 20년 전의 나와 전혀 다른 내가 되지 못했고, 20년 전에서부터 한 해, 한 해 지나니 나도 모르는 새 20년째가 되었다. 변호사 20년 차쯤 되면 웬만한 법리는 꿰고 있고, 법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몇 조 몇 항을 알게 되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담요청을 해와도 다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너무나 먼 미래였기 때문이었다. 


변호사 20년 차가 되어있는 나는 1년 차(이건 좀 과했고, 5년 차 정도라고 해두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지식과 연륜을 쌓고 있다. 변호사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지금 변호사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과 연륜은 오히려 팍팍 줄어들고 있는 느낌적인 느낌도 든다. 그 대신 2쪽 보기로 인쇄해서 보는 것이 좀 불편해졌고, 약통의 작은 글씨는 안경을 벗고도 잘 안 보이게 됐다. 


그렇지만 10~20대, 30대와 40대를 지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사건을 거치며 사람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해가 조금은 깊어졌다. 보통의 일상을 수년 아니 수십 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의 수고로움과 그 위대함을 알게 됐다. "인생 뭐 별 거 있어?"라는 말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그 말은 객기 부리려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격언이었다.) 한편으로는 수많은 인연은 머물거나 이어지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것임을 알게 됐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애써 붙잡으려고 하지 않아야 하고, 쿨하게 잘 놓아주어야 함도 깨닫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 내 삶의 시기마다 나를 지켜주고 나를 성장시킨 인연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아야 함을 배웠다.


사람을 한 단면만 보고 판단하지 않게 됐고, 짧은 시간에 그 사람을 알게 됐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의 소중함에 대해 알게 됐고,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 경외감을 표할 줄 알게 됐다. 1~2년은 쉽지만, 20년, 30년, 50년은 절대 쉽게 말할 수 없는 시간임을 알게 됐다.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내뱉는 말보다 내면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누구에게든 친절하게,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게 됐다. 인생의 시련과 고통, 외로움과 설움을 견디고 살아낸 사람은 누구나 위로받고 인정받을 만하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됐다. 


앞으로 더 그렇게 위로하고, 인정하고, 덜 판단하고, 덜 단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삶에, 내 자리에, 내 가족에, 우리 사회에 더 책임감 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