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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트럭 Apr 30. 2017

쉬 어 가 기

포트럭의 소소한 이야기

바쁜 하루였다. 오후에만 외부 회의가 3개나 잡혀 있었다. 2번째 회의를 마치고 다음 미팅 장소로 가기 위해 급하게 택시에 올라탔다. 반백의 나이 지긋하신 기사 아저씨는 예의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정신없이 회의자료를 읽어 보고 있는데, 택시 안을 가득 채운 음악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블루스 음악이었다. 에릭 클랩튼과 제프벡이 몸담았던 전설의 밴드 야드버즈,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게리무어부터 로린힐까지 주옥같은 명곡이 흘러나왔다. 리듬에 맞춰 흥얼거리는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에 여유가 넘쳤다.  


서류를 덮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기사 아저씨가 어떤 분일지 궁금해 질문을 던졌다.


"음악을 좋아하시나 봐요. 선곡이 예사롭지 않으시네요"  

"밴드에서 드럼을 쳤습니다. 옛날 얘기지요."

"아, 그러세요? 저도 음악 참 좋아하는데요. 요즘은 연주 안 하시나요?"


"음악 하는 친구들이 필요하다고 불러주면 한 번씩 연주해 주는 정도예요. 이태원, 혜화동 클럽에서 가끔요."

"멋지세요. 음악은 언제 처음 하셨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했지요. 그땐 대중음악에 대한 편견도 있었고, 음악으로 밥 먹기 힘든 시절이라 대학에서는 다른 공부를 했어요. 근데 음악이 너무 좋 이태원 미 8군에서 밴드 활동을 했지요. 블루스 음악을 특히 좋아했어요. 결혼을 하고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무역일을 하면서 딸 둘 대학 보내고 다 키웠지요. 그리곤 집사람한테 얘기했어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겠다고. 요즘은 밤에 인터넷 방송으로 DJ 활동도 하고 시도 씁니다. 하하"


"그럼 택시운전은 왜 하게 되신 거예요?"

"음악을 좋아해서 쿠바로 여행을 가려고 돈을 버는 겁니다. 아는 분이 택시 해보라고 소개해 줬는데, 적성에 맞고 재미있네요. 3개월 정도 하면 한 500만원 정도 벌리더라고요. 작년에 번 돈으로 유럽에 다녀왔고, 이번에는 쿠바 갈 겁니다. 그러니까 1년에 몇 개월은 돈을 벌고 몇 개월은 여행 가 있는 거지요. 다녀와서 글도 쓰구요."

"대단하세요. 그럼 사모님은 어떻게 하시고요?"

"하하. 집사람은 유학 간 딸한테 가 있어요."


택시에서 내릴 때쯤 카를로스 조빔의 보사노바 음악이 흘러나왔다. 택시 문을 열자 보사노바의 따사롭고 나풀거리는 리듬이 포근한 봄바람에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나갔다.


비틀즈를 동경해 리버풀의 코튼클럽과 스트로베리 필드에 가보겠다고, 너바나를 너무 좋아해 시애틀에 꼭 한번 가보겠다고 다짐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회사에 출근해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회의를 하며 잊고 있었다. 나의 꿈 많던 시절을...


택시기사 아저씨의 푸근한 얼굴과 흥겨운 음악이 잔상처럼 맴돈다.   

쿠바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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