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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국 Oct 28. 2023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소소한 즐거움 그리고 절제하는 기쁨

마음 편한 토요일 아침, 아침을 챙겨 먹고 핸드폰을 조금 들여다보다가(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 얼마 전에 핸드폰 사용시간제한 어플을 깔았다. 유튜브 1시간, 페이스북 30분이 지나면 꽝 닫힌다^^;) 길어진 머리를 깎을 때가 됐다 싶어 다니던 이발소에 갔다. 평소 내 머리를 깎아주시던 이발사 분 외에 중년의 새로운 분이 계셨다. 그분이 이발 후 바닥에 떨어진 머리털 청소를 하고, 내 머리를 감겨주셨다. 


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홀로 안산 둘레길로 향했다. 혼자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걷는 데에 집중하다가, 오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하며 안산 한 바퀴를 돌았다. 독립문 뒤편에 있는 안산은 둘레길을 잘 가꿔놓아서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특히나 등산 초심자가 쉽게 다닐 수 있는 곳이고,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맨발 걷기를 위해 황톳길도 조성해 놓았다. 혼자 산행할 때면 자유로움, 가벼움, 해방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외로움, 부족함, 공허감이 함께 느껴진다. 


코로나19 이후 사회가 급격하게 사회적 거리 두기의 삶이 일반화되어 이제 예전처럼 밤늦게까지 지인을 만나고, 술을 먹고, 노래방에 가고 하는 일이 급격히 줄었다. 예전에는 새벽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던 술집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요즘엔 밤 10시경에 거의 자리를 파하고 귀가를 하고, 1차에서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삶이 더욱 단조로워져서 집-직장-집의 루틴한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는 저녁 일정이나 약속도 잘 잡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넷플릭스나 유튜브, SNS 같은 것들이 채우고 있다. 볼 때는 흠뻑 빠지지만 TV 전원을 끄고, 핸드폰을 닫으면 문득 밀려오는 허전함은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화려한 축제나 공연, 신나는 여행이 끝나면 그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이 더 크게 밀려온다. 화려할 것만 같은 인기 연예인들도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혼자 있을 땐 외로움을 느끼고, 늘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단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진해지듯 화려할수록 그 뒤의 허전함을 더 커지게 마련이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라는 가사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라는 제목의 노래이다. 1980년 대학가요제 은상을 받은 곡이고, 이후에 여러 가수가 리메이크하기도 하였다.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이다. 화려한 무대일수록, 무대 이후 어둠의 정적은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는 평생 권태와 불안을 오가며 산다고 한다. 인생을 살면 살수록 나를 포함하여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고 안쓰럽고 복잡한 존재임을 인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왠지 모를 슬픔, 그와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덧없다'는 보람, 쓸모없이 헛되고 허전함을 뜻한다. 삶의 진수는 그런 단조로움 혹은 덧없음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서로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져야 함을,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잘 다독이고 아껴야 함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소소한 행복 그리고 작은 아름다움을 더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어느 날 점심시간을 지나서까지 이어진 회의를 마치고 늦게나마 탁구수업을 받았다. 탁구를 치고, 샤워하며 땀을 씻고, 김밥을 사 와서 먹었다. 소소한 행복이 이런 것임을 느꼈다. 


때에 따라 가끔 친구를 만나고, 때에 따라 가끔 술도 한잔 하면 참 좋다. 그런데 매일 친구를 만나고, 매일 술을 마시면 과연 좋을까? 그때 당장은 좋겠지만 결국에 좋지 않을 듯하다. 일상의 고요한 루틴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그런 루틴으로 인해 삶을 살아간다. 친구도 술도 절제를 통해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단조로운 일상의 권태와 불안을 거부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담담히 받아들이려 한다. 그 가운데에 때때로 찾아오는 소소한 즐거움, 절제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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