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까지 일하면서 딱 한명, 저사람은 정말 일에 진심이고 99.99% 완벽에 가깝게 일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는데요. 최근 그 사람과 대화에서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녀가 좌절감과 외로움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거든요. 직장도 가족도 모두 있지만 40대가 된 지금 너무도 허무하다고 했습니다.꿈이라던가 인생이라던가 이런 건 고민할 틈도 없이 열심히 살아왔는데 지금 아무것도 남는 게 없더라는 거죠. 몸이 아파 몇개월 쉬고 나니 성실히 일했던 회사에서 그저 대체가능한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절실히 깨닫고 이제 와서 꿈을 좇거나 이직을 하자니 누가 관련경력도 없는 40대를 써주겠냐면서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이 짙게 깔려 있었어요.
인생의 절반을
지나
성적표를
받은 기분
전 40대가 인생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20-60대의 딱 중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중간 결산을 하는 시점인 거죠. 지난 나의 20년을 돌아보고 현재를 기준으로 나의 향후 20년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나이이고요. 인생전체를 봤을 때도 중간시점이고요.
내 직업, 연봉, 가족, 외모, 살고 있는 집, 차, 자산 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평가되어 내가 몇 점짜리 인생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어쩜 저렇게 물질적인 것만 놓고 평가를 하냐 하겠지만 이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저걸 배제하고 살기란 너무 힘들어요.내면의 힘을 키우라는 걸 몰라서 못하기보단 이런 사회구조적인 부분이 물질에 반응하는 인간의 본능과 찰떡같이 맞기에 어려운 겁니다.마음이 얼마나 성장하였고 깊어졌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풍부해졌나를 평가하는 것도 이상하지만,여유 없이 팍팍한 살림을 꾸리면서 심적으로 안정되고 단단해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니까요.
저의 경우성인이 된 후 그간의 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별 볼 일 없던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약 20년, 20년이란 엄청난 시간을 말이죠. 그 찬란한 젊음의 시간을 특별히 내세울 것 하나 만들지 못한 채 보냈습니다. 요즘 들어 '그때 이거라도 해볼걸.. 저걸 했어야 했는데..'이런생각에 많이 사로잡혀 있어요.
왜 이렇게 비약을 하냐면요. 죽을 날 받아놓은 것도 아니고 아직 창창한 나이인데 왜 다 죽어가는 소리를 하냐면요.
아쉬움과 무력감 때문에 그래요.
20여년에 가까운 그 길고긴 시간에 이거 저거 더 해볼 걸 하는 아쉬움과 앞으로 무언가에 도전하기 힘들 거라는무력감이 저를 계속 짓누르고 있습니다.이미 지금 내 20년 후가 결정지어진 것 같아 두려운 거죠.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나고 나니 별 볼 일 없어 보일뿐 저는 제 나름의 노력을 했어요. 365일 24시간 열정을 다했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분명 게으르게 보냈던때도 있고 허송세월했을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성실히 삶을 꾸려왔습니다. 방향을 잘못 잡기도 하고 풍파를 맞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 삶이기에 이미 지난 것은 덤덤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겁니다.
그리고 이토록 지난 시간이 후회가 되니 10년 후, 20년 후, 그리고 삶을 정리하는 때가 올 때는 이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제 마음속 틈을 천천히 메꾸려 합니다.
아쉽지 않은 인생은 없을 거예요. 되돌아보면 어떤 선택이건 조금의 후회, 미련이 남기 마련이죠. 그래도 이 아쉬움의 농도를 묽게 하고 싶어요.
현실을 부정한 채 내면만 바라볼 수 없고, 외적인것에 치중해서 마음을 공허하게 할 수 없어요. 지금은 회사를 다니고 돈을 모으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지만 하루 십 분이라도 날 위해 쓰고, 잠시라도 미래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지금처럼 글도 쓰고 작지만 많은 것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왜냐면 40대가 끝이 아니니까요. 지금 인생의 절반을 달려왔습니다. 절반이 더 남았어요. '어차피 안 될 거야.. 그거 할 시간 없어, 회사 가고 애키우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이 말을 방패삼지 않으려고요.10년 뒤엔 또 다른 모습의 제가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