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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트럭 Nov 06. 2016

메이저리그를 보는 이유

포트럭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4) : 메이저리그편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것이, 벌써 가을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짧아지는 가을이 아쉽기만 한데요. 하지만, 올 가을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이 있었기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는 다양한 스토리와 감동으로 팬들을 즐겁게 하지요. 특히나 올해는 매 게임이 명승부일 정도로 치열했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습니다. 내셔널 리그는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흥미로웠는데요. 


전반기 메이저리그 최고 승률팀에서 후반기 최저 승률로 극과 극을 오간 샌프란시스코는 뉴욕 메츠와의 와일드카드 단판 승부에 가을 수호신 범가너를 올려 완봉승을 따냅니다. (가을에 전투력을 최고치로 올리는 범가너는 포스트 시즌 통산 방어율이 1점대 후반으로, 상대팀에겐 공포 그 자체입니다.)

특히 2014년 포스트 시즌 범가너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짝수해의 절대강자 샌프란시스코(2010년, 2012년, 2014년 월드시리즈 우승)와 "염소의 저주"를 풀기 위한 시카고 컵스의 디비전 시리즈가 성사되는데요.  


염소의 저주란?
1945년 월드시리즈 결정전 4차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 시카고 컵스의 열성팬인 빌리 시아니스 라는 사람이 자신의 애완 염소를 경기장에 데리고 왔는데, 시카고의 구단주가 염소의 퇴장을 요구했고, 경기 관람 중 갑자기 쫓겨나게 된 빌리 시아니스가 "리글리필드(시카고 홈구장)에 염소를 입장시키지 않는 한 다시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악담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시카고는 결국 월드시리즈에서 3승 4패로 패했으며, 그 이후로 한 번도 우승을 못했습니다. 작년에 시카고가 와일드카드를 통해 NL 승률 2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강정호 소속팀)와 승률 1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이기며 영화 "백투더 퓨처"가 회자되기도 했는데요.(백투더퓨처에서 주인공이 미래인 2015년에 가서 시카고가 우승하는 것을 확인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결국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뉴욕 메츠에게 싹쓸이 패를 당하며 허무하게 졌습니다. 당시 시카고 격파의 1등 공신인 메츠의 선수는 다니엘 머피였는데요. 1945년 염소의 이름이 머피였다고 하니, 염소가 환생을 한 것인지, 여전히 염소의 저주는 유효했습니다. 이처럼 메이저리그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풍부하네요. 

바로 그 문제의 염소입니다.


3차전에서는 포스트 시즌 23이닝 연속 무실점을 이어가던 범가너의 기록이 시카고 투수 아리에타의 3점 홈런으로 깨지는 깜짝쇼가 펼쳐졌고, 4차전에서는 샌프란시스코에 9회 3점을 뒤지고 있었으나, 기어이 역전시켜 3승 1패로 챔피언십 시리즈에 선착한 시카고는 우승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범가너의 안타까운 모습. 하지만 지금까지 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최고...




이렇게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가 드라마를 써내려 가는 동안 다른 한쪽도  정말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졌는데요. LA 다저스와 워싱턴 내셔널스의 경기입니다. 1차전에는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클레이튼 커쇼가 등판했지만 5이닝 3 실점으로 명성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불펜의 힘으로 결국 다저스가 승리를 가져갑니다. 계속된 경기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던 양팀은 결국 2승 2패로 마지막 5차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올해 선발 투수진의 붕괴로 마운드 운영이 어려웠던 다저스는 역시나 포스트시즌에서도 너무 많은 불펜진을 소모했고, 5차전 선발투수 리치 힐이 3회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 당해 다시 한번 불펜을 쥐어짜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6회까지 워싱턴에 1:0으로 끌려가던 다저스는 7회 초 작 피더슨의 솔로홈런과 저스틴 터너의 적시타 등으로 4:1의 역전을 만듭니다. 그러나, 워싱턴도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대타 헤이시의 투런 홈런으로 4:3까지 따라붙고 다시 이어진 안타 등으로 원아웃 1,3루의 찬스를 잡지요.


여기서 다저스 감독 데이브 로버츠는 과감하게 마무리 투수 켄리 젠슨을 투입합니다. 통상 마무리 투수는 9회에 팀이 앞선 상황에서 승리를 지키기 위해 등판하는데, 어차피 이 경기를 패하면 끝이니 급한 대로 당겨 쓴 겁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젠슨이 위기상황을 극복해 냅니다. 그리고 8회에도 등판합니다. 더 이상 낼 투수도 마땅히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운명의 9회가 됩니다.


