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쉬는 날에는 투병 중인 아버지를 뵈러 고향집을 오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승진을 하려 준비 중이었던 공부를 그만둘 수 없어 자투리 시간에도 공부를 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삶이 참 팍팍하고 메말라 있었습니다. 승진 시험에 합격하면 고된 투병 중인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며 악조건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죠. 그런데 정말 하늘이 장난이라도 치 듯 아버진 시험 이틀 전 세상을 떠나셨어요. 시험 당일이 발인일이었습니다.
세상이 원망스럽지도 않았어요. 갑작스레 닥쳐온 일에 원망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거든요. 왜 옛사람들이 부모의 죽음을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고통이라 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심장이 무너져 내리더라고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회사에 복귀해서 게시판에 공지된 승진자 명단을 보며 '난 참 이런 운조차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그깟 승진을 못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기가 막히게 인생이 꼬이는구나 싶어서였어요.
살다 보면 저처럼 운명이 심한 장난을 칠때가 있죠. 원하던대학이나 회사에 떨어지거나 이력서를 내는 족족 불합격할 때, 승진에 누락되거나 실직했을 때, 결별, 파혼, 이혼 또는 사별을 겪었을 때 수많은 좌절이 엮이고 엮여 나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 좌절앞에서면 가슴이 아프고 막막한 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때는 그냥 나락행 기차를 탄 겁니다. 무슨 생각을 해도 좌절감, 상실감, 패배감이 드니까요. 아주 어렸을때부터 내게 찾아왔던 온갖 불행들을 모조리 찾아 총집합시켜 불행을 곱씹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보잘것없고 내인생은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었다 한탄하죠.'만약에'라는 생각에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때 만약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가 지금 이렇진 않을 텐데란 상상을 합니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내인생은 나락뿐일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하죠. 과거 데이터를 모아보면 앞으로 어떤 운도 바라지 못하고 실패만 남을 것 같습니다. 내가생각하는 멋진모습과 내 현실과의 괴리에 더 패배감이 들고 사람들이 나를 보며 패배자라고 할까 봐 그 시선이 두려워지죠. 문제는 나만 이런 나락행 열차를 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거예요.
왜 나만 운이 없고 이렇게 꼬이는 건지. 언젠가부터 조금씩 어긋나던 것이 어느순간 보니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벌어져 인생의 격차가 생긴 것 같아 더 큰 패배감을 맛보게 됩니다.
기본값이
불공평인
세상
이런 패배감, 좌절감은 대체로 성실한 사람한테 찾아와요. 게으르게 놀기만 하다가 이력서 썼는데 불합격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말죠. 그런데 잠덜 자가며 놀고싶은 거 참아가며 자격증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불합격하면 큰 좌절을 느끼게 됩니다. 보통 성실하면 보상이 올 거라 믿잖아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세상살이죠. 그 결과를 받았을 때 우린 배신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사실 세상이란 곳은 불공평한 게 기본이라 배신이고 뭐고 없는데 말이에요. 누구는 노력해도 안될 때가 있고 누군 어부지리로 좋은 걸 가져갈 때가 있죠.
불공평하니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얘긴 아닙니다. 불공평이 기본이기 때문에 나에게 문제가 있거나 내 인생에 풍파가 거세서 지금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운은 꼬일 때도 있지만 풀릴 때도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이 느꼈을거예요. 행이 오면 불행도 오고즐거움이 있으면 고통도 있다는 걸요.
이미 과거가 된 일은 내가 아무리 이유를 찾고 발버둥을 쳐도 도망칠 수 없어요. '내가 이랬던 적도 있다','이렇게 고통이고 암흑일 때도 있었다' 말할 수 있는 때가 오도록 미래에 초점을 맞추길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때이죠.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괴로움이 쉬이 사리 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반드시 이 어둠이 사라질 것도 알기에 미래를 향하자는 단조롭지만 강한 말의 힘을 믿어봅니다.