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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트럭 Apr 16. 2016

아이를 키운다는 것

포트럭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 (1)

제가 주로 쓰는 부동산 이야기도, 회사 이야기도 아닌 그냥 쓰고 싶어 쓴 글입니다.

가끔 그냥 이렇게 문득 쓰고 싶어지는 글이 있네요...




4월의 화창한  휴일,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맑고 상쾌한 봄날이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나섰다. 뒤에서 깔깔 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웬만한 음악 못지 않다.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할 때가 내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나는 세 아이의 아빠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딸은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지 걱정을 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적극성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벌써부터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다. 오히려 나와 와이프가 초등학교 학부모라는 지위에 적응하는 게 만만치가 않다. (아이를 위해 챙길 것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리고 엄마 모임은 또 얼마나 많은지, 심지어 아버지 모임도 있다.)  


6살인 둘째 딸은 언제나 아기 같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항상 내 무릎에 앉아 떠나질 않는다. 가장 애교가 많고 정도 많다. 둘째라 질투심이 많으면 어쩌나 했는데, 언니와 동생에게 양보도 잘한다. 늘 자신을 귀찮게 하고 못 살게 괴롭히는 동생도 끔찍이 이뻐하며 책도 읽어 주고 맛있는 것도 먼저 챙겨주는 기특한 꼬마 누나다.


12월생으로 태어난지 1달 만에 2살을 먹었던 우리 막내는 이제 28개월, 한국 나이로는 4살이다. 피는 못 속인다고, 어린 시절의 나와 빼다 박은 외모는 내가 봐도 신기하다. 집안 곳곳을 어지르고 다니는 사고뭉치에 개구쟁이지만,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는 귀염둥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아이들과 함께 보낼 즐거운 시간이 마냥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가고 사춘기가 찾아오고, 자기들만의 세계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은 줄 테니.... 하지만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들과의 행복한 관계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 테니, 난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공감해 주고, 응원해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렇게 내가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건 순전히 한편의 영화로 인해서다. 지금부터 나의 이러한 가치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바로 그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에브리 바디스 파인(Everybody's Fine, 2009년작).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노년에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정을 그린 영화다. 자녀 역을 맡은 배우들도 샘 록웰, 드류 베리모어, 케이트 베켄세일 등 하나같이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40년 넘게 함께해온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프랭크(로버트 드니로)는 주말에 집에 오기로 한 4명의 아들, 딸들이 갑자기 못 오겠다고 알려오자, 자신이 직접 아이들을 깜짝 방문하기로 마음먹고 길을 떠난다.


먼저 프랭크가 가장 아꼈던 큰 아들 데이비드를 만나러 뉴욕에 가지만 데이비드는 집에 없었다. 결국 만나지 못하고, 다음으로 딸 에이미(케이트 베켄세일)를 찾아간다. 에이미는 광고회사 중역으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남편, 자식과의 관계가 왠지 불안해 보인다.


미심쩍은 마음을 뒤로 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아들  로버트(샘 록웰)를 만나러 덴버로 간다.


그런데 잘 나가는 지휘자로 알고 있던 아들은 별 볼일 없는 타악기 연주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you happy?


침울한 마음으로 프랭크는 무용수인 막내딸 로지(드류 베리모어)를 만나기 위해 LA로 간다. 그런데 무용수 인 줄 알았던 로지는 레스토랑 웨이트리스에 미혼모이자 동성애자였다.



자녀들이 하나같이 자신에게 얘기했던 그런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그리고 형제들이 아버지 집 방문을 취소하게 된 얘기를 듣게 된다. 아버지가 가장 예뻐하고 자랑스러워했던 큰 아들 데이비드가 멕시코에서 약물 과다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생전에 한순간도 행복해하지 못했고 늘 비관하며 불행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왜 자식들은 프랭크에게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숨기고 늘 잘 지내고 있다고만 했을까?


로지는 말한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 자신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걸 알고 있지만,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Good  Listener 였던 반면, 아버지는 Good Talker 였다고." 

그래서 힘든 일이 있어도 어머니에게는 숨김없이 다 얘기하고 상의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한테는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다.


프랭크는 자식들에게 늘 "이렇게 살아야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만 말해 왔다. 그래서 자식들은 프랭크에게 진심으로 터놓고 말할 수 없었고,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으로 보이도록 적당히 거짓말을 해 온 것이다.


프랭크를 보면서, 자식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소통하는 법이 서툰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프랭크는 끊임없이 자식들에게 "행복하니?(You happy?)" 라고 묻는다. 대화를 통해 자식들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아버지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들의 상황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프랭크는 부인의 무덤에 찾아가 이렇게 고백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덜 요구하겠다고. 그리고, 자식들이 꼭 사회적으로 성공할 것을 바라지 않겠다고. 그동안 자식들에게 너무 부담을 준 것을 후회한다고.


크리스마스에 자식들은 프랭크의 집에 모인다. 그리고 밝게 웃으면 건배를 한다. 프랭크는 말한다. "지금은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잘 지낸다고(Everybody's fine)"

그리고, 거실 한쪽에는 프랭크가 뉴욕에서 사 온 큰 아들 데이비드의 그림이 걸려 있다.

진한 감동이 밀려왔던 마지막 장면. 해피엔딩 이지만 가슴이 여려왔다.


아이들 키우다 보면 부모로서 당연히 욕심이 생긴다. "최소한 나보다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않을까 라는..."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보고 결심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주자. 그리도 무조건 응원해 주자.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꾹 참고 한마디라도 더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자.  


마지막으로, 영화의 모든 장면이 감동적이었지만, 특히 내 마음속에 애잔하게 남는 것은 프랭크가 자식들을 찾아가 처음 만날 때의 장면이다. 꼬마 아이가 프랭크를 보고 밝게 웃으며 다가온다. 다 큰 자식이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눈에는 어린아이로 보이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 아버지도 나를 이런 눈으로 보시겠지. 그리고 나도 10년, 20년이 지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지금의 어린 모습이 떠오르겠지...

아버지의 눈에는 다 큰 자식도 아이로 보인다.







말 나온 김에 인상 깊게 본 광고 이야기를 하나 더 했으면 한다.

10살쯤 돼 보이는 두 아이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철봉에도 매달리고 스타워즈 흉내를 내며 나뭇가지로 칼싸움도 한다. 지나가는 길에 학급의 예쁜 여자아이를 보자 잘해보라고 놀리기도 한다.



신나게 뛰어놀고 집에 들어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는데 한 아이가 스르르 잠이 든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잠든 아이를 들어 방의 침대에 눕힌다. 아이가 방을 나가려고 하자 누워 있던 아이가 살짝 깨며 나가는 아이에게 인사한다.


"굿나잇 대디."


방을 나가던 아이의 모습이 다시 카메라에 비춰지는데, 아이가 아니라 어른인 것이다. 아이의 눈에 친구로 보였지만 사실은 아빠였다. 아이의 마음속에 친구로 느껴지는 아빠...  


1분짜리 짧은 광고였지만 진한 감동에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 주자. 난 또 이렇게 다짐했다.


광고 링크 걸어놨습니다. 바로 연결이 안 되면 주소창에 copy&paste 해서라도 꼭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b-V8r8w2u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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