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두철미 스타일에 윤석열 신임 얻어, 국정농단 이어 사법농단 수사까지
사법 농단 사건을 계기로 특수통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한동훈은 명실상부 특수통의 새 얼굴이다.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에 대한 검찰 안팎의 평가다. 한동훈은 사법 농단 사건에선 윤석열 당시 특별검사팀 팀장의 손발이 됐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에도 포기하지 않고 특검 수뇌부를 설득해 삼성 수사에 ‘올인’했다. 결국 이 부회장은 구속됐다.
윤석열은 2003년 대선 불법자금 수사부터 한동훈을 눈여겨봤다고 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좌천됐던 윤석열은 특검을 겪으면서 한동훈의 수사에 대한 감각과 열정, 치밀함을 보고 한동훈을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평가다.
윤석열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부임한 후 최측근인 윤대진을 3차장에 기용하지 않고 한동훈을 선택했다. 검찰은 검사장 바로 아래 차장을 둔다. 한자로 ‘다음 차’ 자를 사용해 이인자임을 뜻한다. 전국에서 가장 큰 지방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차장이 3명이다. 이 중 3차장이 특수수사를 총괄하기 때문에 중앙지검장의 최측근 혹은 최고 능력자가 기용된다.
윤석열의 한동훈에 대한 신임(信任)은 사법 농단 사건으로 이어진다. 사법 농단 사건은 직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사법부 수장을 수사하는 사건이다. 통상 이런 대형 수사는 서울중앙지검장이 팀장으로 수사팀을 직접 지휘한다. 그래야만 서울중앙지검은 물론 대검찰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은 뒤로 한발 물러나 방패가 되길 자처했다.
지난 7월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유임됐을 때만 해도 법조계에선 급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지검장이 직접 나설 것이란 예상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검사장도 아닌 차장검사가 수사팀을 이끈다는 것은 검찰총장은 물론 서울중앙지검장의 신임이 두텁다는 것을 말한다.
한동훈 차장은 행정부의 수장인 전직 대통령 수사에 이어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까지 수사하게 된 최초의 검사다.
윤석열이 한동훈을 선택한 이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지검장이 된 뒤 ‘리틀 윤석열’로 불리는 당시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을 전격 발탁했다. 윤석열 사단이 서울중앙지검에 집결할 것이란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 자리는 한동훈에게 돌아갔다. 그 이유에 대해 윤석열 측근들은 “윤석열은 한동훈을 ‘내가(윤석열이) 부탁해도 안 들어줄 검사’라고 평가했다”며 “윤석열에겐 강인하고 추진력 있는 엔진이 필요했다”고 전한다.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3개월 후 한동훈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임명됐다. 전임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사법연수원 18기)보다 사법연수원 5기수 아래인 윤석열 지검장이 발탁된 것만큼 전임인 이동열 전 3차장(사법연수원 22기)보다 5기수 아래인 한동훈 차장의 3차장 임명도 파격이었다.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것은 청와대의 뜻이었지만 한동훈의 3차장 등용은 윤석열의 뜻이 반영된 결과였다.
윤석열은 한동훈의 철두철미(徹頭徹尾)한 수사 스타일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통상 검사가 피의자를 불러 조사할 땐 검찰청 출근시간 이후인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 불러 조사를 시작한다. 2시간가량 조사를 하고 점심시간을 주고 1시부터 다시 조사한다. 특수수사의 경우 사실관계가 복잡하고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기 때문에 동의를 얻어 일과시간 이후에도 조사가 진행된다.
밤 12시를 넘기는 경우도 많은데 주요 피의자가 조사를 끝냈다는 보도가 나와도 피의자가 청사를 나오는 시간이 3~4시간 뒤인 경우가 많은 이유가 여기 있다. 조서를 읽고 본인이 한 말과 조서 내용이 같은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전 이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닌데요”, “오전 진술과 오후 진술이 다른데 오전 진술이 잘못된 기억입니다” 등등 기소될 경우 법원에 제출될 조서에 대해 치밀한 검토를 거치게 된다.
평검사 때부터 한동훈의 조사 방법은 통상의 방법과 달랐다. 2007년 부산지검에서 같이 근무한 검사의 전언이다. 한동훈은 오전 조사를 하고 서명날인을 받는다. 오전에 진술한 것과 조서의 차이점이 있는지 확인시키고 문제없다는 확인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점심을 먹고 오면 2회 조서를 작성하게 된다.
2회 조사는 1회보다 더 자세히 질문한다. 저녁 먹기 전 서명 날인을 받는다. 저녁 먹고 나서 3회 조사가 시작된다. 같이 근무했던 검사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제 죽는 거지”. 3회 조사에선 구체적인 증거를 내밀기 시작한다. 1회 조서, 2회 조서는 이미 서명 날인을 했고 구체적인 증거와 앞뒤가 안 맞다 보니 결국 피의자는 자백하게 된다. 다른 검사들은 한번 불러 1회 조서를 작성하는데 반해 한동훈은 한번 불러 3회 조사를 하고 곧바로 피의자를 굴복시킨다는 것이다.
사전 수사가 철저히 되지 않으면 구사하기 어려운 수사 기법이다. 수도권의 부장검사는 “다른 검사들이 한동훈처럼 깔끔하게 조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1차 조사를 하고 서명 날인할 경우 피의자는 조사받았으니 가겠다고 조사를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2차 조사 때 질문하는 것을 보니 본인에게 불리할 것 같으면 조사를 거부하면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동훈 스타일로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