젠슨이 첫 타자는 삼진으로 잡아 냈지만 연이어 주자를 내보내 1사 1,2루의 위기가 됩니다. 거기다가 젠슨의 투구 수는 50개가 넘은 상황. 젠슨은 마무리 투수로, 통상 1이닝만 던지기 때문에 경기당 투구 수가 많지 않습니다. 50개는 젠슨 커리어 사상 한 경기 최다 투구 수입니다.


이때, 젠슨을 대신해 한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바로 클레이튼 커쇼입니다. 1차전 100개 넘는 공을 던진 후, 3일 쉬고 4차전에서 110개를 던진 상황입니다. 그리고, 단 하루를 쉬고 다시 나온 거지요. 통상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는 한 경기 90~100개 정도를 던집니다. 5 선발 체제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다음 등판까지 4~5일간 휴식을 취하지요.


그러니 커쇼의 등판이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게다가 커쇼는 올해 허리 부상으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재발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커쇼는 감독에게 먼저 자신이 등판하겠다고 말했답니다. 점수를 내줘서 패하면 고스란히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되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포스트 시즌 커쇼는 여러 차례 악몽 같은 실패 경험이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등판을 준비하는 커쇼. 불펜으로 걸어가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 까요...

9회에 등판한 커쇼는 NL 최고의 타자 다니엘 머피를 상대합니다. 머피는 작년 포스트시즌에 커쇼로부터 홈런 2개를 뽑아낸 바 있습니다. 하지만 커쇼는 절대 피하지 않았습니다. 위력적인 패스트볼로 머피를 내야 뜬 공 처리했고, 마지막 타자 역시 본인의 주 무기 커브로 멋지게 삼진을 잡아냅니다. 그렇게 LA 다저스는 시카고행 티켓을 거머쥡니다.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은 바로 인터뷰였습니다. 게임의 히어로 커쇼와 젠슨을 상대로 기자가 여러 질문을 합니다. 주로 커쇼에 질문이 몰렸지요. 심지어 젠슨에게도 커쇼에 관한 질문을 하며 인터뷰가 지루하게 길어집니다.  그러자, 커쇼는 기자의 마이크를 잡고는 "젠슨은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입니다. 우리는 이제 샴페인 파티를 즐기러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팀원들이 기다리는 락커룸으로 갑니다.



하지만 다저스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시카고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1차전을 내준 후 2,3차전을 모두 이기자, 염소의 저주가 다시 떠오르기도 했지만, 결국 시카고는 실력으로 저주를 넘어섰습니다. 2차전 무실점 투구를 펼친 커쇼는 다시 한번 일리미네이션 게임(지면 탈락하는 경기) 징크스를 떨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커쇼와 다저스는 또다시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네요. 


커쇼의 팬으로서 많이 아쉬웠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이룬 선수이기에, 마지막 퍼즐을 쉽게 맞추도록 허락치 않는 것은 나태함과 자만을 경계하라는 신의 뜻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 시카고 컵스는 지긋지긋한 저주를 깨기 위해 클리블랜드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는 코리 클루버와 앤드류 밀러라는 거대한 산이 있었습니다. 이들로 인해 1승 3패로 몰리며 순종 2년(1908년) 이후 우승이 없는 시카고 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이후 우승이 없던 클리블랜드의 우승이 더 가까워진 모습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올해 NBA 우승을 차지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기운도 더해졌었지요. 


하지만, 시카고에는 레스터와 아리에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브라이언트와 리조라는 천재 타자도 있었지요. 내리 2승을 따내며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간 시카고는 8회까지 6:3으로 앞서가며 드디어 한을 푸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8회 말 투아웃에서 클리블랜드는 채프먼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뽑아내는 등 3점을 올려 드라마를 연출하는 듯했습니다. 잘 던지던 레스터를 내리고 구위가 떨어진 채프먼을 기용한 조매든 감독의 패착이 결국 경기를 연장으로 몰고 갔지요.


연장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0회 초 2점을 낸 시카고는 결국 10회 말 1점에 그친 클리블랜드를 힘겹게, 정말 힘겹게 물리치고 그토록 간절했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합니다.   


시카고의 젊은 선수들이 마침내 실력으로 저주를 풀어 냈습니다. 




이렇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2016년 메이저리그가 끝났습니다. 내년 시즌은 또 어떤 재미와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흥분이 되네요. 내년은 커쇼가 우승반지를 낄 수 있을까요? 한번 기대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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